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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인터뷰칼럼
세계를 향한 도전, 꿈을 위한 디딤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이런 만남 또는 기회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박경은(32)씨와 신희영(27)씨는 그런 행운을 누렸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이사장 김우상)의 ‘KF 글로벌 인턴십’ 2기로 참여한 덕분이다. 박경은 씨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신희영 씨는 9월부터 6개월간 우드로 윌슨센터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지난 4월 19일(금), 서울시 중구 수하동 재단 회의실에서 만난 이들은 “앞으로 진로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다”고 뿌듯해 했다. Q.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박)“영국 유학하면서 자료 입수를 위해 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하곤 했기에 모집소식을 알게 됐다. 전공은 서양 지류 보존이었는데 해외 박물관 소재 한국 회화를 연구 주제로 잡으면서 동양 컬렉션으로 이름난 보스턴 미술관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인턴 공모를 알게 되자 바로 신청했다.” (신)“1기에 참여했던 대학원 동기가 적극 추천했다. 윌슨센터에는 귀한 자료가 많아 얻을 게 많다고 권했다. 마침 논문주제가 ‘핵 비확산’이어서 냉전시대 관련 자료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기회라 여겨 참여했다.” Q. 신청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박)“신청에서 선발까지 세 달 정도 걸렸는데 해외에 있어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쉽진 않았으나 준비서류 중엔 자기소개서/연구계획서를 중시한다고 들었고, 결국 그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미술관 측에서 심사를 하는데 내 경우엔 동양화 관련 경험이 없었지만, 꾸준한 관심과 연구 방향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일관성이 있었던 점이 주효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신)“윌슨 센터에서 마지막에 영상 인터뷰를 했다. 사실 영어는 유창하게 못하더라도 성실하고 진지한 답변으로 학문적 열정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Q. 현지에선 어떤 일을 했나? (신)“윌슨 센터는 사실 정부 정책 수립을 위한 ‘싱크 탱크’가 아니라 당파성이 없는 ‘연구소’인 곳이어서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것이 많았다. 역사공공정책 파트의 핵 확산 역사 프로젝트 팀에서 일종의 객원연구원으로서 자료 조사도 하고 토론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논문주제를 ‘핵 억지력의 신뢰도’로 바꿀 정도였다.” (박)“대부분 학예부나 교육부서에서 인턴을 선발하는데 보스턴미술관 담당 학예사님의 제안으로 이번엔 이례적으로 보존처리 분야로 선발을 했었다. 내가 근무한 ‘동양회화 보존처리실’에는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각종 동양회화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있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한국회화 전문가는 없어서 한국회화에 대한 내 연구가 환영받았다. 특히 내가 있는 동안 한국전시실을 재개관했기에 전시 준비 단계에서 학예사 및 보존과학자들과 협력해 안료와 재질 분석 등을 진행하고, 보고서로 정리해서 학예부장에 보고했다. 단순 업무 보조를 하는 일반적인 인턴들과 달리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펠로우로 대접하고 지원을 해줘서 특히 좋았다.” Q. 근무 분위기는 어땠나? (박· 신)“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주 5일 근무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슈퍼바이저에게 시간과 목적 등을 사전에 알리기만 하면 외부 세미나 참석도 가능했고 관련 서류나 작품 접근도 최대한 허용됐다. 정말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더라.” Q. 인턴 경험을 통한 대표적인 수확이라면? (박)“해외에서 양질의 한국회화 컬렉션과 재료분석 시설 및 전문가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곳을 찾기 쉽지 않은데, 보스턴 미술관은 동양미술 컬렉션이 뛰어나 한국 회화를 비롯해 동양미술을 정말 원 없이 만났고, 보존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하고 싶던 재료 분석도 할 수 있었다. 경험이 중시되는 분야인 만큼 그런 점에서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신)“준비 중인 논문주제와 관련해 희귀자료를 많이 본 것을 들 수 있다. 프랑스 핵개발 관련 문서 등 자료를 복사하고 관련 도서를 양껏 챙기다 보니 귀국할 때 자료만 두 박스가 넘을 정도로 모을 수 있었다. 국내에선 얻기 힘든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Q. 다음 인턴십 프로그램 지원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신)“워싱턴 D.C.에선 유명인들과 네트워킹을 할 기회가 많다. 나도 헨리 키신저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볼 기회가 있을 정도였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전에 준비를 잘 해서 이런 기회를 현실화하면 좋을 것 같다.” (박)“국제적인 미술관에서 안정된 신분으로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다른 인턴자리와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기회다.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모두 자기 의지에 달려있다. 기간이 짧은 만큼 가능한 한 많을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업무 성격, 구성원과 프로젝트 파악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신희영씨는 당장은 논문을 써야 하지만 장래는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외교안보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정책 수립에 참여도 하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는 그런 역할을 희망했다. 박경은씨는 인턴십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회화 보존처리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체류 중이며,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외국에서 미술품 보존처리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이들에게는 세계적인 기관에서, 안정된 신분으로,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이번 ‘KF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이 자기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양분 또는 자극제가 된 것으로 보였다. -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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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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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의 시대정신, 한국의 도시설계에 도입 절실하다”
유럽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여행기간 동안 서양의 많은 건축물들을 눈에 담아오지만 그 건축물들이 대체 어떤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문화센터에서 ‘바로크·로코코이야기’ 라는 주제로 개최되고 있는 정기문화강좌 중 김란수 교수의 <바로크 시대의 광장과 궁전>, <바로크,로코코 시대 주요 건축물> 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덕수궁 석조전을 찾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이것이 대표적인 르네상스풍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석조전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궐로서 광무 4년(1900)에 착공하여 융희 3년(1909)에 준공되었으며 전통 건축양식이 아닌 서양건축이라는 정도를 알 뿐이다. 이 건축물은 외관이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한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J.R.하딩(J.R.Harding)이 설계를, 내부 설계는 영국인 로벨(Lovell)이 각각 맡았다. 석조전에서 우리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조선왕조의 정신적 지배자였던 중국을 거부하고 서양 문물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려는 결기의 표현을 읽을 수 있다. 구한말 조선이 유럽을 배워 국난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민족적 욕망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 시대의 건축물은 그 시대의식의 집약적 표현인 동시에 국가 공동체와 집단지성의 외연인 것이다. 김 교수를 강의 직전에 만났다. Q. 서양건축에서 공통적인 주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현대 이전의 서양건축이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메시지를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과 비잔틴 건축 양식에서 출발한 서양건축은 8세기에 이르러 사라센 건축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석공기술이 발달한 고딕에 이른다. 첨형 아치와 첨탑이 세워진 파리의 노트르담사원은 그 대표적인 걸작품이다. 이후 르네상스 건축이 등장하는데, 이탈리아 피렌체 성당은 그 절정기 작품이다. 전성기의 르네상스양식은 창시자 부르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Q. 국가의식과 종교적 메시지는 서양 건축 정신의 핵심적 동인이었다는데? 현대 건축에 오면 인본주의가 본격적 등장을 보이지만 바로크 시대까지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졌다. 다만 르네상스 시대에 종교개혁에 반발한 카톨릭 주도의 반종교개혁운동과 함께 절대왕정의 권위와 교회의 위신이 함께 강조되는 시기였다. 물론 이때 등장한 인본주의는 건축의 지평을 크게 바꿔놓았다. 고딕이나 로마네스크에서 보이지 않던 외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종교 개혁 이후 흔들리는 가톨릭의 위상을 다시 다잡으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 바로크와 로코코에서 뚜렷이 표현된다. Q. 서양건축에서 보듯이 아름다운 건축은 국가적 지원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가? 우스꽝스런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건축부문 행정이 국토해양부 관할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건축이 건축가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다. 건축은 종합 인문학이다. 그래서 개별 건축물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랜드스케이프에 주목하는 것이다. 경기도 파주에 자리 잡은 건축물이 아주 이색적인 문화형태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물의 특성도 자연친화적이지만 무엇보다 전체 조망과 주변 환경을 설계에 포함시킨 것이 이채롭다. 이것은 우리 전통 궁궐이나 가옥 건축 양식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스카이라인을 벗어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건물만이 아니라 그 전체 조망에 이끌린다. 아이들이 공작놀이 도자기 공예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건축물과 함께 미술관 박물관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자연적 하천과 푸른 들이 건물의 안과 밖에 조화롭게 어울려 있다. 하나의 큰 랜드스케이프를 이룬 것이다. 건축은 단순한 토건이 아니다. Q. 우리나라의 최근 도시건축을 진단한다면? 도시계획 측면에서 건축을 큰 스케일로 보는 행정이 절실하다.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박물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매우 상징적인 걸작품이다. 굴뚝산업의 상징처럼 이미지가 굳혀졌던 빌바오는 이 박물관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최악의 환경 오염도시 이미지를 단번에 벗어던진 것이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과 도시 건축가들이 찾아와 이곳의 랜드스케이프를 감상하고 연구한다. 이곳에 있는 박물관은 건축물 안의 작품 설계도 창의적이지만 무엇보다 외관과 어울리는 종합설계가 더욱 독창적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 박물관과 주변 건축의 도시적 친화력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Q.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강연주제로 삼은 이유는? 유럽을 여행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 건축물들을 눈에 담아온다. 이곳의 주된 건축물의 형태는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을 띠고 있다.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와 보르미니(Borromini Francesco, 1599~1667) 작품의 보고가 이곳에 있다. 베르니니는 그 이전까지의 갇힌 종교적 굴레를 뛰어넘는 극적 반전의 독창성을 건축에 적용했다. 조각과 건축을 융합한다든지, 자연 채광을 강조해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한 착시효과를 노린다든지 하는 기법이 그것이다.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바로크 양식의 주요한 특징이다. 성베드로성당과 나보나 광장 등이 그 예이다. 르네상스 건축의 전성기인 프랑스 루이14세는 베르니니의 충고를 생활 문화 양식에까지 도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베르니니와 같은 시대 인물이지만 보르미니에 와서는 그 효과가 더욱 극적이다. 입면조차 요동치게 하는 새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이국적인 무슬림식 표현도 가미된 매우 창조적인 기법이었다. 로마의 산카를로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 그가 만든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조수로 출발한 보르미니의 창의성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만 알려졌던 성베드로 성당 건축 곳곳에 배어 있고 건축의 수준을 한차원 높였다. 산 이보 알라 사피엔자 성당 등의 작품을 남겼다. Q. 바로크 건축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전까지 종교의 엄숙성을 주로 강조했다면 바로크에 와서는 인간의 감성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과장된 표현이 등장해 화려한 내외관으로 치장하는 것이 특색이다. 인간이 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지성의 힘을 믿고 이를 표현한 것이다. 조각을 덧붙이고 장식에 금색을 칠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로코코는 바로크를 이어주는 한 건축 사조로, 18세기 프랑스를 풍미한 실내 장식의 발전된 양식이라고 볼 수 있고 또 바로크와는 밀접한 문화양식을 지닌다. Q. 오늘의 시대에 바로크건축양식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같은 것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 현대 건축은 단기간의 발달시기를 거쳐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므로 불가피성은 이해되지만 좀 더 현대와 전통 그리고 역사의 조화를 이루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도시의 전체적 설계 속에 건축물을 포지셔닝하는 큰 안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전체 도시를 거대한 랜드스케이프 안에 조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크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김형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한겨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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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5
179
“음악은 아름다운 마음을 전해주는 통로이자 힘”
미국 서부영화에 흔히 나오는 컨트리 웨스턴 음악을 좋아하는지? 바이올린의 빠르고 흥겨운 연주나 애조 띤 만돌린 선율, 그 팬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카일 딜링엄과 호스슈 로드 밴드(Kyle Dillingham & Horseshoe Road)’다. 리더 카일 딜링엄(33세, 피들)과 피터 막스(34세, 기타), 브렌트 설스버리(45세, 베이스)로 구성된 이 밴드는19일 오후 서울 중구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에 자리 잡은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문화센터 갤러리에서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해 흥겨운 콘서트를 가졌다. 행사를 하루 앞둔 18일(월),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이들의 음악세계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밴드는 언제, 어떻게 해서 결성됐는가. “(카일)2005년 4월 밴드가 만들어졌다. 원래 피터와는 고교 동창으로 90년대 중반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다. 명연주자로 소문난 브렌트와 함께, 우리가 만든 전통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음악적으로 뭉쳤다.”리더인 카일의 답변에, 회사원 같은 착실한 인상의 피터가 말을 보탰다. “카일의 밴드는 원래 다른 멤버 3명으로 구성됐는데 브렌트가 2007년, 내가 2009년 합류하면서 멤버가 차례로 바뀌었다.” 10년도 채 안 되는 경력에 비해 밴드의 활약은 눈부시다. 오클라호마 주 음악홍보 대사로 29개국에서 연주활동을 펼쳐 주지사 예술상을 받기도 했고, ‘Another Sunday’ 등 10장의 음반을 냈다. - 컨트리 음악 중에서도 밴드는 블루 그래스 음악을 한다고 들었다. 소개를 해달라. “(카일)블루 그래스는 가장 어쿠스틱한 음악이다. 전자악기의 기계음을 일체 쓰지 않으며 기타, 베이스, 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템포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노래의 경우 메인 보컬이 멜로디를 맡고 다른 멤버들이 높은 키로 화음을 맞추는 형식이다.”이 대목에서 갑자기 카일이 테이블 손장단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피터와 브렌트가 이내 하이 톤으로 뒤를 받쳤다. 내용이야 모르겠지만 뭔가 흥겹고, 고운 화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들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피터)블루 그래스의 대부는 1999년 작고한 빌 먼로를 친다. 그가 1940년대 중반 새로운 현악 밴드 음악을 실험하면서 이 양식이 자리 잡았다. 카일은 생전의 먼로와 함께 연주한 경험이 있고 내슈빌 컨트리음악 축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며 은근히 밴드 자랑을 했다. - 듣기로는 블루 그래스 음악에선 원래 만돌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카일)중요한 지적이다. 만돌린 연주가 중요한데 우리 밴드에선 이 파트가 없다. 그래서 내가 피들(바이올린) 연주 중간 중간에 현을 튕기는 만돌린식 연주를 한다.” 그러면서 카일은 “이 대목은 절대 알리지 말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 전통음악 또는 민속음악하면 요즘 청소년들은 외면하지 않나. “(브렌트)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우 컨트리 음악의 저변은 탄탄하다. 특히 컨트리 음악이 많이 나오는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가 상연된 이후 관심들이 높아졌다. 청소년들에게 기타, 베이스, 색소폰 개인레슨을 하고 있는데 팝 음악 대신 컨트리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 음악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 “(카일)연 5~10회 콘서트를 하고 2년에 한 번 CD를 내는 등 정기적으로 팬들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시 공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밖에도 개별행사에 초청받아 연주를 하는 일이 많다. 기회가 닿으면 밴드가 모두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해외연주 여행도 나서는 등 컨트리 음악을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피터는 매년 에드몬드 노스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와 합동공연을 통해 15곡 정도 선보인다고 했다. 개인레슨을 하는 브렌트의 말로 미루어 보면 이들은 연주를 매개로 ‘따로 또 같이’ 음악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 이번 콘서트 연주곡에 ‘러브 송’이란 한국 노래가 있던데. “(카일)2000년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 가서 배운 노래다. 멜로디가 좋아 이번에 포함시켰다.”카일이 서툰 한국어로 “비바람이 치던 바다~”라고 노래하는 것을 들으니 1970년대 혼성듀오 버블껌이 부른 ‘연가’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노래가 원곡이니 이래저래 민속음악이 이들에게 맞는 모양이다.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음악이란 무엇인지 물었다.“음악은 아름다운 마음을 전해주는 통로이자 힘(피터)”, “물리적 공간에 상관없이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교감할 수 있는 영적 경험(카일)”, “자신감을 주는 나의 표현수단(브렌트)”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아시아 연주여행의 성공이며,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고, 청소년을 가르치며 아직 못 만난 청중들에게 기쁨을 전할 기회를 기다릴 것이라 했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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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7
208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류 열풍이 대단해요”
보기 드문 미인이다. 조막만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마치 바비 인형 같다. 레발리나 테맛(27)의 첫 인상이다. 당연하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톱클래스 배우다. TV와 영화에서 맹활약하며 최우수 여배우상도 두 차례나 받았다. 뮤직 비디오나 화장품 등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 모델로도 각광받고 있는 인니의 스타다. 3월 12일 서울 플라자 호텔 5층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초청으로 온 ‘귀빈’이었다. ‘귀빈’이라 할 만한 것이 그는 대한민국 외교부의 ‘공공외교 친선대사’로 위촉받은 친한파다. 이력을 보니 2001년 TV탤런트로 데뷔했다. 16살 때다. 이른 나이에 연예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우선 궁금했다. “어머니와 언니가 일찍부터 미인대회 참가 등을 권했어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성적이어서 연예계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망설이던 차에 언니가 제 사진을 찍어 ‘gadis’란 잡지에 보내는 바람에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나중에 알았는데 13대 1의 경쟁을 뚫고 표지 모델로 선정됐더라고 살짝 자랑을 잊지 않는다. 1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2006년 공포영화로 데뷔했다기에 은막 데뷔가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만 스토리가 부실한 영화의 출연 제의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야무지다. 그럴 것이 자카르타 런던스쿨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화려함만을 좇는 게 아니라 주관이 뚜렷하다. 이런 엄격한 자세 때문에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가 9편에 불과하다. 일 년에 한 편정도이니 과작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반둥 영화제와 2010년 인도네시아 영화대상 최우수 여배우상을 받은 연기파다. “여권 신장운동에 헌신하는 여성을 그린 ‘터번을 쓴 여인’이란 영화였어요.”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친다. “출연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에요. 스토리와 제가 맡을 캐릭터를 우선 고려하지만 감독이나 공연할 상대 배우를 따지거든요.” 한국의 명예대사가 된 것도 출연작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지난해 한-인니 합작 드라마에 출연했거든요. 2012년 초 ‘사랑해, I love you’란 드라마의 출연제의를 받고는 당연히 오케이 했죠. 한국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드라마는 45분짜리 30부작으로, 한국 최고 유통회사의 아들로 톱 가수인 영민(가수 팀)이 백화점 홍보와 음반작업을 위해 자카르타에 왔다가 유망 작곡가의 동생인 류(레발리나)와 사랑의 도피를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 로맨스물이란다. “3월엔 한국의 평창에서, 5월엔 발리에서 촬영하는 등 강행군을 한 끝에 작년 7월부터 인도시아르 방송에서 방영됐어요.” 매일 저녁 9시부터 방영된 이 드라마는 K-pop의 열기 덕분이지 인기가 높았다고 했다. “속편 제작을 요구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고, ‘팀-레바 사모(팀과 레발리나를 사랑하는 모임)’란 팬클럽도 생길 정도였죠.” 흥분이 되살아나는지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방영이 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올해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이에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Korea Festival in ASEAN(5.21~6.10)’를 계획 중이라니 적극 참여할 거에요.” 인도네시아의 ‘한국 알리미’인 그는 한국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까. “솔직히 합작 드라마 출연 전에는 잘 몰랐어요. 지금은 ‘꽃보다 남자’에 출연했던 이민호의 팬이기도 하고 드라마 ‘겨울연가’도 좋아해요.” 역시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좋은가 보다. “그런데 한국인들 사랑 방식은 특이해요.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롯데월드에 갔더니 커플들이 동물 캐릭터로 된 헤어밴드를 똑같이 했더라고요. 인도네시아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든데.”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평창 스키장에서 추위에 떨었던 일, 그 와중에 친절했던 한국인 스탭들,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먹어본 매운 떡볶이 등이 레발리나의 한국 추억이다. 그에게 한국에서 출연제의가 오면 어쩌겠느냐고 떠봤다.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해서 잘 살릴 것”이란 어쩌면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인지 레발리나는 한국어를 배울 계획도 있다고 했다. 이번에 국제교류재단에서 해외 문화체육계 인사들을 동시 초청하는 기회가 오자 어렵사리 출연 일정 등을 조절해 일주일 예정으로 서울을 찾았다는 레발리나, 그만큼 한국 사랑이 돈독해 보였다. 이번 기회에 청계천이며 박물관 등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곳을 찾아 한국의 정취도 맛보고, 드라마를 함께했던 팀과 한국 스텝과도 만날 예정이라며 그는 조금은 들뜬 표정이었다. “배우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천직이라 생각하고 연기에 충실할 겁니다.” 국제적 배우가 꿈이라는 레발리나의 프로의식이 외모 못지않게 눈부셨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미디어홍보센터
201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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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해외박물관 한국실 지킴이 파견
1. KF 객원 큐레이터 파견 프로그램이 무엇인가요?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KF)이 해외 박물관 내 한국실의 효과적 운영을 위해 한국미술 전담 큐레이터가 없는 기관을 중심으로 관련분야 국내 전문가를 선발 및 파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연구관으로서 올해 2월 초에 영국박물관에 파견되어 1년간 한국실에서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2. 전공 분야는 무엇인가요? 제 전공 분야는 한국미술사 중에서도 조선시대 회화사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근무하다보면 전공을 떠나 다양한 주제의 연구와 전시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영국박물관의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되면 한국의 역사, 문화 전반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보다 폭넓은 시각이 요구됩니다. 3. 동 프로그램을 지원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미술사 전공자인 제가 애정을 느끼는 유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인식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문화재나 예술품에 대한 경험과 감상은 매우 개인적인 것인데 이것을 소통하게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 ‘전시’라는 작업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진행할 때에는 주로 한국인 일반 관람객을 염두하였지만 영국박물관에서는 세계에서 모여드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의 관람객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의 문화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4. 영국박물관에서 파견 기간 동안 담당하게 되실 일은 무엇인가요? 영국박물관에는 약120평 정도의 한국실이 있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2000년에 개관하였으며 현재 약 200점의 한국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실 방문객을 대상으로 관람 형태 분석을 실시했고 런던 내 관련 전공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워크숍을 갖는 등 장기적으로 교체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실은 Jan Stuart 아시아 부장 및 Sascha Priewe 한국담당 큐레이터가 각별하게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한국실의 전체적인 전시안을 계획하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또한 두번째로 영국박물관 한국실이 소장하고 있지 않은 유물의 대여 및 교체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현재 한국실에는 신라고분 출토 유물과 갑옷, 철제 불상 등 영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지 않는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해서 전시하고 있는데 이번에 관련 문화재들도 교체할 예정입니다. 세번째로는 영국박물관의 소장품 조사작업입니다. 현재 영국박물관에는 한국 유물이 약 1,500여점, 동전 및 화폐가 3,000여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사업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수년간 한국 유물들을 분야별로 조사해온 것으로 올해는 회화, 민속 및 복식 분야를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저는 회화 분야를 맡아서 조사하고, 이 밖에 한국실과 관련해 개최되는 각종 교육 및 행사 등의 사업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5. 객원큐레이터 파견 프로그램을 통해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요? 영국박물관은 1753년에 개관하였으며 소장품은 약 8백만점이고, 현재 약 94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전시품도 휼륭하지만 전시실을 둘러보면 각 전시실마다 담당 큐레이터의 생각, 전시 설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개관하고 보완된 각 전시실의 모습 자체가 박물관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새로 꾸며진 전시실들을 보면 전세계인들이 공감할 만한 질문을 던지고, 인류학적인 소주제를 잡아 유물들을 배열하는 등 참신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제게 ‘전시’에 있어서는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전시’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국박물관은 역사가 깊은 박물관이라 전통적인 방식도 남아 있지만, 업무 분장, 협업 및 전문성 제고 등 효율적인 업무 방식은 배우고 싶은 부분입니다. 6. 객원큐레이터 활동을 통해 영국박물관에 어떤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최근들어 한국 미술사 분야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 및 문화 전반에 걸쳐 심도 있는 연구성과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박물관/미술관에서는 다양한 특별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 및 자료가 한국어로 되어있어 이러한 성과들이 해외에서 활발하게 알려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객원큐레이터 활동을 통해 제가 이곳에 있는 기간 동안 영국박물관과 한국 박물관계 및 학계를 서로 연결시키는 중간다리 역할을 통해 양질의 지식과 정보들이 좀 더 원활하게 교류되어 한국실이 보다 내실을 키우고 발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7. 기타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영국박물관 한국실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실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수준과 역사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한국을 해외에 알리려고 해도 정작 상대방이 관심이 없으면 헛수고가 된다는 점에서 최근 영국을 비롯한 유럽 등 서구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영국과 한국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장기적으로 사업을 계획 및 진행하며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업무를 책임지는 데 반해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업무 지속성이 짧은 편입니다. 한국에서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나 실적주의에 빠질 염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자주 바뀌는 것도 해외 파트너 기관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지요. 앞으로 해외 파트너 기관들과의 사업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국 문화예술의 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디어홍보센터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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