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Kim Do-yeon 金度延)은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도 평창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강원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이 같은 태생과 전공의 결합은 그의 작품 세계를, 즉 소재와 주제, 그리고 형식과 기법을 설명하는 데 제법 유용하다.
김도연은 주로 제 고향 마을과 부모님을 비롯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소설로 쓰는데, 농촌 소설들이 흔히 택하는 사실주의 방식에 매이지 않고 환상적 기법을 즐겨 구사한다.
그는 2000년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중앙일보에서 주최한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된 것을 자신의 본격적인 등단으로 꼽는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1년, 그리고 1996년에 두 지방 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나 작가로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후에야 비로소 문예지 등의 청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 등단을 하기 전까지 그는 품팔이 노동을 하거나 누나가 운영하는 지방 도시의 카페 일을 돕거나 스스로 작은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번듯한 밥벌이가 되어 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거처와 직장이 불안정한 채로 이곳저곳을 떠돌 때에도 그는 문학평론가 황현산(黃鉉産)의 기욤 아폴리네르 시 해설서 『얼굴 없는 희망』을 성경처럼 지니고 다니며 거듭 읽었다. 그러고는 발송 주소가 없는 엽서를 황현산에게 보내곤 했다.
2018년 별세한 황현산은 김도연의 대학 시절 스승이었다. 황현산은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 계열의 프랑스 문학 작품과 이론서 번역을 활발히 했고, 한국 시 비평에서도 ‘미래파’라 불린 실험적 시인들의 작업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스승의 책과 스승에게 보낸 엽서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여전히 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20대에 프랑스 시와 소설에 빠져들면서 강원도 산골이라는 제 출신을 버리다시피 했지요. 그렇지만 그건 역시 책에서 배운 거였고, 제가 살아온 현실은 따로 있어서 그 둘 사이의 길항과 갈등이 제법 심각했어요. 지금도 저는 고향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렇게 쓴다면 결국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이나 이문구(李文求 1941~2003)의 아류를 벗어나기 어렵지 않겠어요? 차라리 환상적인 측면을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고향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요.”
김도연은 2012년 나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가 택한 ‘환상’이라는 소설적 전략은 등단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랑했던 여자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남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홀로 민박집에 머무르는 사흘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채로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꾸는 꿈과 환상이 이 작품의 주된 서사를 이룬다. 주인공이 누운 “딱딱한 침대는 세상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는 출입구”가 되었고, “잠은, 그 속의 꿈은 일그러진 기억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대합실”이었다.
2002년 이 작품을 표제로 삼아 출간한 첫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에서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설정이 뚜렷한데, 그것은 그만큼 그가 느끼는 현실이 팍팍하고 암담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에 나온 첫 장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소 시장에 팔려고 데리고 나온 소를 결국 팔지 못한 채 트럭에 싣고 함께 전국을 여행하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여행에는 막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온 그의 옛 애인이 동행한다. 트럭에 소를 싣고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 남쪽을 일주해 서울 조계사에 “입성”하는 여정 자체도 환상적이지만, “소가 말했다”라는 도입부 첫 문장이야말로 역시 김도연답다.
이 작품 말고도 농촌과 산골을 배경 삼은 그의 여러 소설들에서 소와 개, 닭, 오리 등 짐승들은 사람들과 막힘없이 대화를 나눈다. 가령 2010년에 나온 세 번째 소설집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에 실린 단편 「바람자루 속에서」에서는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기만 한 주인공이 심야의 고속도로를 차로 달리는데 멧돼지와 고라니가 뒤를 쫓아오고, 고라니는 그에게 말을 걸며 히치하이크를 부탁하기도 한다.
김도연이 막노동과 카페 운영 같은 도시의 일들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부모의 농사를 물려받지 않고, 읽고 쓰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되어 준 것이 읍내의 도서관이었다. 그는 십수 년째 읍내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도서관이 그의 작업실이다. 도서관을 무대로 삼고 사서가 등장하는 「흰 등대에 갇히다」와 「콩 이야기」 같은 단편들에서 이 같은 그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네 번째 소설집 『콩 이야기』(2017)에 실린 단편 「파호」는 시골 집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며 소설을 쓰는 노총각 화자와 그의 형들 및 누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자를 사용한 제목 ‘파호’는 바둑 용어이지만, 글자 그대로 풀자면 호적 또는 가문이 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소설에서 형들과 누나들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오랜만에 고향 집에서 재회한다.이 소설에는 “무섭고 외롭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 말들은 고향 집을 둘러싸고 다른 형제자매들이 보이는 욕망 앞에서 화자가 느끼는 심정을 대변한다 하겠다. 이러한 각축과 암투는 비록 한 가족의 일이기는 하지만, 무너지고 와해되는 농촌 및 가족 공동체의 운명을 대표해서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도연의 다른 많은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아마도 그것은 주인공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소설 속 상황과 그에 투영된 현실의 문제가 그만큼 답답하고 막막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본 단편소설은 Koreana 종이책 구매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