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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콘텐츠] 한류에 재배치돼야 할 국악 영상물

한류에 재배치돼야 할 국악 영상물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2020년 초반의 팬데믹 이후 국악계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모색에 대한 질문을 안팎으로 받고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방탄소년단(BTS)의 세계 진출은 한류의 새 돌파구와 힘이 됐다. 더불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몇몇 국악 그룹도 그 길에 발을 내딛는 중이다. 이를 위해 2021년 11월 국립국악원에서 <국악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를 흥얼거리며, <조선판스타>(MBN)와 <풍류대장>(JTBC) 같은 TV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을 때였다.


사실 국악은 대중과 거리가 먼 음악이었다. 오랜 시간 전승되어온 전통음악이지만, 오늘의 감각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고정관념이 국악 발전에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오늘날 유행하는 국악의 지렛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구석진 곳으로 멀리 밀어둔 음악이었는데, 그래서 볼 것 없는 음악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입고 나온 변신과 변화의 옷이 그 어떤 음악보다도 재미있고 빛나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잊고 있던 것들이 준 반전인 셈이다.


한국음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보존과 전승에 방점을 두었던 과거와 달리, 대중과의 호흡을 격려하고 국제 교류의 물꼬를 터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국악을 만드는 이들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이고 범세계적인 활동 노선으로 한국음악의 지도를 변경 중이다. 씽씽, 이희문, 이날치, 추다혜차지스, 악단광칠, 고래야, 잠비나이, 블랙 스트링, 동양고주파, 해파리 등의 밴드와 앙상블이 대표적인 경우다.


코로나 시대는 이들을 주춤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의 무기를 바꾸게 하기도 했다. 기존에 공연과 국제 교류 등 오프라인(대면) 중심으로 활약해온 이들이 비대면 영상물 같은 신종 무기로 자신들만의 무기고를 채운 것이다. 물론 공연을 예전처럼 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으로 만든, 자신의 음악과 존재를 담은 대체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영상물들은 기존의 ‘공연장 관객’을 넘어 ‘영상물 관객’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공연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대중이 인터넷과 접속하여 이 시대의 국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코로나 시대가 준 특권(?)인 셈이다. 일례로 코로나의 우울한 시간을 ‘범’과 함께 하게 한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도 사실상 비대면 문화 수요 의존도가 높아진 시대의 흐름과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21세기형 음악 디제이(DJ)’라 할 수 있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국악 영상과 처음으로 대면한 사용자들의 목전으로 새로운 국악을 이동시켜주기도 한다. 이처럼 국악 예술가들이 제작하고 비축한 영상물은 2022년 초반인 지금, 계산해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체감하게 된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은 ‘기록’과 ‘기획’이다. 여기서 ‘기록’이라 하는 것은 국악예술가들이 인터넷 세상에 남긴 공연 영상물들이다. 인터넷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이것들은 영구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더불어 ‘기획’이라 하는 것은 앞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뜻한다.


한때 ‘기록’에 치중했던 아카이브 문화는 오늘날 ‘기획’을 통해 ‘공개’와 ‘공유’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근·현대 시기에 분실된 한국 영화들을 수집·복원하며 비어 있는 ‘기록’의 창고를 메우기에 힘 쏟던 한국영상자료원도 이 창고를 온라인 세상에서 어떻게 공개할지 ‘기획’의 입장에서 고민 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악이 나아갈 한류의 길은 어떻게 달라질까. 공연 콘텐츠의 개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눠지고 있는 지금, 국악의 한류도 향후 ‘온라인 한류’와 ‘오프라인 한류’로 나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대면을 중심에 두었던 국악 기획자와 예술가들은 지금 곳간에 쌓인 ‘기록’, 즉 영상물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행해보지 못했던 ‘온라인 한류’를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등잔 밑이 어두워서 못 본 국악이 조명되며 국민음악이 된 것처럼 국악예술가들이 일궈온 영상물의 곳간들이 잠깐의 빛을 보았지만, 다시 등잔 밑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당장 기획의 옷을 입혀 내놓아도 공연의 재미와 감동 못지않을 국악 영상물들이다. 다만 지금까지 행해온 것이 대면 공연과 그로 인한 관성 때문에 코로나 시대에 열심히 일군 곳간과 영상물들은 점점 방치되고 있다. 낱낱이 들여다보면 이 제작비 역시 국가의 지원과 자본으로 일군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시대의 기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획’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료이자 연료와도 같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혹은 갖게 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이것을 한류의 길에 재배치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