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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세계] 이국의 맛, 언어, 사람을 만나는 ‘필리핀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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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세계]이국의 맛, 언어, 사람을 만나는 ‘필리핀 마켓’

매주 일요일, 대학로의 혜화동 로터리 일대에는 서울 속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 마켓이 열립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그리운 고향의 맛과 정을 나누는 곳이고 한국인이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서울 도심에서 동남아 고유의 맛과 정취를 만날 수 있는 이색 관광 명소입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혜화성당으로 향하다 보면 줄지어 늘어선 초록색 천막들이 눈에 띕니다. 이곳에 시장이 서게 된 사연에는 종교적 배경이 있습니다. 필리핀은 전 인구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인 나라입니다. 그 중 가톨릭 신자는 80퍼센트가 넘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1990년대 혜화성당에서 필리핀의 언어인 타갈로그어를 사용하는 미사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그후로 미사에 참석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고향의 음식과 물건을 파는 필리핀 상인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일요일 아침 10시,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이곳에서는 시니강*, 레촌** 같은 필리핀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식 떡과 튀김, 음료 같은 간식들도 다양합니다. 식판에 밥과 반찬을 골라 담아 먹을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큼직한 돼지고기 꼬치구이가 한 개에 이천 원 정도이니 부담 없이 즐기기 좋습니다. 필리핀의 국민 라면이라고 알려진 판싯칸톤을 비롯해 각종 식품과 재료, 생활용품을 파는 점포는 현지 슈퍼마켓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그린망고 같은 과일도 사고 동남아 특유의 음식 냄새를 맡으며 시장을 구경하다보면 마치 동남아 야시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도 듭니다. 야시장과 달리 한낮에 열리기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오묘한지도 모릅니다.
*시니강: 고기류와 채소를 끓여 신맛이 나는 수프
**레촌: 돼지 바비큐 구이


지금도 혜화성당에서는 필리핀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가 열리고, 많게는 이천 명 가까이 되는 필리핀 사람들이 참석합니다. 미사가 끝나는 오후 세 시쯤 시장이 가장 붐빕니다. 상인들마다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화가 통용되는 곳이지만 이때쯤엔 타갈로그어가 훨씬 많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조국의 언어로 주문을 주고 받고 정담을 나누는 필리핀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오후 다섯 시쯤 시장이 파할 때가 되면 자리를 정리하는 상인이나 떠나는 손님 모두 아쉬운 기색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터전에서 열심히 살아가다 이곳 필리핀 마켓으로 다시 모일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글 김문영

그림 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