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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AUTUMN 505

작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 작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11월 현재 전국 1천 813만 호의 주택 가운데 62.3 퍼센트가 아파트였다. 이처럼 한국인의 대표적 주거 형태를 이루는 아파트에는 입주민의 안전을 돌보고, 분쟁이나 민원을 해결하며 건물을 관리해주는 등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관리소 직원들이 있다. 이상용(李相龍) 씨는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510세대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급한 민원이 들어와 인터뷰 시간을 30분 늦추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연락을 받고, 오후 네 시 반에 관리사무소에 들어섰다. 단지 옆 신축 건물 공사로 인해 소음이 발생한다는 것이 급한 민원이었고, 회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언쟁이 오가나 했더니 잠시 후 입주자 대표와 공사 현장 담당자 등이 일어나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마주한 이상용 씨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문제가 있거나 불만이 있는 분들이 저를 찾아오시니, 늘 이래요.” 민원을 해결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관리소장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이상용씨는 2009년 육군 예비역 대령으로 전역한 뒤 지금은 서울 마포구 강변힐스테이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다양한 민원 “이야기가 잘 되면 괜찮은데 가끔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도 있죠. 지난봄에는 109동 사는 분이 민원을 계속 넣었는데, 그 동이 가라앉고 있다는 거예요. 모든 세대가 냉장고를 같은 자리에 놓아두고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그 무게 때문에 침하한다, 베란다 뒤에 균열도 보인다고 주장해요.” “우리 아파트는 3년에 한 번씩 정밀 점검을 받고 있고, 2019년에도 점검을 받았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를 않자 결국 입주자 대표회의에 안건을 올려서 세 군데 전문업체한테 문의를 했다. 결론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고, 이상용씨는 “내년에 또 정밀 점검을 하니 이상이 있으면 조치하겠다”고 겨우 설득에 성공했다. “아무리 황당한 민원이어도 모른 척할 수는 없고, 반드시 처리한 다음 결과를 이야기해주어야 해요.” 가장 빈번하고 골치 아픈 민원은 소음이다. 몇 주 전, 위층에서 아이들이 너무 뛰어서 잠을 못 자겠다는 민원이 밤 열 두 시쯤 들어왔다. 당직하던 경비원이 위층에 인터폰을 넣어서 사정을 말했지만, 밤 늦게 연락을 했다고 한참 욕을 먹었다. 이 사실을 다음날 아침에 보고 받은 이상용 씨는 무척 속이 상했다. “그분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경비원은 무슨 죄예요. 층간소음의 경우에는 솔직히 방법이 없을 때가 많아요. 바로 위층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기도 해요. 아래층에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하면 나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조심스럽게 말하라고 직원들을 교육합니다.” 지하주차장에 드나드는 차소리가 시끄러우니 해결해달라는 주민도 있었다. 공용시설은 경비용역업체가 관리하고 개인시설은 입주자 각자가 관리해야 하는데, 경계가 불분명한 것도 있고 입주자 입장에서는 다 공용시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상용 씨는 경비원과 미화원을 포함해 총 열 세명의 직원들을 통솔한다. 그는 입주민은 물론 직원들과의 소통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의 하루 일과는 반복적이면서도 규칙적이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 안내방송을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안내 방송이 더 잦아졌다. 입주민들은 매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상용씨를 찾아온다. 그는 민원을 꼼꼼하게 듣고, 입주민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도우려 노력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하루 종일 조용할 틈이 없다. 직업군인에서 관리소장으로 이상용 씨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딴 것은 2011년, 지금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 온 것은 2019년이었다.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500세대 미만의 주택에서 3년 이상 경험을 쌓아야 500세대 이상주택의 관리를 맡을 수 있다. 그는 2012년에 250세대가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자격증 시험이 없었다. 아는 사람에게 맡겨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했다. 지금은 해마다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이 있고 1,500~2,000명이 합격한다. 자격증을 딴다고 모두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직이라서 적성이 맞아야 한다. 불만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대처를 잘못하면 쉽게 감정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직업의 좋은 점은 정년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모두 다 오래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나이가 많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입주자들이 싫어할 수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많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기계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지만 뭘 바꾸려고 하지 않죠. 장단점이 있어요.” 주택관리사가 되기 전에 이상용 씨는 32년 간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다. 2009년 6월 중령으로 제대해 지인이 하는 군 관련 회사에서 잠깐 근무했다. 그러다 한 선배가 적성에 맞을 거라며 권유해 주택관리사 시험을 봤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일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지휘관으로 근무할 때 원칙 중 하나가‘1% 지시, 99퍼센트 확인’이라는 것이었다. ‘지시는 짧게 하고 확인은 철저하게 하라’는 군대의 지휘 체계가 관리 업무에도 잘 적용된다. 출근시간은 오전 9시지만 그의 하루는 8시 5분에 시작된다. 오전 6시에 기상했던 군대 시절의 습관 때문에 5시면 눈이 떠진다. “집에서 전철을 타고 여기 오면 정확하게 8시 5분이에요. 월, 화, 금요일에는 사무소로 바로 들어오지 않고 우선 단지 안을 한 바퀴 둘러봐요. 월요일에는 주말 동안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화요일에는 분리수거 업체가 오는 날이니까 수거 후 청소 상태 를 확인하고, 금요일에는 주말 동안 쉴 테니 여기저기 꼼꼼하게 둘러보죠.” 이해심과 참을성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는지 묻자 “없다고는 못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이 힘들기 보다는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해달라고 하는 입주민은 으레 감정이 나빠지면 “우리가 봉급 주는데”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비애감이 든다. 이상용 씨는 그럴 때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다스린다. 서로 마음이 풀린 다음에 이야기하면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 일하는 아파트에는 심한 갑질이 없다. 대신 자랑할 것이 많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과일 행상이 온다. 그 행상에게 매주 경비원 6명, 미화원 5명의 과일 값 6만원을 지불하는 입주민이 있다. “1년은 52주인데 작년에 그 행상이 51번 왔어요. 1년이면 삼백만원이 넘죠. 제가 여기 오기 전부터 하신 일이라는데, 처음에는 부모님이 하다가 지금은 따님이 한대요.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더니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하세요. 우리가 청소를 하거나 다른 작업을 하고 있으면 빵이나 음료수를 사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오후 6시에 퇴근을 하고 6시 50분 전철로 귀가하여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TV 드라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 10시 반에는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바둑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서울 외곽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텃밭을 가꾼다. 이상용 씨는 뭔가를 돌보고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지금도 텃밭에서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관리소장에게 필요한 적성으로 그는 이해심과 참을성을 꼽았다.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니 이해하고 배려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동체는 시계 바늘처럼 정확한 그의 일상과, 마을을 지키는 커다란 나무처럼 듬직한 그의 배려에 의해 오늘도 차곡차곡 돌아가고 있다. “작년에는 아파트 정문 쪽이 휑해 보여서 꽃을 심기로 했어요. 같이 꽃을 심을 분들은 나오시라고 방송을 했더니 아이들 데리고 여러 분이 오셨어요. 함께 꽃을 심고 나서 광장에서 막걸리 한잔 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애로사항이 있어도 얘기 못하는 분도 많거든요. 그럴 때 듣는 거죠. 순찰을 돌고 있으면 때로는 그에게 다가와 “소장님, 그때 고마웠어요, 도움을 받았어요,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해 주는 주민이 있다. “이분들이 내가 한 일을 알아주는구나. 이 일을 하기를 잘했구나.”그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동체는 시계 바늘처럼 정확한 그의 일상과, 마을을 지키는 커다란 나무처럼 듬직한 그의 배려에 의해 오늘도 차곡차곡 돌아가고 있다. 고즈넉한 한강변에 자리한 이 아파트 단지는 510세대의 비교적 아담한 규모지만, 주위에 다른 아파트 단지들과 함께 건축된 서울 도심 서쪽 주거지역의 일부이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 하지권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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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주는 힘, 홈가드닝 식물이 주는 힘, 홈가드닝 한국인들은 급속한 경제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마당에서 식물을 가꾸던 오랜 관습을 잃어버렸고, 젊은 세대일수록 땅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 세대의 정원문화는 이제 시간이 흘러 인테리어와 힐링이 결합하며 젊은 세대사이에 홈가드닝(interior gardening)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두기에 따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실내에서 식물을 기르는 홈가드닝이 젊은 층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식물 큐레이션 클래스도 다양하다. © CLASS 101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박은진(36) 씨는 코로나 19 사태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나며 홈가드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무료한 집콕 생활에 작은 활력이 필요해 화분을 하나 샀던 것이, 이제는 베란다를 가득 초록 식물로 채웠다. 요즘 그는 식물들이 없던 집안에서 어떻게 생활했나 싶을 정도로 바뀐 분위기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 19로 불안하고 우울했는데, 식물을 돌보며 마음이 편안해서 안정감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 성동구의 워킹맘 김경선(39) 씨는 우연히 가드닝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식물에 빠졌다. 부모 세대가 정원에서 즐기던 가드닝만을 생각하던 그녀는 이토록 다양하고 트렌디한 실내 가드닝의 종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집에서 함께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무작정 풀을 뜯어 씹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해한 식물들을 골라서 가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는 무척 많다. “요즘 주말 농장이나 유치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베란다에서 작은 식물 키우기로 시작했는데 인테리어 효과에도 좋다”며 코로나가 끝나면 오프라인 클래스에 등록해서 본격적인 플랜테리어를 배울 예정이라고 한다. 10여 년 전 은퇴세대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홈가드닝 붐이 점점 중장년층에서 젊은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팜린이’라는 신조어도 이들을 일컫는 단어다. 농사를 뜻하는 영어‘farm’과 children의 한국어 ‘어린이’를 결합한 것으로 원래는 레알팜이라는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의 입문자를 일컫는 용어였지만, 최근에는 홈가드닝을 시작하는 초보자를 뜻하는 애칭으로 더 널리 쓰이게 됐다. 국민 77.2%가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사는 주거문화를 감안한다면, 마당 없는 콘크리트집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가 손에 흙을 묻히며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변화는 의미가 크다. 코로나블루를 겪는 많은 사람이 식물을 기르고 만지며 마음을 다스린다. 불안과 우울을 덜어주는 세로토닌 덕분이다. 최근 반려식물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박희란 아이들은 집에서 화분을 돌보며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마당에 국한되던 정원의 개념이 주거 형식이 바뀌며 아파트 거실, 도심 속 옥상까지 확장됐다. ⓒ gettyimagekorea 보타닉 트렌드 2018년 10월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서울 최초의 ‘보타닉 공원’ 서울식물원(Seoul Botanic Park)이 문을 열었고, 개장 2년반 만에 누적 관람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무척 높은 수치다. 나는 여기서 이 일대 상업시설들 명칭이 온통 ‘보타닉’ 일색이 된 현상에 주목했다. 인근의 아파트뿐 아니라, 호텔, 예식장, 식당, 커피숍, 복덕방, 당구장, 병원, 편의점까지 많은 시설들이 이 단어를 상호에 달고 있다. 올해 초 금융 중심가 여의도에는 서울에서 제일 큰 규모의 백화점 ‘더현대’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전체 영업면적 가운데 49%를 실내정원과 고객 휴식공간으로 채웠다. 상품이 빼곡한 진열대로 가득 찼던 기존의 백화점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백화점 인테리어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했다. 실상은 롯데·신세계·현대가 각축을 벌이는 ‘빅3’ 백화점 업계가 몇 년 전부터 ‘가드닝 디스플레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해온 결과였다. 따라서 코로나 전부터 서서히 뿌리를 확장해온 보타닉 트렌드가 코로나와 만나 본격적인 홈가드닝 열풍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월, 국내 대형 쇼핑몰 롯데마트에 따르면 가드닝 상품군 매출은 코로나 시국에 따른 전체 매출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2019년 17.6% 성장에 이어 2020년에도 18.7%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집콕 생활이 본격화된 2020년 한 해 동안 화분과 화병 매출은 각각 46.5%, 22.3%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인터파크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가드닝 관련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신장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설문조사기관 Advance Monthly Retail Trade Survey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미국 내 대부분의 소매판매 업종이 급격한 매출 감소세를 겪었으나, 홈가드닝 분야는 1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시장이 최근 몇 년간 5%내외의 증가율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플랜테리어와 반려식물 홈가드닝 열기는 코로나 19가 낳은 또 다른 현상인 ‘플랜테리어’와도 연결된다. 플랜트(plant)와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최근 인테리어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코로나 19와 맞물려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했다. 2020년 12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農林水産食品敎育文化情報院, Korea Agency of Education, Promotion & Information Service in Food, Agriculture, Forestry & Fisheries)이 발표한 ‘화훼 소비 트렌드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화훼산업 과 꽃 관련 온라인 관심도는 2019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약 10.3% 증가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화훼 분야 소비 트렌드는 ‘반려식물 및 플랜테리어’로 나타났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해 12월 카드 매출 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담아 발표한‘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 보고서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원·화초의 2020년 1~2월 매출이 전년도에 견줘 각각 8%, 10% 줄었다가 3월부터 회복세로 돌아섰는데, 코로나의 위험성이 커지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후 매출은 4월부터 10월까지 매달 최소 4%에서 최대 30%까지 증가했다. 이 보고서는 말미에 “플랜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화원·화초의 매출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홈가드닝은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개인의 이슈와 맞물려 플랜테리어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삶에 익숙해진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반려식물’이다. BTS를 비롯한 여러 연예인들이 자신들이 기르는 식물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증가했다. 이제는 단순히 1인 가구나 노령층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관련 산업의 성장 해외에서도 여러 기업들이 기존에 없던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들을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홈가드닝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로봇 제조 스타트업인 빈크로스(Vincross)는 반려식물에 로봇 기술을 접목해 반려 동물처럼 움직이는 로봇 반려식물을 개발했다. 오스트리아의 스타트업인 하버트(Herbert)는 반려식물의 인테리어 기능을 강조한 수직공간에서 자라는 반려식물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포닉스 시스템(Ponix Systems)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액자와 같이 실내 벽면에서 수직으로 반려식물을 키울 수 있는 서비스다. 이 외에도 집을 비워야 할 때 반려식물을 맡길 수 있는 반려식물 전용 호텔 서비스나 반려식물을 치료해주는 병원이 등장했는가 하면, 반려식물의 각종 증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국내에서는 집에서 직접 키워 먹을 수 있는 식물재배기 렌탈 사업이 호황이다. 발명진흥회 지식재산평가센터가 내놓은 '국내 식물재배기 시장 전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00억원 수준이었던 식물재배기 시장 규모는 2023년 5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관련 전시 산업도 활발하다. 올해 초 국립세종수목원에서는 특별전시회 ‘안녕, 나의 반려식물-Hello, My Houseplant’가 열렸고, 서울의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의 전시장에서는 10월까지 ‘정원 만들기-Gardening’전시가 계속된다. 심리학자 스티븐 카플란(Stephen Kaplan)은 인간이 축적된 정식적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연을 찾는다는 ‘주의력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주장했다. 식물은 세로토닌을 분비해 불안과 우울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홈가드닝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식물이 주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했다. 코로나 19사태가 끝난 후에도 홈가드닝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아 갈 것이라 예측된다. 홈가드닝은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개인의 이슈와 맞물려 플랜테리어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삶에 익숙해진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반려식물’이다. 온라인 홈가드닝 클래스는 단순히 화분에 흙을 넣고 식물을 심는 것에서 벗어나 벽걸이 액자 오브제 같은 트렌디한 작품을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한 과정이 있다. ⓒ CLASS 101 홈가드닝 클래스는 식물 큐레이션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식물을 화분에 심는 과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 생활의 전반을 함께 고민하고 그동안 식물 생활에 실패한 이유, 식물로 공간을 꾸미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 CLASS 101 정대헌 (Jeong Dae-heon 鄭大憲) 사단법인 한국생활정원진흥회 회장 ( President, Korea Gardening Life Association), 월간 가드닝 기자(Reporter, Monthly Magazine Gard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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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지역 관광을 주도하다 색다른 지역 관광을 주도하다 전라북도 농촌 도시인 순창에 사는 레아 모로 씨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구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길 원한다. 레아 모로는 매주 닷새동안 전라남도 순창군 투어 버스인 ‘풍경버스’에서 안내를 진행한다. 풍경버스는 강천산 군립공원, 전통고추장 민속마을, 채계산 등 순창의 주요 관광명소를 돈다. 프랑스 리옹 근처 인구 1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이제롱(Yzeron) 출신인 레아 모로 씨는 자신이 ‘주류 여성’이 아니라고 소개한다. 케이팝 그룹 중 BTS와 블랙핑크에 감탄하긴 해도 그녀가 아주 좋아하는 가수는 인디밴드 새소년이다. 그리고 서울의 명소보다 소도시의 생활을 선호한다. 풍부한 전통 문화와 관습이 남아 있는 전라북도 시골 도시인 순창에서 레아 씨는 지역 공무원으로 관광 홍보 일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외국인이 지역의 관광 명소를 격찬하며 홍보하는 걸 보면 당연히 놀란다. 레아 씨의 한국어 발음은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전달할 때는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순창은 고추장과 많은 명승지로 유명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는 않는 곳이다.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고 이들이 주변을 쉽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순창군은 2019년에 버스 투어를 도입했고 이를 위한 가이드를 찾고 있었다. 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레아 씨의 친구가 그녀를 추천했다. “제가 불어, 영어, 한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친구가 설득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이미 유튜브 여행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고 관광산업 관련 경험도 있었다. 순창군이 그녀를 위해 관광 홍보관 자리를 만들기로 결정했지만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기 위해서는 상부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6개월 후에 그녀는 홍보관으로 채용되었다. 지역 사람들은 그녀를 “프랑스 공무원”이라 부른다. 레아 씨는 군에서 인기가 많다.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데 보관함에는 작업용 장갑, 아줌마 바지, 카메라와 한복이 들어 있다. 그녀의 일을 수행하면서 농부들에게 도움을 줘야 할 때도 있고 비디오 영상을 찍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KBS의 같은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는 것 역시 자신이 맡은 홍보 일의 일부라 생각한다. 그녀는 소도시에는 볼 게 별로 없다는 편견을 떨쳐버리고 한국에는 서울과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외에 훨씬 더 경험할 게 많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방랑벽 고향 마을 이제롱에서 순창까지 오게 된 건 여행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프랑스 시골에서 자란 레아 씨는 늘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그러다 어린 시절 가족이 발리에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오토바이를 탔어요. 부모님은 저와 제 여동생을 다리 사이에 태우셨죠. 이 여행이 제 삶의 모든 걸 바꿔놓았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여행을 통해 세상에는 다른 모습의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언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레아 씨는 호주에서 18개월 동안 일하고 영어를 배우고 때때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 다이빙을 즐겼다. 이후 태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동남아시아 여행을 했다. 결국 여행 산업에 마음을 두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관광경영 학사를 취득했다. 이 수업이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한 나라에서 6개월간 인턴을 하는 거였다. 한국인 친구가 광주에 있는 페드로 하우스와 여행 카페를 추천했다. 2016년 그녀는 한국에 왔고 거의 2년 동안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게 되었다. “광주를 사랑하게 되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역사를 좋아했던 할아버지로부터 한국 역사에 대해 배웠어요. 할아버지는 남한과 북한에 대해 알려주셨죠. 하지만 광주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광주는 한국의 현대사와 한국사회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곳이었어요.” 광주에 사는 동안 그녀는 전라도 지역을 많이 여행했고 특히 인근 섬들을 포함해 외진 곳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외국인을 위한 관광정보가 없었기 때문이 이 여행들은 외국인 배낭 여행자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페드로 하우스의 주인 페드로 김(본명 김현석)과 함께 가이드북을 쓰게 되었다. 책은 출간되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서 “전라 고 (Jeolla Go)"라는 이름의 채널로 재탄생되었다. 나중에 경상도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조선산업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거제도의 문화센터에서 한동안 일하기도 했다. 광주로 돌아왔을 때 순창에서의 일자리는 좀 더 지속적인 일을 추구했던 그녀에게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모로는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해 주로 순창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최근에는 한국인을 더 많이안내한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의 한국말 설명을 들으며 순창의 여러 장소를 흥미롭게 돌아본다. ⓒ Lea Moreau 아주 바쁜 가이드 관광 홍보관이자 경험 많은 배낭여행자로서 레아 씨는 다른 여행자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데 즐거움을 갖는다. 그녀는 소도시에는 볼 게 별로 없다는 편견을 떨쳐버리고 한국에는 서울과 케이팝과 케이 드라마 외에 훨씬 더 경험할 게 많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녀는 순창에는 한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 중 하나가 있다고 예를 든다. 또한 봄에는 벚꽃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유명한 진해나 하동보다 덜 붐빈다. 가을에는 강천산국립공원의 단풍이 유혹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새 일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고 관광은 사실 거의 정지된 상태다. 미소 짓는 얼굴 모습을 하고 오픈탑 형태를 갖추고 두 개의 버스를 합쳐 특별히 제작된 순창 시티투어버스는 현재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약 10명 정도 실어 나른다. 팬데믹 방침에 따라 모두 버스를 타기 전에 체온을 측정한다. 투어는 외국인 승객이 없을 때는 한국어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여행이 가상체험으로 이루어지는 이때 레아 씨의 홍보 일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속된다. 매주 한 번 정도 그녀는 ‘전라 고’에 새로운 내용을 업로드하고 순창군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순창 튜브’에도 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그녀는 가장 좋아한다. “영상 촬영을 좋아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저희 반은 마다가스카로 여행을 갔고 그때 제가 촬영을 맡았어요. 물론 그때 찍은 영상의 질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촬영 기술이 좋아진 게 분명하다. 작년에 관광 비디오 컨테스트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50만원 상금으로 그녀는 파노라마 촬영을 위해 드론을 구입했다. 현지 이웃들 사이에 ‘프랑스 공무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모로는 현재 순창군 미생물산업사업소 미생물계 소속 직원이다. 순창은 고추장, 된장으로 유명하고 미생물산업사업소는 이런 발효 음식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덕분에 모로는 고추장과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매력에 관해 한국사람만큼 잘 안다. ⓒ Lea Moreau 꿈을 살다 레아 씨는 최근에 순창군과의 계약을 3년 연장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한국을 좀 더 잘 알게 되는 거예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제가 한 곳에 머무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사귄 친구들 때문이에요. 한국인은 정말 환대해 줘요. 외국인을 보면, 특히 시골에서는, 도움을 주려고 하죠. 제게는 그런 만남이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 되고요.” 레아 씨는 자신의 한국어가 완벽하지 못함에도 동료 공무원들이 자신에게 행정 시스템과 일에 대해 알려주려고 애를 쓰는 걸 고맙게 생각한다. “저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저를 신뢰하는 걸 알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고마운 생각에 그녀는 일주일에 10시간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레아 씨의 개인적인 삶의 모토는 “인생을 꿈꾸지 말고 꿈을 살아라”이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과 여행에 대한 책을 쓰는 것, 여행 TV쇼를 만드는 것, 지역 산업을 좀 더 홍보해서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는 것 등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좀 더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글로벌 여정을 공유하도록 영감을 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조윤정 프리랜서 작가, 번역가 허동욱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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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전민희(Jeon Min-hee 全民熙)는 1990년대 PC통신망을 기반으로 등장한 판타지 소설의 1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1999년 연재를 시작한 『세월의 돌(The Stone of Days)』 이후 지금까지 수십 권의 작품을 펴냈으며, 그중 상당수가 일본·중국·태국·대만에서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와 ‘아키에이지’ 시리즈는 게임의 밑바탕이 되었다. 경복궁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판타지 소설가 전민희(Jeon Min-hee 全民熙)는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세월의 돌(The Stone of Days)』을 연재하며 데뷔했다. 그의 소설은 섬세한 묘사와 서정적인 문체로 국내외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소설가 전민희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있고, 서울에서 가장 고즈넉한 동네인 대통령 관저 부근 마당 있는 집에 산다. 얼핏 평범한 가정주부나 커리어우먼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꼽힌다.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연재하기 시작한 『세월의 돌』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18세 소년 파비안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목걸이의 네 가지 보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무려 400만 회 접속을 기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판타지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된다.작가 특유의 판타지 세계관은 게임 업계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2003년 출시된 넥슨의 클래식 RPG 테일즈위버(Tales Weaver)와 2013년 출시된 엑스엘게임즈의 RPG 아키에이지(ArcheAge) 같은 인터넷 게임이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올해로 데뷔 몇 년째인가? 1999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23년째다. 총 3부로 이루어진 ‘룬의 아이들(Children of the Rune)’ 1부 『룬의 아이들 – 윈터러(Winterer)』(2001~2019)가 2001년 처음 종이책으로 출간됐으니,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2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판매 부수는 얼마나 되는가? 7권으로 완결된 『룬의 아이들 - 윈터러』와 9권으로 끝을 맺은 『룬의 아이들 – 데모닉(Demonic)』(2003~2020)을 2018년 출판사를 바꿔 개정판을 냈다. 그때 추산해 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300만 부가량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 개정판을 계속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작품 퀄리티에 신경을 쓰기 때문인가? 판타지 소설가들은 대개 작품 고쳐 쓰는 걸 싫어한다. 나처럼 어떤 계기가 생겼을 때 글을 수정하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전 작품을 고칠 시간에 새 작품을 쓰는 편이 작업의 즐거움이나 명성, 수입 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퇴고를 거듭해서 책을 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른 시점으로 다시 보면 보완하고 싶은 게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세월의 돌』은 2004년 출판사를 바꿔 다시 출간했는데, 첫 작품이라 애착이 크기는 했어도 미숙한 대목들이 빤히 보여 차마 그대로는 찍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때 고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후 다른 작품들도 다시 손대지 않았을 것 같다. “흔히 판타지 소설은 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된다. 그런 사전 작업이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전 작가의 대표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는 1부 『룬의 아이들 – 윈터러(Winterer)』(2001~2019), 2부 『룬의 아이들 – 데모닉(Demonic)』(2003~2020)에 이어 3부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Blooded)』(2018~)가 현재 4권까지 출간되었다. 번성했던 고대 왕국이 갑자기 멸망한 지 천여 년 후 여러 국가와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을 벌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정판에 대한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 단순히 문장만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에피소드를 집어넣기도 하다 보니 독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렸다. 개정판을 다시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아무래도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된 작품을 더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 차츰 늘어났고,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달라진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공유하는 독자들도 있다.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우누리에 처음 연재하던 20대 때는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썼다. 그런데 의외로 소설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세상에는 나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취향을 오롯이 반영해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척척 만들어 붙였다. 근본적으로는 판타지라는 장르에 내재해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판타지 소설은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성과 호소력이 있다. 거대한 세계를 조명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흔히 판타지 소설은 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도시 문화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사전 작업이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어떤 계기로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됐나? 어린 시절부터 습작을 했다. 그때는 그저 쓰고 싶은 걸 썼을 뿐인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썼던 것들이 판타지에 속했다. 이 장르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건 나우누리의 판타지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부터였고, 이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990년대는 판타지 소설이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나와 시대적 코드가 맞았던 거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명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4학년이던 1997년 한국이 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려야 할 수도 없었고, 취직을 못 해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은 시기였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돈을 못 벌게 됐으니 좋아하는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였다. 판타지 취향은 어떻게 생기게 됐나? 아마도 어렸을 적 어린이용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생긴 것 같다. 나는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 이를테면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같은 작품을 정말 좋아했다.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그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자신의 소설이 어떤 특징을 보인다고 생각하나?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독자들이 내 소설 세계를 비평하는 글을 내놓을 때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어떤 독자들은 내 작품을 ‘청소년 소설’ 스타일로 규정한다.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 독서 시장에 청소년 문학이라는 영역이 정착되었지만, 내가 처음 소설을 쓸 때는 그런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청소년을 타깃 독자층으로 삼았던 이유는 전근대 시기에도 아이들은 성인식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쳤는데,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연령대의 독자들을 위해 통과의례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그런 구조라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가 부모님을 비롯해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두려워서 도망쳤던 최초의 대상과 대면하게 되는 내용이다. 오래된 독자도 많을 것 같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 중 2부의 마지막 권이 나온 게 2007년인데, 3부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Blooded)』 1권을 2018년에 출간했다. 무려 10년도 넘어서 나온 거다. 그동안 내 소설을 잊어버린 독자도 있을 수 있고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한 독자도 있을 텐데, 폭설이 내린 겨울 아침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작가 사인회에 무려 500명이나 나타났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룬의 아이들 - 윈터러』로 내 소설에 입문해 이제는 20~30대가 된 독자들이 나를 찾아준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사실상 올해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손대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 작업도 해야 하고,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도 계속 써야 한다. 신준봉(Shin June-bong 申迿奉) 『중앙일보』 기자 한상무(Han Sang-mooh 韓尙武)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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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UMMER 854

대만족의 삶이라 말하는 니코 대만족의 삶이라 말하는 니코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 (Kordonias Nikolaos) 셰프는 어린 시절 맛본 지중해 요리를 오랫동안 즐겁게 만들고 있다. 여러 해를 길 위에서, 다양한 부엌에서 보낸 후 정착한 서울에서 자신의 식당을 경영하며 요리하고 있다.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익선동에서 한 블록 떨어진 작은 골목길에 예상치 못한 그리스문화의 안식처가 손짓한다. 한옥에 들어선 ‘니코 키친’이 토착 그리스 요리를 선보이면서 단골손님을 만들어내고 있다. 식당 주인인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 셰프, ‘니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에게해에 있는 사모트라키섬에서 성장한 자신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준다. 이 섬은 날개를 단 승리의 여신 니케를 비롯해 신화의 위대한 신들의 성소가 있는 곳이다. 자신의 고향인 이 고대의 섬을 니코는 목가적으로 묘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얀색으로 칠해진 집들로 가득한 그리스의 섬을 떠올리게 한다. “아름답고 조용하고 사람들은 친절해요. 삶의 속도는 느리고요.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롭죠. 걱정을 하지 않아요. 집이 있고 일이 있으니까요. 삶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원하는 대로 살고 있고 행복하죠.”물론 게다가 “아주 좋은 음식”도 있다. 대화에서는 유기농 생산품, 신선한 닭, 사모트라키섬 주위의 코발트 색 바다에서 잡은 맛있는 생선에 대해 풍부한 얘기가 오갔다. 성장기에 엄마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그를 사로잡았다. “아마도 냄새였을 거예요.”라고 니코는 말한다.이 모든 게 현재의 그의 삶과 일에 대해 말해준다. 2004년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곧바로 다른 음식의 냄새를 알아차렸다. 곧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서 요리하는 포장마차의 냄새였고, 아주 달랐어요. 고추, 김치 같은 냄새가 공기에 떠다녔죠.”라고 그는 기억을 되살린다. 그는 국제적 정취로 가득한 서울의 이태원에 있는, 지금은 문을 닫은 그리스 식당 산토리노에 일자리를 얻었다. 어린 시절 태권도 수업 외에는 한국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는 한국이 어떤 곳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한국행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동은 그에게 자연스러웠다. 지중해와 카리브해 지역의 항구 사이를 운행하는 크루즈 배에서 일한 후 그는 뉴욕의 요리학원에서 공부했고 맨해튼에서 명망 있는 셰프들과 일했다. 그 후 지인이 식당을 여러 개 운영하는 캐나다에서 6년을 보냈다. 오너 셰프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는 아침마다 서울 익선동에 자리한 레스토랑 니코키친의 한옥 문을 직접 연다. 그는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곁들인 휴식을 즐기며 아름다운 그리스를 상상하길 바란다. 한국에 정착하다 이태원에서 일하는 동안 니코 씨는 우연히 산토리노가 들어선 건물에서 일하는 서현경 씨를 만났다. 그들은 오가며 마주치다가 결국 결혼으로 골인했다. 니코는 그리스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고 서 씨는 이전에 여러 해를 살았던 일본으로 되돌아갈 계획을 보류하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그냥 운명적인 것 같아요.”라고 니코 씨는 서울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일에 대해 얘기했다. 2018년에 니코 씨와 그의 아내는 ‘니코 키친’을 열었다. 특별히 한옥을 찾아 나선 건 아니었지만 한옥의 건축 양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 집을 샀을 때 불을 먹는 신화적 동물인 해태상 두 개가 있었는데 이전에 이곳에 입점한 카페에 남아 있었던 거였다. 해태상은 꽃나무 화분으로 가득한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고 있다. 니코 키친은 조선왕조의 군인들이 종묘 주위를 순찰할 때 사용한 순라길에서 연결된 골목길에 위치한다. 종묘와 이어진 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이 있다. 가까이에는 역사가 오래된 불교 사원이 있고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한국의 전통적인 색동천을 전시하는 색동박물관이 있다. 식당은 매일 영업을 하며 니코 씨가 모든 요리를 한다. 그의 아내는 그가 일중독자라고 하지만 그는 아주 행복해 보인다. “이게 제 삶이고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저 자신이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또 방문하는 게 좋아요.” 점심과 저녁 사이에 니코 씨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이때 그는 서울의 여러 곳을 걸어 다닌다. 궁궐이나 절,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에도 간다. 팬데믹 전에는 사우나에서 몸을 풀기도 했는데 지금은 참고 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여유 있게 식사하고 와인을 맛보고 긴장을 푼다. 바로 이것이 니코 씨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며 그가 원하는 식당의 분위기이다. 니코키친의 셰프는 오직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 한 명이다. 그가 나고 자란 에개해의 작은 섬, 사모트라키섬의 맛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내기위해 신선한 그리스식 재료와 레시피를 사용한다. 니코키친의 작은 공간 곳곳에는 그리스를 떠올리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다. 냉장고의 한 면에는 그리스의 상징적인 지역 사진이 프린팅 된 귀여운 마그넷들이 붙어있다. 식도락가들이 발견한 곳 익선동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니코 키친은 그냥 지나치다 들어오는 손님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곳은 늘 예약이 꽉 차 있다. 요리 프로그램을 향한 한국인의 채워지지 않는 식욕이 이 식당으로 이어졌고, 니코 씨는 ‘여기GO’ ‘올리브쇼’(올리브 채널) 등 몇몇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손님으로도 심사위원으로도 출연했다.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면서 아침 일찍부터 식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전화와 이메일 연락이 온종일 오게 되었다. 니코 씨는 텔레비전 출연의 혜택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요리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 메뉴는 그리스 가정식을 바탕으로 한다. 가지와 다진 소고기로 만든 그리스 전통 음식인 무사카는 지속적으로 손님들이 찾는 요리다. 페타 치즈를 넣은 그리스 샐러드, 브라타 샐러드, 치킨 수블라키와 새우 사가나키도 인기 메뉴다. 그리스 음식이 아직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기 때문에 피자나 파스타도 메뉴로 제공된다. 하지만 니코 씨 자신만의 스타일로 직접 만든 사워 반죽을 사용해 만든다. 퓨전 메뉴를 선택한 건 좀 더 자유롭게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기분이 날 때면 스페인 요리나 이태리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자유로움을 좋아한다.하지만 그가 만드는 음식의 핵심은 항상 같다. 건강한 지중해 스타일의 음식으로 신선하고 자연의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대부분 채식이고 무설탕에 튀김은 최소로 한다. 과거에는 그리스 식재료를 구입하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원하는 것을 온라인으로 모두 구할 수 있다. 특정한 치즈나 다른 재료를 급하게 구해야 하면 출근길에 그가 아직 살고 있는 이태원의 가게에 들르면 된다. 대부분의 식당처럼 니코 키친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영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리스 대사관의 직원들과 근처 절의 스님들을 포함해 많은 손님들이 단골이다. 불교 경전의 여러 장면을 묘사한 다채로운 색의 절 외관이 식당의 정문 위 너머로 보인다. 니코키친은 테이블 4~5개가 전부인 작은 레스토랑이고 모든 좌석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니콜라오스와 그의 아내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손님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니코키친은 테이블 4~5개가 전부인 작은 레스토랑이고 모든 좌석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니콜라오스와 그의 아내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손님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앞날들 자신이 선택한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후 니코 씨는 잘 관리된 빌딩과 거리, 그래피티 같이 공공 지역의 흉물이 없는 것, 그리고 교양 있고 친절한 한국인에 대해 얘기했다. “여기는 천국 같아요. 완벽한 곳이에요. 그래서 이곳에 사는 게 행복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리스를 많이 그리워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팬데믹이 지나가고 일상이 회복되면 사모트라키섬에 가보고 싶어 한다. 좀 쉬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음식을 맛보고 바다낚시도 하고 싶다. 그는 자기 인생의 다음 단계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건 퓨전 음식 없이 온전히 그리스 요리만을 제공하는 좀 더 큰 식당을 여는 것이다. 그동안 상황을 살펴왔고 이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한 곳에서 모두 실현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물론 돈도 벌고요.”라고 그는 말한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이것이 니코 씨의 간단한 철학이다. 그렇게 말하자 그의 아내가 끼어들어 응수하며 비밀을 폭로했다. 니코 씨가 햄버거를 좋아하고 가끔은 켄터키 프라이 치킨을 즐긴다고. 음식이 그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그를 여기에 붙들어 두었으며 그를 행복하게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날 때 만족스럽지 않으면 피곤해집니다. 하지만 만족스러워 미소 지을 수 있으면 모든 문제와 피로는 사라지죠.” 조윤정프리랜서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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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UMMER 711

추억을 선물하는 가게 추억을 선물하는 가게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젊은층에게는 새로움을 안겨주는 ‘레트로’가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옛 도심 종로의 레트로 열풍을 이끌고 있는 한 레코드 가게를 찾았다.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러시아의 문학 이론가이며 작가 빅토르 쉬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 1893~1982)가 처음 사용한 문학용어이다. 익숙한 이야기 구조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친근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지루함을 줄 수도 있다. 반면 어려운 형식의 구조는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키고 흥미와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세상은 쉽고 편리하고 간단한 것을 지향하고 있는 듯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곳을 꿈꾸고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기대한다. 레트로스펙트(retrospect), 또는 요즘 ‘레트로’라고 줄여서 쓰이는 말은 회상, 추억이라는 의미지만 ‘과거의 추억이나 전통 등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본뜨려는 성향’이란 의미로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새것은 헌것이 되고 헌것은 새로운 세대의 새로움이 된다. 노년은 젊음을 그리워하고 젊음은 노년이 누렸던 것을 동경한다. 역시 인간은 복잡하다. 레트로 감성이 한껏 풍기는 턴테이블이 돌고 LP판 위에 스타일러스를 올리는 순간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서울레코드를 채운다. 요즘처럼 깨끗한 음질은 아니지만 턴테이블이 주는 특유의 감성적인 사운드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황승수 대표 역시 오프라인 레코드 시장이 부활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세대를 뛰어넘어 서울레코드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클래식, 재즈, 국악, 트로트, 로큰롤, 올드팝, 뮤지컬, OST, K-팝 등 장르별로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새롭게 주목받는 LP 제2의 성황기를 맞은 서울레코드는 항상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이곳을 찾는 누군가는 추억에 젖고 누군가는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매력에 빠진다. 1980년대 CD가 보급되기 전까지 비닐은 20세기 음악 재생의 가장 중요한 매체였다. CD와 MP3, 음원 생산으로 쇠퇴기를 맞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비닐이 주는 따뜻한 감성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서울레코드의 내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적으로 꾸며졌지만, 단층짜리 옛 건물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종로3가 거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에 있는 ‘서울레코드’는 낯설고도 익숙하고, 오래된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다. 1976년에 문을 열었고 지금의 황승수(黃昇洙) 대표는 이곳의 네 번째 주인이다. LP와 카세트테이프가 CD로 바뀌고, DVD가 반짝 성황을 누리다가 사라진 이후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음반업계의 전망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 와중에 45년을 한자리에서 버틴 40평 남짓한 레코드가게는 그 어떤 레코드보다 희귀할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사장님이 2000년까지 하다가 mp3가 나오면서 가격경쟁이 안 돼서 정리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음반은 소유하는 것보다 듣기 위한 게 목적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앨범을 사지 않을 것 같았죠. 당시 직원이었던 분이 가게를 인수하면서 두 번째 사장님이 됐어요. 처음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한류가 시작되면서 외국손님들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운영을 하다가 세 번째 사장님에게 가게를 넘겼어요. 두 번째 사장님 밑에 있던 부장님이 가게를 계속 운영했는데 그때 제가 직원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일을 시작하고 3년째 되었을 때 세 번째 사장님이 가게를 정리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인수받게 되었어요.” 2015년의 일이었고 그는 40대 초반이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서 돈을 벌 궁리를 해야 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보다 잘 알고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형이 비디오 유통업체에 있었어요. 비디오, CD, DVD 같은 것들은 유통구조가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전축 시스템 가져오셔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0대 때는 형을 따라 레코드 회사에도 가봤어요. 그러면서 이쪽 세계를 잘 알게 되었어요.” 처음 직원으로 일하던 시기에는 손님의 연령대가 꽤 높았다. 가게 뒤에는 세운상가(1968년 완공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 길 건너에는 종묘(宗廟 1394년에 착공한,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옆에는 탑골공원(塔골公園 1897년, 영국인 브라운(J. M. Brown)의 설계로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젊은 세대들은 보기 힘든 동네이기도 하다. LP를 찾는 40, 50대가 그나마 젊은 쪽이었고 카세트테이프를 사려는 노인들이 주고객이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힙(hip)’하다는 의미에서 ‘힙지로’로 불리게 된 을지로, 새로운 핫스팟으로 떠오른 한옥마을을 찾는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늘어났고, 음반업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던 LP가 신선한 아이템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의 연령대가 낮아졌다. 어쩌면 손님들은 물건이 아니라 추억을 구하러 오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세상에서 익숙한 것을 구하고, 익숙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다. 추억의 공유 “우리 때는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게 중요했어요. 지금은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으니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음반업계는 소멸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제 듣는 것보다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긴 거예요. 스마트폰 화면에 음반 재킷 하나 떠 있는 걸로 성이 안 차는 거죠. 그래서 LP를 사는 게 아닐까요? 젊은 사람들이 와서 LP에 바늘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걸 보면서 저도 놀랐어요. 조금 더 깨끗한 소리를 위해 CD가 나온 거잖아요. 세상은 이렇게도 바뀌고 저렇게도 바뀌는구나 싶어요.” 이제는 특정 세대가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이곳을 찾는다. 딸들이 아버지를 데려오기도 하고,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와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고른다. “어릴 때 듣고 좋아하던 곡인데, 가사도 조금 알고 멜로디도 기억하는데 제목은 모른다며 물어보는 분들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 컴퓨터도 할 줄 모르고 혼자 사시는 분들이에요. 이렇게 저렇게 추리해서 찾아드리면 감동하시고, 그걸 보면 저도 기분이 좋죠.” 1960년대에 유명세를 떨쳤던 밴드의 곡이 혹시 있느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곡을 찾아서 틀었는데 놀랍게도 노래를 부른 사람과 손님의 목소리가 흡사했다. 혹시 본인이 부른 곡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음반을 찾아다녀도 없어서 듣고 싶어도 못 들었던 곡이라 했다.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서 살던 분인데, 집안이 어려워서 학교를 못 다니고 영화 포스터 붙이는 일을 했다는 손님도 있었어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밥을 굶고 영화를 봤다는 거예요.” 길고도 복잡한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손님으로 왔다가 추억을 공유하게 된 사람들은 마음에 온기를 품고 돌아가고, 사탕이나 귤, 음료수 같은 걸 들고 다시 찾아와 정을 나눈다. 아름다운 배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아홉 시 반에서 열 시 사이에 서울레코드의 셔터가 올라간다. 문은 아내가 열고 황대표는 영두 시에서 한 시 사이에 나와서 교대한다. 저녁 일곱 시 반에 문을 닫는데, 장사가 안 되는 날은 더 늦게까지 열어두기도 한다. 저녁 일곱 시 반 이후, 셔터가 내려진 레코드가게 앞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내일의 신청곡’ 시간이다. “가게 앞에 빨간 우체통이 있어요. 신청곡을 써서 넣으면 틀어드려요.” 하루 동안 들어온 신청곡을 비롯해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을 더해서 파일을 만들고, 가게 문을 닫은 후 틀어 놓는다. 음악은 밤 열두 시까지 흘러나온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어둠이 내린 밤의 거리,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삶은 어떻게든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안에서 놀거리를 찾는 거예요.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 쉬는데, 그날도 음악 듣고 오디오 만지작거리고 영화 보고 그래요. 어떻게 보면 취미를 다 여기 가져다놓은 거예요. 아내가 그래요. ‘너 놀려고 이거 차린 거지?’” 옆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사장님의 놀이터를 공유하고 있는 거예요”하고 한마디 거든다. “처음부터 크게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저 유지하면서 좋아하는 음악 듣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저는 여기서 놀고 손님들은 찾던 음악을 구해가고요.” 어쩌면 손님들은 물건이 아니라 추억을 구하러 오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세상에서 익숙한 것을 구하고, 익숙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의 말처럼 세상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흘러간다. 그 흐름 안에 아름답고 정다운 음악이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 Ahn Hong-beomPho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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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UMMER 636

아픔이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공감 아픔이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공감 그래픽노블 작가 김금숙(Keum Suk Gendry-Kim 金錦淑)은 역사적 소재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려 왔다.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Jiseul)』(201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다룬 『풀(Grass)』(2017),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의 삶을 기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2020) 등 여러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에서 출판되었다. 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얘기를 다룬 김금숙(Keum Suk Gendry-Kim 金錦淑) 작가의 그래픽 노블 『풀』의 한 장면. 2. 그는 주로 굵직한 역사적 주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에 담는다. 지난해 10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례없이 온라인 중계로 진행된 뉴욕 코믹콘(New York Comic Con)에서 하비상(Harvey Awards) 수상작들이 발표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그래픽노블 『풀(Grass)』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 작품은 ‘최고의 국제도서(Best International Book)’ 부문에서 수상했다.2017년 국내에서 출판된 『풀』은 2019년 캐나다의 만화 전문 출판사 Drawn and Quarterly에서 영어판이 출간된 이래 지속적으로 반향을 일으켰고, 2019년 『뉴욕타임스』와 『더 가디언』이 각각 ‘The Best Comics of 2019’와 ‘The Best Graphic Novels of 2019’로 선정했다. 이듬해에도 크라우제 에세이상(The Krause Essay Prize),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최우수 출판만화상(Cartoonist Studio Prize)을 수상하는 등 10곳에서 상을 받았다.작가는 하비상 수상자로 발표된 뒤 두 달이 지난 2020년 12월에야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트로피를 받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실제 트로피를 받는 데도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풀』은 최근 포르투갈어와 아랍어로도 번역돼 출간됐고, 지난해 가을 나온 신작 『기다림(The Waiting)』은 프랑스어판이 출간되었으며 영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출판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김 작가를 그가 살고 있는 강화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회화와 설치미술을 전공했는데 그래픽노블 작가로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Éco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de Strasbourg)에서 설치미술을 배웠어요. 생활고 때문에 한국 만화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맡았는데,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게 되어 그곳에 소개한 한국 만화 작품이 100권이 넘어요.그러던 어느 날 현지 한인 신문사로부터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저 역시 만화 번역을 하면서 이 장르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참이었죠. 작가의 생각을 종이와 연필만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거예요. 하나씩 그리다 보니 연재 작품 수도 여럿 늘어났죠. 만화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말풍선이나 대화 표현을 어떻게 해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과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나요? 스토리 면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영향이 있었죠. 특히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만화로 잘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희재(李喜宰), 오세영(吳世榮)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네요. 그림 쪽으로 보면 저는 구상보다는 추상, 그리고 설치나 조각 작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화풍에 있어서 제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에드몽 보두앵(Edmond Baudoin)이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그래픽노블로 그린 호세 뮈누즈(Jose Munoz)가 있어요. 특히 흑백의 붓터치를 강조한 부분에서요. 그밖에도 조 사코(Joe Sacco)나 타르디(Tardi)도 제게 여러모로 영향을 줬어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많은 편인데, 초기작 중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꼽는다면요. 저는 자전적인 이야기, 일상을 겪으면서 느낀 점들, 또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루 엮습니다.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소재들을 제가 겪은 일들과 연결시키면서 간절하게 와닿는 이야기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하죠. 그중 『아버지의 노래(Le Chant De Mon Pere)』(2013)는 한국의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평범한 가족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서울로 이주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 시절 힘들었던 가족사에 당시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투영했죠. 어린 시절의 추억도 담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판소리를 하셔서 어릴 적 마을에서 누가 돌아가시면 아버지가 상여 소리를 도맡곤 하셨죠. 하지만 서울에 와서는 동네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소리를 하실 일도 없었어요. 초기작에서 아버지를 다뤘다면 최근작에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다림』(2020)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에요. 20년 전 파리 유학 당시 어머니가 오셨는데, 그때 진중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머니의 언니, 제게는 큰이모 되시는 분이 북한에 계시다고요. 외가댁 식구들이 고향인 전남 고흥을 떠나 만주로 가던 길에 평양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이 생겨 어머니는 남쪽으로 내려오고 큰이모는 그곳에 남았던 거죠. 어머니가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그런 가족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진행될 때도 우선순위에서 밀려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누군가 해야 하는데 내가 하자 마음먹었고, 어머니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가 됐죠. 그런데 이산가족 문제는 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도 전쟁을 겪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궁극적으로 전쟁 때문에 약자들이 희생되고 난민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문제를 담고 싶었습니다. 『풀』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이 인류 모두의 비극이라는 시각에서 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시기를 따지고 올라가면, 1990년대 초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게 계기가 됐어요. 이후 프랑스에 가서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통역을 맡은 적이 있어서 자료를 읽으며 더 자세히 알게 됐고요. 그래서 2014년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 d'Angoulême) 출품작으로 「비밀」이라는 단편을 냈어요. 위안부 피해자의 삶과 고통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드러내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 작품은 단편이라 무거운 주제를 다 담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래서 꼬박 3년 동안 매달리며 더 많은 고민을 거쳐 장편으로 만들었어요.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약자가 당하는 폭력, 그리고 제국주의와 계급적 문제로 접근했죠. 작품에 나오는 이옥선(李玉善) 할머니를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안타까웠던 게 있어요. 할머니가 전쟁이라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희생자였는데, 전쟁 후에도 침묵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풀』만 해도 14개 언어로 번역됐는데 이처럼 여러 문화권에 넓게 파급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제 작품들은 프랑스에서 번역돼 나온 책이 제일 많긴 해요. 『풀』의 경우 일본어판을 낼 때 그곳 분들이 앞장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간에 도움을 준 일이 놀라웠어요. 무엇보다 번역가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제 이야기가 독특하고 또 사람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그런 점을 다른 문화권에 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준 메리 루(Mary Lou), 영어로 번역해 준 미국의 한인 번역가 자넷 홍(Janet Hong), 일본어 번역을 맡은 스미에 스즈키(Sumie Suzuki) – 이런 분들의 도움으로 각 나라 독자들에게 의미가 잘 전달되었어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나요? 키우는 개들을 매일 어김없이 산책시켜 주고 있어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강아지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을 구상해 밑그림까지는 그려 놓았어요. 올해 여름 출판될 예정이고, 제목은 『개』로 정했어요.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약자가 당하는 폭력, 그리고 제국주의와 계급적 문제로 접근했죠.” 1. 김 작가는 요즘 강아지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 『개』를 준비하고 있다. 올 여름 서울에서 마음의숲(maumsup) 출판사에 의해 출간될 예정이며, 내년 초 프랑스 Futuropolis의 출간도 기다리고 있다. 2. 김 작가의 그래픽 노블(왼쪽부터 시계 방향): 2019년 캐나다 Drawn & Quarterly에서 출간된 『풀』 영어판, 지난해 국내 출판사 딸기책방(Ttalgibooks)에서 나온 신작 『기다림』, 지난해 국내 출판사 서해문집이 발간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올해 5월 프랑스 Futuropolis에서 간행된 『기다림』 불어판, 올해 9월 Drawn and Quarterly가 출판할 예정인 『기다림』 영어판, 2017년 국내 보리 출판사에서 출판된 『풀』, 지난해 일본 Korocolor(ころから)가 발행한 『풀』 일어판, 지난해 브라질 Pipoca & Nanquim가 포르투갈어로 출간한 『풀』. 김태훈(Kim Tae-hun 金兌勳)『주간경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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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UMMER 837

주식에 빠진 2030세대 주식에 빠진 2030세대 코로나19로 인한 우려와 혼돈의 시간이 금융 투자를 부추기는 강력한 바람이 됐다. 팬데믹의 초기에 증시가 급락하면서 평소 주식에 무관심하던 이들까지 대거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이 중심에‘2030세대’ 가 있다. 올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29세 임수빈(Im Su-bin 林秀賓)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30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계속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면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인턴 자리는 구할 수 있으나 정규직 취업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절박한 상황에 우선 작은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식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예정됐던 결혼식을 올해 9월로 연기한 33세 프리랜서 번역가 김아람(Kim A-ram 金娥濫)씨도 얼마 전 주식에 입문했다.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결혼식 참석 인원이 50명 이하로 제한되어 꼭 참석할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미루게 되자, 신혼여행 때 쓰려고 모아둔 돈을 짧은 시간이지만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는 “주식 시장이 호황이니 몇 십 만원이라도 벌어서 신혼살림에 보탤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주식 투자에 발을 들여놓은 2030세대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신조어도 잇달아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동학개미운동’이다. 젊은 개인투자자들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에 맞서 급락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황을 말하는데, 1894년 외세에 대항해 일어난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에 빗댄 말이다. 여기서 ‘개미’는 월급 받으며 매일 일하는 젊은 회사원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주린이’이도 요즘 새로 등장한 말이다. ‘주식’과 ‘어린이’를 합한 단어로, 주식에 대해 잘 모르며 거래를 시작한 초보자를 가리킨다. 이 같은 현상은 숫자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예탁결제원(Korea Securities Depository 韓國預託決濟院)이 4월 1일 발표한 ‘12월 결산 상장법인의 소유자 현황’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말 개인의 주식 보유액은 총 662조원으로 2019년 말 419조원에서 243조원 증가했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개인의 비중도 전년에 비해 3.6%포인트 증가한 28%였다. 새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개인은 약 300만명으로 전체 개인 투자자 914만명의 32.8%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한 300만명 중 53.5%인 160만명이 30대 이하였다. 성별로는 남성의 보유 금액이 489조원으로 여성의 173조원보다 많았다. 그러나 증가율로 보면 여성의 보유액이 전년 대비 77%(97조원→173조원) 늘어나, 남성의 증가율 52%(321조원→489조원)보다 높았다. 젊은 여성들도 새로이 주식 투자에 눈을 뜬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주식 투자에 뛰어든 2030대가 급격히 늘어나며 다양한 모바일 주식 어플리케이션들이 등장했다. 증권사들은 이들 ‘개미군단’을 타깃으로 고객 확보를 위해 저마다 이벤트도 펼치고 있다. ©freepik 젊은 개인 투자자들 지난해 9월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Bloomberg)가‘한국 밀레니얼 세대의 단타 투자 현상(Broke Millennials Turn to Day Trading to Strike It Rich in Korea)’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젊은 세대의 절박한 투자 현상을 심층 분석했다. 즉 전년 대비 48% 증가한 개인 투자자의 거래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65%를 차지하고 그 중의 대다수가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새내기 젊은 투자자들이며 이들 가운데 다수는 주식 투자를 위해 빚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2030세대는 왜 주식시장에 몰입하고 있을까. 첫 번째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주식 시장이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절박한 심정이다. 저금리가 굳어지면서 한동안 젊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갈 곳을 잃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 가라 앉았던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이에 투자처를 고민하던 젊은층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2020년 1월 2일, 코스피지수는 2175.17을 기록한 뒤 같은 해 3월까지 하락세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각국 정부가 긴급 재난지원을 위한 자금을 풀고 백신 개발 소식이 이어지며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식시장이 눈에 띄게 활기를 찾았다. 올 1월 4일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넘으며 현재도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리가 청년세대 투자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저변에는 하락하고 있는 청년층의 취업률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더욱 얼어붙은 2020년의 한국 고용시장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가혹했다. 통계청의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 현재 20대 취업자는 351만명으로 2019년 동기 대비 3.9%p 하락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연령층의 고용률이 감소했지만 10대가 1.5%p, 30대가 1.9%p, 40대가 1.6%p, 60대 이상이 0.1%p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20대의 감소율이 가장 크다. 고용률의 하락에 따라 실업률은 상승했다. 2020년 12월 20대의 실업률은 전년도 동기 대비 0.9%p 늘었다. 절박한 노력 취업난에 내몰린 젊은 세대를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급등하는 주택 가격이다. 정부의 잇따른 주택난 해결 대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구의 거의 절반이 모여 사는 서울의 아파트 시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두 배까지 올랐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젊은 세대는 자연히 결혼도 미루게 된다. 실제 2020년 전국의 결혼 건수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2020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2019년보다 10.7% 감소했다. 온라인 서점 플랫폼 인터파크에 따르면 올 해 1월부터 3월까지 주식·투자·펀드 분야의 도서 판매량과 매출액이 전년 동기간 대비 각각 5배씩 증가했다. 열풍의 파장 주식을 주제로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도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전에는 주로 경제 채널에서만 주식 방송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연예 전문 채널 프로그램에서도 주식 이야기하는 장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카카오TV가 지난해 9월 시작한 ‘개미는 오늘도 뚠뚠’이 있다. 인기 연예인 노홍철(Noh Hong-chul 卢弘喆)과 딘딘(DinDin)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실제로 자신들이 개설한 증권사 계좌로 출연료를 받고, 이를 투자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청자의 반응이 호의적이다. 특히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젊은층의 공감을 얻으며 방영 플랫폼을 확장해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방영되고 있는데, 매회 평균 조회 수가 200 만회에 이른다. 지상파 방송국인 MBC도 올 3월 파일럿 형태로 주식 버라이어티 토크쇼 ‘개미의 꿈’을 선보였다. 2부작으로 편성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경제 전문가와 연예인 패널들이 나와 주식 투자의 기본 지식을 자세히 설명했다. 한편 SBS의 오래 된 인기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은 올 2월, 특집으로 모의 주식투자 대회를 진행했고,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는 3월 인기 호스트 유재석이 2030세대 주식 투자자 3명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줬다. ‘주린이’들에게 주식에 대한 정보와 유머를 선사하는 예능 프로그램 이 시즌 4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Kakao Entertainment)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3명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절반은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됐다고 답했다. ©동대신문 경주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주식 열풍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박성희 (Park Sung-hee 朴性熙)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차곡차곡 월급을 모아 자동차를 사고, 내 집 마련하기를 바라던 이전 2030세대와 지금의 2030세대는 완전히 다르다. 요즘 2030세대에게 자동차는 빌리면 되는 것, 치솟은 부동산은 너무 먼 이야기가 됐다”며 “취업이 어렵고, 평생직장도 사라지고 있어 요즘 젊은 세대는 먼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소액으로 지금 바로 투자해서 수익을 낼 기회를 노린다. 특히 코로나19이후로 이 같은 추세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해외여행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들은 비대면 투자처를 알아보게 되고, 이 같은 갈증에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주식 투자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라예진(Ra Ye-jin 羅禮眞)중앙일보 S 이코노미스트 기자 (Reporter, Economist, JoongAng Ilbo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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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PRING 1183

온라인으로 즐기는 취미 생활 2019년 한국에는 취미로 뭉치는 소모임 활동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이 ‘살롱 문화’는 2020년,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 활동으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간편하게 배울 수 있는 자수 강좌는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하비풀’의 인기 클래스다. 쉽게 배울 수 있고 집안 장식에도 도움이 되는 온라인 취미 클래스들이 늘고 있다. © HOBBYFUL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와인을 좋아한다. 그는 와인의 향기와 맛을 음미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홈베이킹도 온라인 취미 교실의 인기 종목이다. 그 밖에도 자수, 뜨개질, 언어, 음악, 요리 등 온라인 클래스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는 추세다. © CLASS 101 2020년 9월 20일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20 MG새마을금고 KBL 컵대회' 울산현대모비스와 창원LG의 경기에서 코로나 19로 경기장을 찾지 못한 '랜선 응원단'이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취미를 나누는 소모임 2019년 이씨는 와인을 더 깊이 알고자 한 작은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30대 남녀 10여 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장소에서 모임을 가졌다. 서로 안부를 묻고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 매주 다른 와인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맛보는 순서로 이어졌다. 한때 스위스에 가서 좋은 와인에 맛있는 치즈를 먹는 꿈을 꾸었던 이씨는 이 모임을 통해 작은 소망을 이루어 가는 기쁨을 느꼈다. 비록 알프스행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또래의 남녀가 비슷한 성비로 만나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서 한 주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고, 궁금증과 설렘으로 한 주를 보내곤 했다. 회사 밖에서 만날 수 있는 또래들과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언제 다시 모임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지금의 생활이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에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이 모임은 이제 마치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요즘 그의 낙이라고는 늦은 밤 거실에 앉아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혼자 와인을 홀짝거리는 게 전부다. 퇴근 후 그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날도 있다. 비슷한 나날이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당장은 서로의 대화 온도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재밌다”거나 “유익하다”는 참여자들의 리뷰를 보면 온라인 활동에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만날 수 없다면 화상으로 “화상 채팅 프로그램 줌(Zoom)으로 모임을 진행합니다.” 전체 회원 수 67명인 서울의 한 독서 모임은 최근 ‘소모임(Somoim)’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활동을 계속한다고 공지했다. 지난 해 말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두 번째 가장 높은 2.5단계로 연장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방역조치에 따라 서로가 읽은 책의 감상을 온라인 대화로 나누고 소통하자는 제안이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회원들이 같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떠오르는 영감을 공유했을 ‘글쓰기 모임’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체 회원 234명인 서울의 한 글쓰기 모임은 비대면 화상회의를 제공하는 ‘구글 미트(Google Meet)’로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글쓰기 모임을 한다는 것이 낯설었던 회원들도 이내 서로의 글을 독서하듯 채팅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갈증을 풀게 되었다. 그 밖에도 ‘문토(Munto)’, ‘문래당(Moonraedang)’, ‘트레바리(Trevari)’, ‘프립(Frip)’ 등 국내에는 ‘소셜 살롱’을 표방하며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플랫폼들이 있다. 이들 중 ‘트레바리’는 독서에 특화한 플랫폼이다. 2015년 시작된 이 커뮤니티에서는 현재 400여 개의 독서 모임을 통해 6천 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 달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매달 1회씩 총 4회 모임을 갖는다. 물론, 트레바리도 정부의 방역조치에 따라 현재는 오프라인 모임을 취소한 상태다. 원하는 회원들에게는 참가비의 일부를 돌려주고,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은 서로의 대화 온도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재밌다”거나 “유익하다”는 참여자들의 리뷰를 보면 온라인 활동에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여가 활동 플랫폼 프립에서 살펴본 한 요리 모임은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제 비치, 발열 체크 등 철저히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이뤄지고 있다. 개인 별 조리도구, 장소와 재료 등이 필요해 대면활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참가 인원 다섯 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등산이나 트래킹 등을 하는 운동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요리나 운동을 온라인 활동으로 병행하는 모임도 있다. 밀키트를 배송 받아 회원들이 각자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등산’ ‘수영’ 등의 해시태그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겨 수행 정도를 서로 공유하는 등 저마다 대책을 찾고 있다. 코로나 19로 휘트니스 센터에 갈 수 없어 스마트폰을 이용한 홈 트레이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에는 실시간 새로운 홈 트레이닝 콘텐츠가 업로드된다. © LG유플러스 살롱 문화 2019년 4월,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Embrain Trend Monitor)가 전국의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활동 중인 모임’을 조사했다. 이 중 정기적으로 모임활동을 한다는 906명에게 모임의 성격을 묻자, ‘취미와 관심사에 따른 불특정 다수와의 모임’이라는 응답자가 26.2% 였다. 학교와 회사 등 기존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형태라는 답변(67.6%)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지만 새로운 경향임에는 틀림없다. 평소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응답자(749명) 중 38.9%가 ‘취미, 또는 관심사’에 집중하는 모임 참석이 필요하다고 한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어쩌면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구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대답에는 3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이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소규모 취미활동 커뮤니티, 즉 ‘살롱 문화’의 주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73.5%에 이르는 735명이 향후 여행 동호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했으며, 운동•스포츠(18.1%), 외국어•언어(15.9%), 봉사활동(15%), 영화(14.3%), 책•글쓰기(14.1%) 등의 모임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인식은 개인화된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나’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내 취향과 관심사가 누군가를 만나는데 중요한 조건이 된 것이다. 와인, 독서, 여행, 음악,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살롱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작은 개인적 경험 오프라인 모임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온라인의 형태로 변화하는중에 필자도 온라인 강좌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감도 있었다. 프립에서 ‘티매트(tea mat)’ 뜨개질 키트를 주문했다. 호스트의 안내 페이지에서 본 것처럼 뚝딱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뜨개용품을 만지면서 자신감은 이내 자괴감으로 변했다. 호스트가 보낸 URL에서 영상을 봤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호스트의 손과 달리 내 손은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아, 직접 앞에서 수업을 들었다면 더 쉽고 자세하게 요령을 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상만 보고 처음으로 뜨개질을 하려니 대면 수업의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꼈다. 몇 차례 털실뭉치와 바늘을 가지고 씨름하다가 ‘티매트는 사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손으로 짠 예쁜 매트로 찻잔을 받쳐 우아하게 커피 한 잔 하겠다던 계획도 뒤로 미뤘다. 무슨 취미 활동이나 초보들은 나처럼 온라인 클래스의 벽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다. 반면 작은 경험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문턱이 그리 높지 않을 것도 같다. 내 뭉쳐진 털실뭉치는 곧 서랍장으로 들어갔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직접 수업을 들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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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PRING 760

마음을 다려 드립니다 새하얗게 피어 오르는 김 사이를 요령 있게 움직이는 투박한 손. 김이 걷히면 구깃하던 옷은 어느새 반듯해져 있다. 온기를 머금은 깨끗한 옷을 손님에게 건네는 오기녕(吳基寧) 씨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서울의 동네 한켠을 20년 간 지켜 온 작은 세탁소는 오늘도 따뜻한 김이 가득하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로 골목의 작은 세탁소 ‘현대 크리닝’을 운영하는 오기녕 씨는 8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열 네 시간을 일한다. 집집마다 봄옷을 꺼내고 겨울옷을 정리는 봄철이 그에게 일 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 있을 때,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村上春樹)가 말했다. 나라마다 이런 상태를 표현하는 말들이 있다. 덴마크에서는 ‘휘게(hygge)’, 스웨덴에서는 ‘라곰(lagom)’, 프랑스에서는 ‘오캄(au calme)’, 요즘 한국에서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소확행(小確幸)’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널리 쓰인다. 동네 골목에서 일 년 내내 하얀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세탁소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따뜻함을 주는 장소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로의 골목 세탁소‘현대크리닝’을 운영하는 오기녕 씨의 하루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출근하면 우선 세탁물을 정리해서 분류하고 종류별로 세탁합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수선 들어온 옷을 모아서 수선해요. 그 후에 다림질이 시작되죠. 밤 9시에는 배달을 나가야 해요. 근처 아파트 다섯 단지 정도 돌고 오면 밤 10시쯤 됩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은 봄이다. 집집마다 봄옷을 꺼내고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세탁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봄철에는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없다. 새벽 한두 시까지 일하다 쓰러져 자고 다시 일어나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한다. 요즘은 일감도 많이 줄었다. 많을 때는 하루 40집에 배달을 했는데 지금은 많아봤자 10집 정도다. 그렇다 해도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줄곧 서서 일 해야 한다. 한쪽 팔로 다림질을 하다보니 팔꿈치가 변형되기도 했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완치 없는 직업병이다. 오기녕 씨는 모든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세탁물을 손질한다. 대부분 오래된 단골들이 찾는 그의 세탁소는 20년 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리를 잡기까지 그는 이십 대 초반에 옷과 인연을 맺었다. 옷 만드는 공장에서 빗질을 하고 실밥을 뜯으며 일을 배웠다. 그곳에서 재단사 업무까지 배운 뒤, 서른 살 무렵 공장을 차렸다. 5년 정도 운영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만났다. “주문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일주일에 이틀, 사흘밖에 일을 못하니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공장을 접었습니다. 막내동생이 용인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어서 가봤다가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를 먹어도 체력이 닿는 데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니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마침 아내의 친구가 세탁소를 운영했다.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일을 해주며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 3개월 간 보수 없이 종일 기계 다루는 법, 일하는 방식 등을 배웠다. 세탁 방법은 원단에 따라 달랐다. 공장에서 옷을 만들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침내 세탁소를 차렸지만 안정된 운영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첫 번째 장소는 구로동이었다. 처음이라 기술이 부족해서 힘은 들고 돈도 많이 벌지 못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며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 몇 달 못 버티고 자리를 옮겼다. 새로 지은 아파트 상가였다. 당시 대부분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세탁소 하나가 들어서면 다른 세탁소는 못 들어간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1,300세대의 세탁물이 그의 세탁소로 몰려왔다. 이번에는 일이 너무 많아 반 년 만에 손을 들었다. 욕심 부리지 말자 생각하고 다시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마포구 신수로다. “제 고향이 마포예요. 처음 세탁소 차리려고 했을 때에는 이 곳에 아파트가 없었어요. 두 번 째 가게 팔고 와보니 주변에 아파트도 많이 생겼고 마침 빈 가게가 있어서 들어왔습니다. 이 곳에 터를 잡은지 20년쯤 되었네요.” 노동의 양은 줄었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함께하던 아내가 건강악화로 쉬게 되면서 혼자 가게를 떠맡았다. 세탁물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각종 기계와 미싱 등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게는 8평 남짓. 잠시 짬이 나도 몸 눕힐 공간이 부족해 의자를 붙여두고 쉰다. 다양한 세탁 프랜차이즈와 첨단 어플리케이션이 쏟아지고 있지만, 오기녕 씨는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수한다. 매일 손수 세탁물에 붙일 태그를 정리하고 체크한다. 변화하는 환경 시대가 바뀌며 세탁업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젊은 세대들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세탁앱을 사용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랜차이즈에 옷을 맡긴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줄고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세탁물의 양도 더욱 줄었다. 힘들고 고된 일이라 배우겠다는 사람도 갈수록 찾기 힘들다. 동네 세탁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인이 나이가 들어 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그대로 문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오기녕 씨는 손님 한명한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장인(匠人)이다. 그의 가게를 찾는 고객의 대부분은 40대, 50대의 주부들이고 오래된 단골들이다. 새 옷처럼 깨끗해진 옷을 받아들고 솔직하게 기뻐하고, 어떤 이들은 빵이나 과일을 건네며 감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꺼려지는 손님도 있다. 없었던 얼룩을 묻혔다며 누명을 씌우는 사람도 있고, 다짜고짜 하대를 하는 사람도 있다. “깔보듯이, 천대하듯이 말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일을 하니까 험하게 말 해도 된다는 식이죠. 그런 사람이 제일 힘들어요. 마음에 안 드시면 안 오셔도 괜찮다고 분명하게 얘기해야 해요. 안 그러면 내가 스트레스 받거든요.” 오래 일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손님도 많다. 한 번은 40대 남자 손님이 망태기에 속옷부터 셔츠, 바지, 수건까지 모두 쑤셔 넣어 주기적으로 가져왔다. 젖은 수건까지 넣으니 당연히 악취도 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게가 잠깐 쉴 때 다른 세탁소로 가져갔더니 너무 비싸게 받더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제 알았습니까?”그가 한 대답이었다. 그는 이제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배워 알고 있다. 나쁜 일은 마음에 두고 계속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나쁜 손님은 안 받으면 되고, 좋은 손님은 늘 주위에 있으니 괜찮다. 좋은 손님에게는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게 항상 미안함으로 남는다. 어려운 상황이 끝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하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손님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뜨겁고 무거운 다리미를 다시 들었다. 노력하는 장인 하루 종일 옷과 씨름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유행에도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새로 산 옷을 수선하러 들고 오는 손님이 많으면‘요즘은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구나’하고 느낀다. 소재에 따라 세탁법도 변해야 하니 그에 따른 공부도 필수다. 주말에 시간이 날 때에는 아울렛을 돌아보며 옷을 구경한다. 옷의 상태나 가격을 직접 보고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옷들을 많이 입었는데, 요즘엔 스포츠웨어 같은 기능성 옷이 많다. 옷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단시간 안에, 중성세제만으로 세탁해야 한다. 요령을 모르면 옷이 망가진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인데 일요일에 옷을 보러 간다니. 다른 취미는 없을까? 오 씨는 활짝 웃으며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 국토종주를 하고 있어요. 코스마다 부스가 있어서, 통과하면 수첩에 스탬프를 찍어줘요. 한동안 일요일마다 갔어요. 새벽에 가서 자전거로 달리고, 버스 타고 돌아오고. 긴 코스를 조금씩 끊어서 달리는 거죠. 이제 딱 한 군데 남았어요. 쉬는 날 운동도 하고 힐링도 할 수 있고, 그게 제 낙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끝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하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손님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뜨겁고 무거운 다리미를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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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PRING 886

판소리에 매혹되다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아는 행운을 아무나 갖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로르 마포 씨는 그 행운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천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한 번 듣는 것으로 족했다.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녀는 서울에 오기로 결정했고 이제 한국의 전통 성악 장르인 판소리 기예를 연마하고 있다. 언젠가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파리의 삼정전자에서 일하고 있을 때 로르 마포 씨가 갖고 있던 꿈은 집을 사서 아이들이 북적이는 탁아소를 운영하는 거였다. 적어도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가기 전 까지는 그랬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첫눈에 반해버렸죠.” 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한국의 전통 사설 노래에 완전히 빠져든 그녀는 공연 내내 웃음 지으며 생각했다. “좋아. 정말 좋아.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공연이 끝난 후 마포 씨는 소리꾼 민혜성 씨에게 다가가서 판소리를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양반 계급의 남자와 평민 출신의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인 의 일부를 불렀던 민 씨는 판소리를 배우려면 한국에 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회계학 전공자이자 케이팝 팬이기도 한 마포 씨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제가 한국에 가면 저에게 판소리를 가르쳐 주실래요?” 2년 동안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고 가족과 친구를 설득하고 준비를 한 후 2017년에 마포 씨는 서울에 왔다. 민 씨는 훈련을 하는 데에 적어도 10년은 걸릴 거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마포 씨는 걱정하는 어머니께 “일 년만 해 볼게요.”라고 말했다. 마포 씨가 특별히 모험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느낌만 믿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약속대로 마포 씨는 판소리 다섯 편 중 하나이자 국가무형문화재인 이수자인 민 씨에게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배울 게 많았다. 판소리에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심이기 때문에 가사를 이해하는 게 중요했다. 따라서 한국어와 한자를 배우는 게 먼저였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를 듣고 판소리와 사랑에 빠진 로르 마포 씨는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2017년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리곤 당시 공연을 했던 소리꾼 민혜성 씨의 제자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판소리를 잘 배우기 위해 한국어부터 익혀야 했던 그는 전문적인 소리꾼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연습한다고 한다. 연습, 그리고 또 연습 코로나 사태 전에 마포 씨의 하루는 오전 11시에서 저녁 9시까지 수업과 연습, 그리고 때때로 공연이나 TV 출연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남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느꼈다. 가사를 이해하는 건 둘째 치고 발음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했다. 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떨 땐 일주일 간 펜을 입에 가로로 끼워 넣고 연습하기도 했다. “제가 한국 사람처럼 노래를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문적인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라고 깊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가진 36세 마포 씨는 말한다. 여전히 초보자였던 시절에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2018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프랑스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엘리제궁에서 그녀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카메룬 태생의 프랑스 국적을 가진 그녀는 2019년에 있었던 공연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스승과 다른 소리꾼들과 함께 한 공연이었다. 청중 속에는 그녀의 가족뿐 아니라 지역의 고위 관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제가 공연하는 걸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해요. 다른 청중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느라고요. 어머니는 정말 뿌듯해 하셨어요.”라고 마포 씨는 말한다. 각각의 노래와 그 메시지가 마포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는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동생과 욕심 많은 형의 민속 설화를 바탕으로 한 ‘흥부가’이다. “흥부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모든 가족은 다르긴 해도 문제를 갖고 있죠. 저희 가족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흥부가가 전하는 메시지인 좋은 사람으로 살면 보상을 받게 된다는 걸 믿어요.” 그녀의 목표는 ‘흥부가’를 완벽하게 부르는 것을 넘어서 세 시간이 걸리는 전곡을 공연하는 것이고 세계 곳곳에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것도 꿈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들이 판소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걸 도와주고 싶어 한다. “파리에서 저는 종종 우울했어요. 왜 그런지도 모르고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판소리를 부르면 제 마음이 아주 선명해지는 걸 느껴요.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이 아름다운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마포 씨는 매일 엄마와 얘길 나누는데 어머니는 매번 좋은 남자를 만났는지 묻는다. 그때마다 그녀는 “아직요.”라고 대답하고 있다. 때때로 한국어와 불어를 섞어 공연을 하는 마포 씨의 꿈은 언젠가 판소리를 불어로 완창하는 것이다. 한국 고유의 민속음악인 판소리를 불어로 노래하기가 쉽진 않지만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은 마포 씨에게 특히 어려운 해였다. 공연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녀의 비자로는 예술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유튜브 채널 ‘로르랑 아리랑’과 스승의 수업을 불어로 번역해 내보내는 ‘봉주르 판소리’를 통해 청중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을 하지 못하니 수입이 없다. 그럼에도 마포 씨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하숙집 주인은 돈을 받지 않고 그녀가 필요한 것을 조달해 주면서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무대 공연을 위해 마포 씨에게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마포 씨는 그런 그녀를 언니라고 부른다. 마포 씨는 한국어의 존칭어나 관계어가 가끔 혼란스럽긴 하지만 사람들 덕분에 한국에서의 경험은 대체로 좋았다고 말한다. “파리의 한국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살 곳을 찾거나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에 도움을 주었어요.” 라끌레트 치즈나 후식 케이크인 에클레어 같은 맛있는 프랑스 음식을 그리워하긴 하지만 이를 대체할 자기만의 한국 음식을 찾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숙취용으로 좋아하는 곰탕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2020년의 모든 것이 음울한 건 아니었다. 마포 씨는 명망 있는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어 꿈을 이뤘다. “또 학생이 되고 모든 것을 번역해야 하는 일”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녀는 아주 기뻤다. 진짜 걱정거리는 학비다. 살면서 처음으로 돈에 쪼들리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청중이 저를 판소리를 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판소리 소리꾼으로 봐주기를 바라요,” 후회는 없다 하지만 마포 씨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 한 번 자신의 선택을 의심한 적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집중 판소리 훈련인 ‘산(山) 공부’를 처음 했을 때였다. “죽는 줄 알았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훈련을 했어요. 연습하고 먹고, 연습하고 먹고.” 그녀는 당시를 떠올렸다. “스스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고 물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와, 내 판소리가 정말 좋아졌네’라고 했죠.” 산 훈련이 제대로 된 목소리와 복잡한 기술을 익히는 데에 필수적이었음을 그녀는 인정한다. 마포 씨는 또 다른 포부를 갖고 있다. 판소리를 불어로 부르는 것이다. 때때로 한국어와 불어를 섞어서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한국어로 부를 때의 기술은 달라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한국어로 노래할 때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요. 근데 불어로 노래하면 그냥 노래 같아요. 불어로 부를 때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고 싶어요.” 어떤 언어로 노래를 하든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음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관중이 저를 판소리를 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판소리 소리꾼으로 봐주기를 바라요.” 그녀는 올해 무대에서 다시 공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흥부가’를 완전히 익힌 후에 좀 덜 알려진 ‘수경낭자가’로 넘어가는 것도 목표이다. 사랑 이야기인 ‘수경낭자가’는 오늘날에는 단지 몇 명의 소리꾼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데 민혜성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언젠가 한 사람만이라도 제가 스승님이 판소리하는 걸 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을 갖고 ‘와, 나도 판소리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마포 씨는 기대에 차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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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SPRING 727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랑’ 나윤선(Nah Youn-sun [Youn Sun Nah] 羅玧宣)은 유럽에서 가장 인정받는 재즈 아티스트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쳐 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 머물게 된 그가 음악 감독을 맡고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협업으로 만든 앨범 이 지난 12월에 출시되었다. 전통 민요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 음악감독을 맡은 나윤선(Nah Youn-sun [Youn Sun Nah] 羅玧宣 가운데)이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 왼쪽)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원격으로 진행된 이번 작업이 서로의 음악과 소리에 더 집중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윤선은 ‘아리랑’이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추동력을 지닌 음악이라고 말한다. 나윤선의 공연 무대를 보고 있으면 마치 그가 하나의‘악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독보적인 악기가 들려주는 음률은 섬세하고 예리해서 듣는 이의 심장을 파고든다. , , , 같은 노래를 들으면 그가 목청으로 추는 눈물의 검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유럽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로 평가받으며 세계 최정상급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 왔으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2009년부터 독일의 ACT에서, 그리고 2019년부터는 미국의 워너뮤직그룹에서 음반을 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알려 왔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나윤선은 1994년 록 뮤지컬 의 배우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 훌쩍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그는 재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저 노래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불과 5년 만인 2000년 파리의 유수한 재즈학교 CIM에서 동양인 최초로 교수가 됐다. 나윤선에게 있어 음악적 대동맥은 미국의 블루스보다 한국의 아리랑과 근접해 있어 보인다. 3년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슬픈 샹송을 부를 때 저는 원곡보다 훨씬 더 슬프게 부르게 돼요. 한국인들은 주변에서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세상이 끝난 듯 울잖아요. 지금껏 그 감성으로 노래를 불렀어요.” 그는 자신의 7집 과 8집 에 아리랑을 실었으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에서도 아리랑을 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아리랑을 소재로 한 앨범 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35분짜리 이 음반에는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京素)와 영국인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퍼드(Andy Sheppard), 거문고 주자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과 노르웨이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이크(Mathias Eick)의 협업 등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원격으로 호흡을 맞춰 만든 6곡의 새로운 아리랑이 담겼다. 지금까지 여러 음악가가 다채로운 색깔로 아리랑을 재해석했습니다. 이번 음반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난해 우리 모두 코로나19로 특별히 힘든 한 해를 보냈잖아요. 음악가, 제작사, 에이전시 모두 무대가 사라지면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맞았어요. 그래도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Stay creative’나 ‘Keep creative’가 모두의 캐치프레이즈였죠.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에서 제가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기쁘고 밝은 아리랑으로 작위적인 희망을 노래하지는 말자고 생각했죠. 지금의 세상을 그대로 반영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랑을 만들어 보자고 음악가들을 독려했습니다. 모두 동감하며 제 뜻에 따라 줬고, 이번 음반에 참여한 음악가들이나 저나 작업 과정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가를 섭외할 때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협업에 열려 있는 뮤지션, 그리고 아리랑이 뭔지 알 만한 뮤지션을 골랐어요. 앤디 셰퍼드는 박경소 씨와 영국 ‘K-뮤직페스티벌(K-Music Festival)’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어요. 마티아스 에이크는 저와 듀오로 순회 공연도 해 본 적이 있는데 다재다능한 연주자예요.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드럼, 건반, 전자음악을 섭렵했죠. (나윤선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며 동료 음악인들 사이에 아리랑이 재즈 스탠더드처럼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핀란드의 이로 란탈라(Iiro Emil Rantala 피아노)와 스웨덴의 울프 바케니우스(Ulf Wakenius 기타)는 2017년 듀오 앨범 에 이란 곡을 담았는데 이는 의 멜로디를 변형한 것이다. 바케니우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윤선과 활동하며 밀양, 진도, 정선의 아리랑을 깊숙이 익혔다.) 해외 음악가들은 아리랑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느끼나요? 일단은 아리랑의 멜로디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이번 앨범에서 듀오 ‘첼로가야금(CelloGayageum)’과 함께 라는 곡을 만든 트롬본 연주자 사무엘 블라제(Samuel Blaser 스위스)에게 제가 한국의 지역별 아리랑을 들려줬어요. 그랬더니 그 모든 아리랑에서 영감이 넘쳐흐른다면서 자신이 재해석한 곡들을 제게 수시로 보내줬어요. 아리랑의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기본적으로는 포크송, 즉 민요의 힘이라고 봅니다. 또 외국인에게는 새롭기도 하고요.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음악적 화두인 셈이니까 흥미가 강하게 생기는 거죠. 아리랑 자체가 뼈대는 심플하지만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음악가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죠. 특히 재즈 음악가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것이 백 가지면 백 가지를 모두 다르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렇고요. 5박, 7박 같은 변칙적인 박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앨범을 원격으로 작업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각자 서로 물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모일 수도 없는 처지였어요. 그래서 한국 음악가들이 먼저 아리랑을 기반으로 곡을 창작해 녹음했어요. 이것을 직접 또는 저를 통해 해외의 협업 음악가에게 이메일이나 인터넷 메신저, SNS 등을 통해 보냈죠. 해외 음악가들은 그 파일을 듣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연주를 다시 보내 줬고요. 당연히 한 번에 되지는 않았어요. 모두가 만족해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다듬어 갔죠. 시차가 있지만 공동 작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는 제가 직접 최종 편집을 하기도 했어요. 해마다 연주 여행 일정이 빼곡했는데, 2020년은 어땠나요? 부모님과 그처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근 20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전에는 한국의 집이 호텔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우울함과 불안감도 찾아왔어요. 느닷없이 ‘내가 지금 생의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제가 감수성이 예민해서인지 이런 상황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어요. 주위에서 “이럴 때는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팬데믹 초반에는 음악을 듣는 대신 청소하고 정리하며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집중했죠.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유럽 음악을 재발견했어요. 어쩐지 모든 음반이 영화음악처럼 다가오더군요. 그동안 스티비 원더, 허비 행콕을 들으면서 짜릿함을 느꼈었지만 이렇게 집 안에서 느린 속도로 앨범을 통째로 듣게 되니 음악도 하나의 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물론 예전에도 음반의 곡 순서를 정할 때 기승전결에 신경 썼지만, 이번 기회에 그 중요성을 좀 더 깊이 깨닫게 됐죠. 예술과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번 음반을 지휘하면서 “곡을 짧게 쓰지 말라. 되도록 길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아라” 하고 주문했어요. (첫째 줄 왼쪽부터) 허윤정의 거문고 연주, 드러머 미켈레 라비아(Michele Rabbia 이탈리아),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파드(Andy Sheppard 영국), 경기민요 소리꾼 김보라(Kim Bo-ra [Bora Kim]); (둘째 줄 왼쪽부터) 아코디언 연주자 뱅상 페라니(Vincent Peirani 프랑스),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 프랑스), 대금 연주자 이아람(Lee Aram [Aram Lee]); (셋째 줄 왼쪽부터) 판소리 춘향가 소리꾼 김율희(Kim Yul-hee [Yulhee Kim]),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京素),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이크(Mathias Eick 노르웨이), 타악기 연주자 황민왕(Hwang Min-wang [Min Wang Hwang]). 이 외에도 듀오 그룹 첼로가야금(CelloGayageum)과 트롬본 연주자 사무엘 블레이저(Samuel Blaser 스위스)가 이번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아리랑 자체가 뼈대는 심플하지만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음악가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죠. 특히 재즈 음악가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것이 백 가지면 백 가지를 모두 다르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렇고요. 5박, 7박 같은 변칙적인 박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아리랑 음반을 들으면서 홈트레이닝이나 요가의 배경 음악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도 좋겠네요. 굳이 집중해서 들으시지 않아도 돼요. 설거지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때론 아무것도 안 할 때 그냥 틀어 놓고 쓱 지나치는 음악으로도 좋아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깊이 집중해 감상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2019년 발매한 열 번째 정규 앨범 이 최근작이었죠. 올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워너뮤직과 계약 후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합니다. 제 앨범으로는 11번째인데, 1~2월에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초반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4월에는 녹음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거고요. 다시 어쿠스틱 음악으로 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색다른 포맷의 음악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된다면 3월에 잡혀 있는 유럽 지역 10개 공연도 가능하겠죠. 올해는 모든 음악가, 예술인,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한 나날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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