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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21 SPRING

문화 예술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랑’

나윤선(Nah Youn-sun [Youn Sun Nah] 羅玧宣)은 유럽에서 가장 인정받는 재즈 아티스트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쳐 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 머물게 된 그가 음악 감독을 맡고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협업으로 만든 앨범 이 지난 12월에 출시되었다.

전통 민요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 음악감독을 맡은 나윤선(Nah Youn-sun [Youn Sun Nah] 羅玧宣 가운데)이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 왼쪽)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원격으로 진행된 이번 작업이 서로의 음악과 소리에 더 집중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윤선은 ‘아리랑’이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추동력을 지닌 음악이라고 말한다.

나윤선의 공연 무대를 보고 있으면 마치 그가 하나의‘악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독보적인 악기가 들려주는 음률은 섬세하고 예리해서 듣는 이의 심장을 파고든다. , , , 같은 노래를 들으면 그가 목청으로 추는 눈물의 검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유럽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로 평가받으며 세계 최정상급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 왔으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2009년부터 독일의 ACT에서, 그리고 2019년부터는 미국의 워너뮤직그룹에서 음반을 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알려 왔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나윤선은 1994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배우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 훌쩍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그는 재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저 노래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불과 5년 만인 2000년 파리의 유수한 재즈학교 CIM에서 동양인 최초로 교수가 됐다.

나윤선에게 있어 음악적 대동맥은 미국의 블루스보다 한국의 아리랑과 근접해 있어 보인다. 3년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슬픈 샹송을 부를 때 저는 원곡보다 훨씬 더 슬프게 부르게 돼요. 한국인들은 주변에서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세상이 끝난 듯 울잖아요. 지금껏 그 감성으로 노래를 불렀어요.”

그는 자신의 7집 과 8집 에 아리랑을 실었으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에서도 아리랑을 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아리랑을 소재로 한 앨범 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35분짜리 이 음반에는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京素)와 영국인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퍼드(Andy Sheppard), 거문고 주자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과 노르웨이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이크(Mathias Eick)의 협업 등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원격으로 호흡을 맞춰 만든 6곡의 새로운 아리랑이 담겼다.

지금까지 여러 음악가가 다채로운 색깔로 아리랑을 재해석했습니다. 이번 음반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난해 우리 모두 코로나19로 특별히 힘든 한 해를 보냈잖아요. 음악가, 제작사, 에이전시 모두 무대가 사라지면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맞았어요. 그래도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Stay creative’나 ‘Keep creative’가 모두의 캐치프레이즈였죠.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에서 제가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기쁘고 밝은 아리랑으로 작위적인 희망을 노래하지는 말자고 생각했죠. 지금의 세상을 그대로 반영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랑을 만들어 보자고 음악가들을 독려했습니다. 모두 동감하며 제 뜻에 따라 줬고, 이번 음반에 참여한 음악가들이나 저나 작업 과정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가를 섭외할 때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협업에 열려 있는 뮤지션, 그리고 아리랑이 뭔지 알 만한 뮤지션을 골랐어요. 앤디 셰퍼드는 박경소 씨와 영국 ‘K-뮤직페스티벌(K-Music Festival)’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어요. 마티아스 에이크는 저와 듀오로 순회 공연도 해 본 적이 있는데 다재다능한 연주자예요.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드럼, 건반, 전자음악을 섭렵했죠.

(나윤선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며 동료 음악인들 사이에 아리랑이 재즈 스탠더드처럼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핀란드의 이로 란탈라(Iiro Emil Rantala 피아노)와 스웨덴의 울프 바케니우스(Ulf Wakenius 기타)는 2017년 듀오 앨범 이란 곡을 담았는데 이는 <밀양아리랑>의 멜로디를 변형한 것이다. 바케니우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윤선과 활동하며 밀양, 진도, 정선의 아리랑을 깊숙이 익혔다.)

해외 음악가들은 아리랑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느끼나요?
일단은 아리랑의 멜로디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이번 앨범에서 듀오 ‘첼로가야금(CelloGayageum)’과 함께 라는 곡을 만든 트롬본 연주자 사무엘 블라제(Samuel Blaser 스위스)에게 제가 한국의 지역별 아리랑을 들려줬어요. 그랬더니 그 모든 아리랑에서 영감이 넘쳐흐른다면서 자신이 재해석한 곡들을 제게 수시로 보내줬어요.

아리랑의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기본적으로는 포크송, 즉 민요의 힘이라고 봅니다. 또 외국인에게는 새롭기도 하고요.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음악적 화두인 셈이니까 흥미가 강하게 생기는 거죠. 아리랑 자체가 뼈대는 심플하지만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음악가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죠. 특히 재즈 음악가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것이 백 가지면 백 가지를 모두 다르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렇고요. 5박, 7박 같은 변칙적인 박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앨범을 원격으로 작업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각자 서로 물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모일 수도 없는 처지였어요. 그래서 한국 음악가들이 먼저 아리랑을 기반으로 곡을 창작해 녹음했어요. 이것을 직접 또는 저를 통해 해외의 협업 음악가에게 이메일이나 인터넷 메신저, SNS 등을 통해 보냈죠. 해외 음악가들은 그 파일을 듣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연주를 다시 보내 줬고요.

당연히 한 번에 되지는 않았어요. 모두가 만족해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다듬어 갔죠. 시차가 있지만 공동 작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는 제가 직접 최종 편집을 하기도 했어요.

해마다 연주 여행 일정이 빼곡했는데, 2020년은 어땠나요?
부모님과 그처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근 20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전에는 한국의 집이 호텔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우울함과 불안감도 찾아왔어요. 느닷없이 ‘내가 지금 생의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제가 감수성이 예민해서인지 이런 상황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어요. 주위에서 “이럴 때는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팬데믹 초반에는 음악을 듣는 대신 청소하고 정리하며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집중했죠.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유럽 음악을 재발견했어요. 어쩐지 모든 음반이 영화음악처럼 다가오더군요. 그동안 스티비 원더, 허비 행콕을 들으면서 짜릿함을 느꼈었지만 이렇게 집 안에서 느린 속도로 앨범을 통째로 듣게 되니 음악도 하나의 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물론 예전에도 음반의 곡 순서를 정할 때 기승전결에 신경 썼지만, 이번 기회에 그 중요성을 좀 더 깊이 깨닫게 됐죠. 예술과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번 음반을 지휘하면서 “곡을 짧게 쓰지 말라. 되도록 길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아라” 하고 주문했어요.

(첫째 줄 왼쪽부터) 허윤정의 거문고 연주, 드러머 미켈레 라비아(Michele Rabbia 이탈리아),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파드(Andy Sheppard 영국), 경기민요 소리꾼 김보라(Kim Bo-ra [Bora Kim]); (둘째 줄 왼쪽부터) 아코디언 연주자 뱅상 페라니(Vincent Peirani 프랑스),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 프랑스), 대금 연주자 이아람(Lee Aram [Aram Lee]); (셋째 줄 왼쪽부터) 판소리 춘향가 소리꾼 김율희(Kim Yul-hee [Yulhee Kim]),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京素),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이크(Mathias Eick 노르웨이), 타악기 연주자 황민왕(Hwang Min-wang [Min Wang Hwang]). 이 외에도 듀오 그룹 첼로가야금(CelloGayageum)과 트롬본 연주자 사무엘 블레이저(Samuel Blaser 스위스)가 이번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아리랑 자체가 뼈대는 심플하지만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음악가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죠. 특히 재즈 음악가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것이 백 가지면 백 가지를 모두 다르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렇고요. 5박, 7박 같은 변칙적인 박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아리랑 음반을 들으면서 홈트레이닝이나 요가의 배경 음악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도 좋겠네요. 굳이 집중해서 들으시지 않아도 돼요. 설거지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때론 아무것도 안 할 때 그냥 틀어 놓고 쓱 지나치는 음악으로도 좋아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깊이 집중해 감상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2019년 발매한 열 번째 정규 앨범 이 최근작이었죠. 올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워너뮤직과 계약 후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합니다. 제 앨범으로는 11번째인데, 1~2월에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초반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4월에는 녹음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거고요. 다시 어쿠스틱 음악으로 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색다른 포맷의 음악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된다면 3월에 잡혀 있는 유럽 지역 10개 공연도 가능하겠죠. 올해는 모든 음악가, 예술인,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한 나날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임희윤(Lim Hee-yun 林熙潤)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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