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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WINTER

한국식 주크박스 뮤지컬의 도전

1980~90년대 젊은 세대의 감성을 흔들었던 이영훈(1960~2008 Lee Young-hoon 李永勳)의 팝 발라드는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으로 남아 있다. 이 노래들을 모아 엮은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올 가을 시즌 세번째 무대에 올려져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광화문 연가>는 1980~90년대 젊은 세대에게 크게 사랑받았던 팝발라드 작곡가 이영훈(Lee Young-hoon 李永勳 1960~2008)의 명곡들을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서울의 광화문과 덕수궁 옆 정동길을 무대로 꾸몄다.
© CJ ENM

요즘 흥행하는 뮤지컬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왕년의 인기 영화를 활용한 무비컬(moviecal) 또는 흘러간 대중음악으로 꾸민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 거대한 고릴라 인형이 무대에 등장하는 <킹콩(King Kong)>이나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메리 포핀스(Mary Poppins)>가 가장 대표적인 무비컬이고, 미국 밴드 포 시즌스(Four Seasons)의 음악으로 꾸민 <저지 보이스(Jersey Boys)>나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들이 연이어 펼쳐지는 <맘마 미아(Mamma Mia)!>가 흥행을 보증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다. 대중음악을 무대용 콘텐츠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을 팝 뮤지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작품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파고가 국내 시장에도 불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7~9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무대를 꾸민 이후 지방 공연을 이어간 <광화문 연가>는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싱어롱 커튼콜
이 작품은 소위 ‘트리뷰트 뮤지컬’ 계열에 속한다. 이영훈 작곡가가 만들고 가수 이문세(李文世)가 노래했던 음악들이 소재로 쓰였다. 사실 작곡가 이영훈을 빼고 1980~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말하긴 힘들다. 손만 대면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처럼 그는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겼다.

뮤지컬 제목으로 쓰인 <광화문 연가>(1988)를 비롯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이 지나가면>(1987),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1988), <옛사랑>(1991) 등은 모두 관객들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게 되는 주옥같은 당대의 명곡들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노스탤지어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뮤지컬 마니아들뿐 아니라 이영훈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였다. 게다가 커튼콜에서 아이돌 그룹 빅뱅이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누렸던 <붉은 노을>(1988)이 연주되면 관객들은 더 이상 객석에 앉아만 있기 힘들게 된다. 관객들이 목 놓아 노래를 따라부르며 환호하는 ‘싱어롱 커튼콜’은 이 무대가 만들어 낸 특별한 체험이자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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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시간 여행 안내자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차지연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극본을 쓴 이 작품은 기억과 현실, 환상이 교차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세 가지 버전
독특하게도 <광화문 연가>는 여러 버전들이 있다. 이영훈의 곡들을 뮤지컬로 재구성한 첫 시도는 인기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가 2011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무대다. 세간에는 이영훈이 암 투병 말기에 기본적인 이야기의 골격을 만들었다는 후문도 있다.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특히 중장년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며 대형 무대에서 초연되는 창작 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을 기록했고, 이듬해 LG아트센터에서 재연되었다.

두 번째로 시도된 김규종 연출가의 <광화문 연가2>는 전작의 스핀오프 작품이며, 소극장을 중심으로 라이브가 강조된 무대였다. 장기판 모양의 격자 무대 세트 안에 악기 연주자들이 각각 자리 잡고 한층 강화된 음악적 매력을 제공했다. 콘서트에 가까운 이 버전은 상하이, 항저우, 난창, 푸젠 등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올해 상연된 <광화문 연가>는 유명한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극본을 새로 쓰고, 이지나가 복귀해 연출을 맡았다. 임종을 앞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참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기억과 현실, 환상이 교차한다.

이 세 번째 버전은 2017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초연과 2018년 재연에 이어 이번이 삼연째다. 이 작품은 스타일리시한 무대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아온 연출가의 작품답게 몽환적이면서도 애틋한 감성을 잘 담아낸 수작이었으며, 여전히 식지 않은 이영훈표 음악들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구현해 냈다고 평가되었다. 특히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프리 캐스팅도 화제가 되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가수와 배우들의 출연, 호흡이 잘 맞는 연출과 음악감독, 물오른 듯한 무대 디자인 등 솜씨 좋은 제작진의 조합을 비롯하여 적절한 마케팅 전략과 공연의 시기적 선택 등이 주요한 흥행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작곡가 이영훈
이영훈이 처음부터 대중음악계에 종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연극이나 방송, 무용 등에 사용되는 배경음악의 작곡가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고, 20대 중반 대중음악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이 무렵 그는 1978년 가수 겸 MC로 데뷔한 이문세를 만나게 되는데, 당시 2집 음반까지 냈던 이문세는 가수보다는 라디오 DJ로 더 유명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1985년 발표한 3집 앨범의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TV 가요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이 노래뿐 아니라 음반에 수록되어 있던 곡들 대부분이 히트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이영훈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작사가이자 작곡가로 떠올랐다. 2년 후에 나온 이문세의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드는 앨범으로, 당시 280만 장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두 사람의 동행은 2001년 13집 까지 계속됐다.
그는 이문세와의 협업이 뜸해진 시기에는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만들거나 이문세에게 주었던 노래들을 편곡해 관현악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 덕수궁 정동길에 세워진 그의 노래비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감회의 장소가 되고 있다.

1980년대 군부 독재에 맞선 젊은이들의 시위 현장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주인공 역을 맡은 가수 윤도현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이영훈의 곡 <내 오랜 그녀>(1988)를 부르고 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광화문 연가> 역시 노스탤지어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친숙함의 장점
한국에서는 <맘마 미아!>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이자 전부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이 장르를 세분화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그 특성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1980년대 히트한 록 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락 오브 에이지>처럼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대중음악들을 시대나 주제, 형식에 따라 엮어내는 컴필레이션 뮤지컬 계열과 <광화문 연가>처럼 특정 뮤지션의 음악적 산물만을 활용하는 트리뷰트 뮤지컬 계열이 있다. 전자가 이야기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후자는 기존의 공연 애호가뿐 아니라 원래 그 음악을 좋아했던 팬들까지도 소구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다. 물론 해당 뮤지션이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거나 세상을 떠났다면 관심은 더욱 배가되게 마련이다.

무비컬이나 주크박스 뮤지컬이, 특히 후자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관객들이 생소한 노래와 이야기를 한꺼번에 대하는 부담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사실 두세 시간 남짓한 무대에서 새로운 노래들을 수십 곡이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곡자는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총동원한 수려한 멜로디를 잔뜩 들려주고 싶겠지만, 관객은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도 있다. 주요한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변주하거나 공연 전 미리 콘셉트 음반을 만들어 대중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장점이 많은 공연 형식이다. 일단 무대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이미 관객들과 친숙하다. 게다가 매번 현장에서 재연되는 만큼 그 생동감이나 역동성은 거실 오디오나 책상 위 조그마한 스피커로 들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주크박스 뮤지컬에 공연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원곡이나 해당 음악가를 추종하던 음악 팬들까지 몰려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이미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콘텐츠를 활용하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도 흥행에 대한 부담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원종원(Won Jong-won 元鐘源) 순천향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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