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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PRING

생활

한국의 벗들 판소리에 매혹되다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아는 행운을 아무나 갖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로르 마포 씨는 그 행운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천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한 번 듣는 것으로 족했다.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녀는 서울에 오기로 결정했고 이제 한국의 전통 성악 장르인 판소리 기예를 연마하고 있다. 언젠가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파리의 삼정전자에서 일하고 있을 때 로르 마포 씨가 갖고 있던 꿈은 집을 사서 아이들이 북적이는 탁아소를 운영하는 거였다. 적어도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가기 전 까지는 그랬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첫눈에 반해버렸죠.” 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한국의 전통 사설 노래에 완전히 빠져든 그녀는 공연 내내 웃음 지으며 생각했다. “좋아. 정말 좋아.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공연이 끝난 후 마포 씨는 소리꾼 민혜성 씨에게 다가가서 판소리를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양반 계급의 남자와 평민 출신의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인 <춘향가>의 일부를 불렀던 민 씨는 판소리를 배우려면 한국에 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회계학 전공자이자 케이팝 팬이기도 한 마포 씨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제가 한국에 가면 저에게 판소리를 가르쳐 주실래요?”

2년 동안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고 가족과 친구를 설득하고 준비를 한 후 2017년에 마포 씨는 서울에 왔다. 민 씨는 훈련을 하는 데에 적어도 10년은 걸릴 거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마포 씨는 걱정하는 어머니께 “일 년만 해 볼게요.”라고 말했다. 마포 씨가 특별히 모험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느낌만 믿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약속대로 마포 씨는 판소리 다섯 편 중 하나이자 국가무형문화재인 <흥부가> 이수자인 민 씨에게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배울 게 많았다. 판소리에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심이기 때문에 가사를 이해하는 게 중요했다. 따라서 한국어와 한자를 배우는 게 먼저였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춘향가>를 듣고 판소리와 사랑에 빠진 로르 마포 씨는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2017년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리곤 당시 공연을 했던 소리꾼 민혜성 씨의 제자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판소리를 잘 배우기 위해 한국어부터 익혀야 했던 그는 전문적인 소리꾼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연습한다고 한다.

연습, 그리고 또 연습
코로나 사태 전에 마포 씨의 하루는 오전 11시에서 저녁 9시까지 수업과 연습, 그리고 때때로 공연이나 TV 출연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남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느꼈다. 가사를 이해하는 건 둘째 치고 발음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했다. 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떨 땐 일주일 간 펜을 입에 가로로 끼워 넣고 연습하기도 했다. “제가 한국 사람처럼 노래를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문적인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라고 깊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가진 36세 마포 씨는 말한다.
여전히 초보자였던 시절에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2018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프랑스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엘리제궁에서 그녀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카메룬 태생의 프랑스 국적을 가진 그녀는 2019년에 있었던 공연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스승과 다른 소리꾼들과 함께 한 공연이었다. 청중 속에는 그녀의 가족뿐 아니라 지역의 고위 관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제가 공연하는 걸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해요. 다른 청중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느라고요. 어머니는 정말 뿌듯해 하셨어요.”라고 마포 씨는 말한다.

각각의 노래와 그 메시지가 마포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는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동생과 욕심 많은 형의 민속 설화를 바탕으로 한 ‘흥부가’이다. “흥부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모든 가족은 다르긴 해도 문제를 갖고 있죠. 저희 가족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흥부가가 전하는 메시지인 좋은 사람으로 살면 보상을 받게 된다는 걸 믿어요.”

그녀의 목표는 ‘흥부가’를 완벽하게 부르는 것을 넘어서 세 시간이 걸리는 전곡을 공연하는 것이고 세계 곳곳에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것도 꿈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들이 판소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걸 도와주고 싶어 한다. “파리에서 저는 종종 우울했어요. 왜 그런지도 모르고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판소리를 부르면 제 마음이 아주 선명해지는 걸 느껴요.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이 아름다운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마포 씨는 매일 엄마와 얘길 나누는데 어머니는 매번 좋은 남자를 만났는지 묻는다. 그때마다 그녀는 “아직요.”라고 대답하고 있다.

때때로 한국어와 불어를 섞어 공연을 하는 마포 씨의 꿈은 언젠가 판소리를 불어로 완창하는 것이다. 한국 고유의 민속음악인 판소리를 불어로 노래하기가 쉽진 않지만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은 마포 씨에게 특히 어려운 해였다. 공연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녀의 비자로는 예술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유튜브 채널 ‘로르랑 아리랑’과 스승의 수업을 불어로 번역해 내보내는 ‘봉주르 판소리’를 통해 청중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을 하지 못하니 수입이 없다. 그럼에도 마포 씨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하숙집 주인은 돈을 받지 않고 그녀가 필요한 것을 조달해 주면서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무대 공연을 위해 마포 씨에게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마포 씨는 그런 그녀를 언니라고 부른다.

마포 씨는 한국어의 존칭어나 관계어가 가끔 혼란스럽긴 하지만 사람들 덕분에 한국에서의 경험은 대체로 좋았다고 말한다. “파리의 한국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살 곳을 찾거나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에 도움을 주었어요.” 라끌레트 치즈나 후식 케이크인 에클레어 같은 맛있는 프랑스 음식을 그리워하긴 하지만 이를 대체할 자기만의 한국 음식을 찾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숙취용으로 좋아하는 곰탕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2020년의 모든 것이 음울한 건 아니었다. 마포 씨는 명망 있는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어 꿈을 이뤘다. “또 학생이 되고 모든 것을 번역해야 하는 일”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녀는 아주 기뻤다. 진짜 걱정거리는 학비다. 살면서 처음으로 돈에 쪼들리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청중이 저를 판소리를 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판소리 소리꾼으로 봐주기를 바라요,”

후회는 없다
하지만 마포 씨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 한 번 자신의 선택을 의심한 적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집중 판소리 훈련인 ‘산(山) 공부’를 처음 했을 때였다. “죽는 줄 알았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훈련을 했어요. 연습하고 먹고, 연습하고 먹고.” 그녀는 당시를 떠올렸다. “스스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고 물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와, 내 판소리가 정말 좋아졌네’라고 했죠.” 산 훈련이 제대로 된 목소리와 복잡한 기술을 익히는 데에 필수적이었음을 그녀는 인정한다.
마포 씨는 또 다른 포부를 갖고 있다. 판소리를 불어로 부르는 것이다. 때때로 한국어와 불어를 섞어서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한국어로 부를 때의 기술은 달라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한국어로 노래할 때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요. 근데 불어로 노래하면 그냥 노래 같아요. 불어로 부를 때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고 싶어요.” 어떤 언어로 노래를 하든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음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관중이 저를 판소리를 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판소리 소리꾼으로 봐주기를 바라요.”

그녀는 올해 무대에서 다시 공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흥부가’를 완전히 익힌 후에 좀 덜 알려진 ‘수경낭자가’로 넘어가는 것도 목표이다. 사랑 이야기인 ‘수경낭자가’는 오늘날에는 단지 몇 명의 소리꾼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데 민혜성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언젠가 한 사람만이라도 제가 스승님이 판소리하는 걸 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을 갖고 ‘와, 나도 판소리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마포 씨는 기대에 차서 말한다.

조윤정 프리랜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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