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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UMMER

생활

라이프스타일 실내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스포츠를 즐긴다

1998년 박세리(朴世莉) 열풍으로 촉발된 골프에 대한 관심에 IT 기술이 결합하면서 스크린 골프가 대중의 여가 활동으로 등장했다. 연간 1조 원대 시장으로 급성장한 스크린 골프에 더해 최근에는 야구를 비롯한 20여 가지 종목이 추가되면서 스크린 스포츠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 캠퍼스 안의 스포츠센터에는 스크린 골프장 같은 최신식 시설도 갖춰져 있다.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도 자주 이용해 스크린 스포츠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직장인들은 퇴근 후 동료들과 회사 근처 식당에서 회식을 마치면 2차로 노래방이나 술집에 가는 게 보통이었다. 최근까지 이어지던 이러한 직장 회식 문화에 변화가 일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지나친 음주 대신 보다 건전한 여가 활동을 선호하기 때문인데, 이런 흐름에 따라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스크린 스포츠다.
스크린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업소는 1990년대에 성행했던 전자오락실과 노래방을 결합시킨 모습과 유사하다. 방마다 커다란 스크린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전자 기기가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운영 방식은 전자오락실이나 노래방과는 사뭇 다르다. 일률적인 요금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테마파크처럼 종목과 시간을 달리한 다양한 이용권을 판매하고 있다. 게다가 음료와 간단한 식사까지 제공되어 직장인들과 젊은 층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열풍의 배경
스크린 스포츠의 열풍은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이 불러온 현상이다. 최근 동∙하계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이 말해주듯 한국은 인구 대비 스포츠 강국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관전 모드’가 아닌 ‘실전 모드’로 스포츠를 즐기기에는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된 탓에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충분치 않고,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야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한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IT 강국이자 게임 강국이란 점도 스크린 스포츠의 강세에 큰 몫을 차지한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시뮬레이션 스포츠를 구현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한국인들은 실제 플레이를 대신할 대안으로 가상현실과 스포츠가 결합된 방식의 스크린 스포츠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실제로 야외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인프라가 충분한 국가들의 경우에는 굳이 이런 대안을 선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골프를 예로 든다면, 한국과 달리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야외 그린피와 스크린 골프 이용료에 큰 차이가 없을 뿐더러 부킹의 어려움도 없어 굳이 스크린 골프를 즐길 이유가 없다.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높은 싱크로율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스크린 골프장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을 확신한 이는 많지 않았다. 성공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심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18홀 기준으로 100만㎡의 광대한 필드를 사용하는 스포츠인 골프를 불과 10㎡ 남짓 크기의 작은 방에서 가상 체험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다.
여기에 기술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다. “실제 스윙을 정확히 반영한 결과를 구현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먼저 제기되었다. 전문가는 물론 아마추어 골퍼들도 그린의 미세한 언듈레이션을 센서가 읽어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물론 초창기 시스템엔 그런 지적을 받을 만한 기술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많은 오류가 시정되었고, 이제는 상당수의 이용자들이 “90% 이상의 싱크로율”을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잔디를 떠내는 손맛 같은 현실감은 여전히 기술적 도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가상 체험의 근원적 한계까지도 조만간 극복될 수 있으리란 희망적 예측이 우세하다. 요즘에는 실제 필드와의 차이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고해상도 그래픽이 제공되는가 하면, 타구감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대화형 로봇을 접목시킨 업체까지 등장하면서 그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의 통계에 의하면 11조 원에 이르는 국내 골프 산업에서 스크린 골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인 1조원대 규모라고 한다. 한 해 이용자 숫자도 2015년 기준으로 150만 명을 넘겨 실제 골프장 방문객 수를 앞질렀다고 한다.
이처럼 가상 체험을 즐기려는 골퍼가 급속히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경제성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퍼가 야외 골프장에서 한 번의 라운드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본인을 제외한 3명의 동반자와 스케줄을 맞춘 다음 원하는 시간에 부킹을 해야 하는데, 주말 부킹은 웃돈을 주거나 요행을 바라야 할 정도로 경쟁이 심하다. 어렵게 부킹을 했다고 해도 대략 편도 1시간 거리의 수도권 골프장은 고액의 그린피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반해 도심의 빌딩 어디에서나 흔히 간판을 볼 수 있는 스크린 골프장의 이용료는 실제 그린피의 1/10 수준으로 저렴하고, 골프장을 오가는 시간과 이동의 피로감도 줄여 준다. 더욱이 특별한 준비나 장비가 필요 없고 동반자 없이 혼자서도 간편히 즐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스크린 골프장의 주요 고객이 중장년층 남성들인 데 반해 스크린 야구장은 여러 연령층의 남녀 모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가지 스크린 스포츠를 한 장소에서 마음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스크린 스포츠 테마파크’가 점점 늘고 있는데, 그중 가장 강세를 보이는 것은 골프와 야구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스크린 스포츠장의 모습은 거의 유사하다. 전면에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으며,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전자 기기가 구비되어 있다.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된 탓에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충분치 않고,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야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한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IT 강국이자 게임 강국이란 점도 스크린 스포츠의 강세에 큰 몫을 차지한다.

손쉽게 즐기는 여가 활동
이런 스크린 골프의 비약적 성장이 스크린 스포츠의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2018년에 스크린 스포츠 전체 시장 규모가 약 5조 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주무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와 IT의 융합을 새로운 성장 동력 분야로 규정하고 적극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물론 시장 환경만 성숙되었다고 해서 스크린 스포츠의 발전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용객을 만족시키고 이용 계층을 확장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힘이 성패를 가름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스크린으로 즐길 수 종목은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는 골프와 야구뿐만 아니라 테니스, 승마, 사격, 볼링, 낚시, 당구, 그리고 클라이밍에 이르기까지 약 20여 종이 넘는다. 최근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화제를 모았던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드라마틱한 퍼포먼스로 인해 낯설었던 컬링 종목까지 스크린 스포츠의 인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동안 스크린 스포츠의 이용객은 성인 남성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콘텐츠의 다양화와 이용의 편리성에 힘입어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우천이나 추위 같은 기후 조건과 무관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비결이 되고 있다.
또한 스크린 스포츠는 진입 장벽이 낮다. 일례로 스크린 당구는 당구대 위 빔프로젝터 카메라와 센서가 공의 위치를 인식, 인공지능이 점수를 낼 수 있는 경로를 분석하는 방식이어서 경기 방법이나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도 쉽게 점수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 마니아뿐 아니라 입문자들도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국내 상황의 특수성이 반영된 스크린 스포츠의 산업적 생명력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것인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과 경비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욕구가 스크린 스포츠 열풍을 불러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동환 (Kim Dong-hwan 金東桓)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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