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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UTUMN

생활

책+

이치에 맞지 않는 그림을 읽는 방법

『동양화 읽는 법』

저자 조용진, 김지영 번역, 260쪽, 75.99달러, 지문당, 서울 2018

조용진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면서 동양화, 구체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이 속한 동북아시아의 그림을 이해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그림 속의 어떤 요소들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아챘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계절에 피는 꽃들이 한 화면에 그려졌다든지 암탉이 아니라 수탉이 병아리들과 함께 묘사된 장면이 그런 것들이다. 또 어떤 장면들이 반복해서 그려지고,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마치 일어난 일처럼 묘사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그림에 어떤 이치가 있을까?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은 대부분 한국에서 잊혀졌다. 『동양화 읽는 법』에서 저자는 전통 회화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다시 한 번 드러내기 위해 나섰다. 동양화에서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를 위해 주제가 선택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화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하고,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그림의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당시 한국에서 학습의 문자였던 한자의 언어 특징 덕분이다. 같은 소리를 내는 한자어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탉의 울음’을 의미하는 한자어 ‘공명(公鳴)’은 명성과 업적을 의미하는 ‘공명(功名)’과 동음이자(同音異字)다. 이 때문에 암탉보다 수탉이 더 자주 등장한다. 또 그다지 우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박쥐가 한국 전통 회화와 다른 예술 장르에 종종 모티브로 등장하는 이유도 그렇다. 박쥐를 의미하는 한자 ‘복(蝠)’은 운과 축복을 의미하는 ‘복(福)’과 동음이자다.

알레고리나 상징은 보편적으로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가하는 인간적 경향이기도 하지만 아시아의 전통 회화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학은 그 고고한 자태 때문에 학자를 상징하거나 천년을 산다고 믿어지는 새이기에 장수를 상징한다. 게다가 많은 동양화에서는 유교 경전이나 문학 작품에 나오는 명구나 일화가 언급된다. 단순히 장면의 재현으로 또는 동음이자에 근거하는 식인데, 유명한 시에 나오는 ‘아홉 가지 비유’를 아홉 마리의 물고기로 그림에 재현하는 식이다. 물고기를 의미하는 한자 ‘어(魚)’가 같다는 의미의 ‘여(如)’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전통 동양화는 단순히 관찰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동양화 읽는 법』은 독자가 따라가기 쉽도록 책의 왼편에 유명한 그림을 싣고 오른편에 읽는 법 설명을 짝지음으로써 의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준다. 책은 종종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동음이자’, ‘우의(寓意)’, ‘고전 명구(古典名句)’라는 세 가지 다른 독법으로 나눠 세 개의 장을 배치했다. 마지막 장은 전통 회화를 넘어서서 현재의 한국 미술에 대해 논의한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흥미로운 차이와 그것들이 오늘날의 미술 전통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구한다.
책은 오랫동안 잊힌 지식을 조명하고 한국 미술의 밝은 미래를 위한 길을 닦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국 독자를 위해 쓰였다. 하지만 좋은 번역으로 탄생한 영어 번역서는 세계의 독자에게 동양화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할 것이다. 책에 소개된 지식으로 무장한 통찰력 있는 독자라면 다시는 전통 동양화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낯선 것은 이제 좀 더 친숙해질 것이고, 그저 우아하게 두루마리에 걸려 있거나 병풍에 그려져 있던 그림은 뉘앙스와 의미로 가득할 것이다.

매혹적인 작가의 또 다른 면

『낙조 - 채만식 선집』

브루스 풀턴, 주찬 풀턴, 편집과 번역, 210쪽, 30달러, 컬럼비아대학출판부, 뉴욕, 2017

채만식은 1934년에 발표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인해 아마도 풍자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집에 담긴 덜 알려진 작품들은 식민지 시대를 산 이 작가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일제 점령기 동안 그리고 해방 직후 쓰인 작품들은 이 시기에 진행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다룬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의 흥망성쇠와 전통적인 가치와 현대 사상(새로운 종교로 유입된 기독교와 같은)과의 충돌을 통해 나타난다.
전자의 예로는 표제작인 「낙조」(1948)를 들 수 있는데, 해방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혼란기에 한 가족이 일제에 부역한 일로 인해 겪게 되는 문제를 다룬다. 1937년에 발표된 희곡 「예수나 않 믿어드면」은 후자의 한 예로, 전통적 가치를 배경으로 기독교의 이질적인 모습을 유머와 통찰로 바라본다.
픽션과 희곡 작품 외에도 채만식은 판소리와 우화 같은 전통적인 문학 형식을 차용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위해 새로운 버전을 내놓는다. 1947년에 발표한 희곡 「심봉사」가 특히 인상적인데 유명한 판소리 작품 <심청가>를 새롭게 개작했다. 원작이 효심이 지극한 용감한 딸이 어떻게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드는지 보여 준다면 채만식은 원작을 비틀어 당연시 여겨지는 전통 가치에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짧은 에세이나 인터뷰와 같은 몇 편의 논픽션 글들은 이 매혹적인 문학인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창문이다. 채만식의 대표작만 알고 있는 한국 근대문학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작가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을 고마워할 것이다.

진은숙의 독창성이 빛나는 국제 음반상 수상 앨범

「진은숙: 3개의 협주곡」(Unsuk Chin: 3 Concertos)

By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Audio CD $17.20, Berlin: Deutsche Grammophon [2014]

정명훈(Chung Myung-whun 鄭明勳)의 지휘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14년 Deutsche Grammophon을 통해 발매한 음반이다.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 현대음악 부문 수상을 비롯해 2015년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 프리미어 부문에서도 수상했다. 최초 녹음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어 부문에서 다니엘 하딩과 런던 심포니,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지휘 런던 필 등 12장의 쟁쟁한 최종 후보 중에서 수상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음반에는 진은숙(Chin Un-suk 陳銀淑)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첼로 협주곡, 생황(Sheng) 협주곡 세 작품이 수록됐다. 영국 BBC가 위촉한 피아노 협주곡은 웨일스 BBC 국립 오케스트라가 초연했으며, 첼로 협주곡은 BBC 프롬스에서 알반 게르하르트(Alban Gerhardt)가 초연했다. 생황 협주곡은 LA 필하모닉과 도쿄 산토리홀이 공동 위촉해 우 웨이(Wu Wei)가 초연한 작품이다.
김선욱(Kim Sun-wook)이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처럼 피아노 음이 반짝인다. 2악장에서는 모빌이나 풍경(風磬) 혹은 키네틱 아트의 수많은 움직임이 감지되는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라는 서양 악기들의 앙상블 사이를 파고드는 풍경의 동양적인 음색은 일종의 소격 효과처럼 느껴진다.

김선욱의 피아노는 복잡한 리듬을 새기다가 나중에는 관현악과 더불어 눈사태처럼 밀려온다. 2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밤하늘과 우주의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어지는 첼로 협주곡에서도 진은숙의 새로운 선율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알반 게르하르트가 연주하는 첼로는 단 하나의 음으로 시작된다. 이 하나의 음은 지워지지 않는 점(點)처럼 중심과 바탕을 이루고 곡을 전진시키는 추진력이 된다. 1악장의 제목 ‘아니리’는 판소리에서 이야기로 설명하는 부분을 말한다. 첼로는 타악기와 어우러지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2악장은 1악장의 폭발 이후의 여진이다. 3악장에서 진은숙은 먼지처럼 부유하는 듯한 첼로와 관현악으로 광활한 음향 캔버스를 펼친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긴장이 고조된다. 폭발 이후 모선에서 떨어져 나간 우주선처럼 첼로는 외롭게 우주 공간으로 점차 사라진다.
생황 협주곡 ‘슈(Su)’는 21세기 음악의 독창적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지닌다. 단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우 웨이가 바람을 불어 넣는 생황의 신비한 음색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생황은 중세 파이프오르간처럼 종교적인 음색을 띠기도 하면서 서울시향의 관현악과 더불어 고조된다. 가끔씩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들도 곳곳에 존재한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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