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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UMMER

생활

이 사람의 일상 ‘운 좋은’ 젊은이가 꿈꾸는 행복

한국의 기성 세대에게는 현재의 행복보다 미래의 행복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현재의 욕망을 절제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20대는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우선시한다. 취업 준비생인 양혜은(Yang Hye-eun 梁惠恩) 씨도 그렇다.

한국의 20대는‘포기하는 세대’로 불린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의 ‘3포 세대’라는 말이 2011년에 처음으로 나왔고, ‘5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2015년에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는 뜻의 ‘N포 세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20세기 후반 ‘하면 된다’를 모토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기성 세대들 중엔 이런 젊은이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젊은 시절 한국과 오늘의 한국은 다르다. 그땐 빠른 경제 성장 덕에 취업이 쉬웠고 더 나은 미래도 꿈꿀 수 있었지만, 몇 년씩 취업 준비생으로 사는 젊은이가 많은 지금 미래 설계는 운 좋은 소수의 특권이 되다시피 했다.

양혜은 씨가 서울 화양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한국어 교재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인 그는 집보다 카페에서 일할 때 집중력이 더 높아진다고 말한다.

목표를 위한 여정
20대 중반인 양혜은 씨도 취업 준비생이다. “어르신들은 저희 또래에 대해 안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저희들은 사실 그분들 말에 관심이 없어요. 그건 아마 저희가 너무 바쁘기 때문일 거예요.”

혜은 씨는 초등학생 과외부터 카페 직원, 미술관 도슨트까지 별의별 일을 다 해 보았고, 지금도 주중과 주말에 각기 다른 일을 해서 방세와 생활비를 충당한다.

“주중에는 미국에서 쓰이는 한국어 교재를 만드는 일을 해요. 말은 ‘재택 근무’지만 주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죠. 녹음된 한국어를 들으면서 대본과 맞춰 보고, 오자나 탈자가 있으면 수정하는 일이에요.”

주말엔 카페에서 일한다. 계속하고 있는 두 가지 일 외에도 임시 행사 요원이나 사무 보조 등 아르바이트할 일이 들어오면 거의 다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정규직으로 취직해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일 년 만에 그만두었다. 회사가 스타트업이라 뭐든 각자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창의성을 인정해 주면서도 좀 더 짜임새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혜은 씨가 입사를 고려하는 회사들은 자신의 궁극적 목표와 닿아 있는 곳들이다. “저는 창작을 통해 아름다움을 전달함으로써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람, 비영리 공공예술 활동을 통해 어린이나 가정적으로 힘든 친구들에게 자유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가정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된 건 자신의 경험 때문일지 모른다. 지금은 서울에서 살지만, 고향은 제주도고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그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은행원, 어머니는 주부, 할아버지는 땅부자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도박을 하고 남의 보증을 서서 빚더미에 앉게 됐고, 그로 인해 밭과 땅을 다 잃은 할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져 몇 달 동안 병원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의 싸움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

제주도엔 친인척이 많아 이혼을 해도 복잡한 일들이 없어지지 않았다. 사람에겐 아홉 개의 얼굴이 있다는 말도 있듯 혜은 씨는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사람에겐 여러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주도를 벗어나고 싶어 서울의 대학에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했으나, 언니들이 적극 지원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부모님 이혼 후 이제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아주 독립적으로 살았는데, 막상 고시원에서 혼자 살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보니 너무나 힘들었어요. 1학년 1학기 땐 골목에 나가 언니에게 전화하며 운 적도 많았어요.”

가장 싼 주거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고시원엔 1~2평짜리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방과 방이 얇은 벽으로 나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없다.

“2학기부터는 울지 않았어요. 학교 캠퍼스가 넓어 좋고, 배우는 게 즐거운 데다 가족 같은 친구들도 사귀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와 다양한 사람들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혼자 보내는 시간
혜은 씨의 하루는 오전 8시에 시작할 때도 있고, 11시쯤 시작할 때도 있다.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은 일찍 일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느지막이 일어난다. 아침은 토스트나 달걀로 해결하고 노트북, 스케치북, 카메라 등이 담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행선지는 거의 매일 다른데 대개 전날 정해 둔다. 청과 도매시장이나 한약재 시장 골목을 돌거나 미술관, 도서관, 공원 등을 찾아 사진을 찍고 메모한다. 그리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 한 잔에 크루아상이나 마들렌 하나를 곁들여 먹으며 4시간가량 ‘재택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보다가 주로 새벽 4시쯤 잠자리에 든다. 예전엔 책을 사서 보았지만 이제는 빌려 보려고 노력한다.

“책이 많아지면 이사할 때 불편해서요. 그래도 『빅 이슈』는 거의 빼놓지 않고 사는 편이예요. 콘텐츠가 좋잖아요.”

그림은 사진 찍어 온 것을 그리기도 하고, 핀터레스트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본 이미지나 영화 장면을 그릴 때도 있다.

“대학 4학년 때 5개월 동안 영화제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행사 지원을 했어요. 졸업 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전시 기획자들과 창작자들 인터뷰를 많이 했고요. 그전에는 작품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창작자들을 접하면서 나도 직접 해 보고 싶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 저녁엔 구청 사회복지관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수영을 배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바닷가에서 놀았지만 수영은 잘 못한다. 대학 시절 학교에서 호주 브리즈번으로 어학 연수를 보내 주었는데 그때 외국 친구들과 시내 수영장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수영 잘하는 친구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을 보며 언젠가 수영을 꼭 배워야지 생각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육체적 움직임으로 생각을 풀어야 한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 룸메이트는 저보다 몇 달 먼저 배우기 시작했고 저는 3월에야 시작했는데, 수영을 통해서 좀 더 단순해지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 계속할 생각이에요.”

혜은 씨에게 룸메이트는 가족과 같다. 지금은 여섯 번째 룸메이트와 사는데, 제주도청이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제주도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고,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운영하는 청년주택에서 함께 산다. 각자 방이 하나씩 있고 작은 거실, 욕실, 부엌이 있다. 일인당 방세 26만 원에 전기, 수도, 가스 등 공과금을 합해서 30만 원쯤 낸다.

“룸메이트가 있어서 좋은 점은 무엇보다 집에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거죠. 취침 시간, 청소 습관 등 생활 패턴이 다르면 불편할 때도 있어요. 예전 룸메이트 하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저만 보면 뭔가를 먹이려 했어요. 덕택에 제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늘었지요.”

주말에 일하는 카페는 건국대학교 부근에 있는데 사장님이 좋아 2017년 2월부터 지금껏 다닌다. 그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여사장님이 우러러 보인다. 사장님은 여러 번 도전 끝에 제과제빵사 자격증과 운전면허도 땄고, 식물도 열심히 가꾸어 카페 입구가 언제나 식물로 가득하고, 요즘은 딸기 라테, 청포도 에이드 등 새로운 메뉴도 연구하고 있다.

혜은 씨는 카페에서 오래 일한 덕에 대부분의 음료를 만들 수 있고 카페라테에 하트도 그릴 수 있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진 않았다. 취업 준비생들 중엔 자격증을 여럿 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에겐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보통 불안감에 쫓기는데 저는 ‘취업하려 하면 할 수 있다, 불안해하지 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자’ 그렇게 생각해요.”

작년엔 혼자 인도와 이집트를 여행하기도 했다. 인도에서 3주, 이집트에서 2주를 보내고 돌아오니 저축은 바닥났지만 여행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저축이 없다고 불안하진 않아요. 돈은 취업하면 다시 벌 수 있으니까요. 여행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저를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매일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까 제 안의 새로운 면이 발현되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제가 혼자 매우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창의적인 직업을 얻고 싶어 하는 양혜은 씨에게 전날 정해 둔 행선지를 찾아가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기록해 두는 것은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다.

“저는 창작을 통해 아름다움을 전달함으로써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람, 비영리 공공예술 활동을 통해 어린이나 가정적으로 힘든 친구들에게 자유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는 주말마다 건국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일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없지만, 2년 넘게 이곳에서 일한 덕분에 지금은 대부분의 음료를 능숙하게 만들어 낸다.

위로와 격려
혜은 씨는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리학에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인생엔 “행운 총량 보존의 법칙”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행운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첫 행운은 늘 그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언니들이다. 큰언니는 제주대학교 졸업 후 상하이의 복단대학교(Fudan University 復旦大学校)에서 석사 과정 중이고, 작은언니는 제주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다. 세 자매는 오래 전 “절대 결혼하지 말고 서른 살까지 능력을 쌓고, 책임지지 못할 거면 아이를 낳지 말자”고 약속한 적이 있다. 혜은 씨는 “절대 결혼하지 말자고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언니들 중에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행운이었다. 그분이 글을 잘 쓴다고 격려해 준 덕에 계속 글을 썼고, 2015년 대학교 휴학 중에 ‘업코리아’라는 칼럼 전문 웹사이트에 영화, 연극, 책 리뷰를 썼다. 원고료는 없었지만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창작과 소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바빠서 못 쓰지만 언젠가 다시 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혜은 씨는 가끔 자기 전에 ‘혜은아 수고했다. 공부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좇느라 늘 고생했구나’ 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살다 보면 내리막길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는데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래 사는 사람은 많아도 성숙한 어른은 흔치 않다. 혜은 씨는 겨우 스물여섯 살이지만 이미 어른이다. 사람의 성숙도를 정하는 건 과거의 길이가 아니라 자신과 삶에 대한 이해니까.

김흥숙(Kim Heung-sook 金興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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