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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WINTER

생활

IMAGE OF KOREA 한국인의 겨울을 알리는 김장

@imagetoday

내 어린 시절 붉게 물들었던 단풍잎 몇 쪽이 가지 끝에 애처롭게 매달릴 무렵이면 온 집안이 월동 준비로 분주해졌다. 채소밭에서 속이 찬 배추를 뽑아다 마당에 쌓아 놓고, 반쪽 내어 노란 속이 보이는 배추를 큰 그릇에 담아 소금에 절였다. 김장의 축제가 시작되고, 온 집 안에 매콤한 양념 냄새가 가득했다.

김치는 한국인의 식탁을 대표하는 상징, 나아가 한국 문화의 아이콘이다. 채소를 겨울 동안 줄곧 신선한 상태로 저장해 먹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이 고안해 낸 특유의 발효 식품이 김장이다. 유산균이 풍부한 김치는 익어가는 동안 여러 종류의 독특한 맛을 선사한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신선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소금물의 효소가 배추의 섬유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발효하기 시작한다. 무채, 마늘, 파, 고춧가루, 젓갈, 오징어, 잣 등 갖가지 식물성과 동물성 재료가 한데 어울린 양념은 김치를 완전한 저장 식품으로 승격시킨다. 이렇게 준비한 김치를 독에 넣어 땅속에 파묻고는 추운 겨울 동안 꺼내 먹는다. 오늘날에는 집 안에 설치한 최첨단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고 먹을 수 있어 편리하다.

김치의 종류는 지방에 따라, 각 가정의 전통에 따라 달라서 무려 200가지가 넘는다. 김치 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배추는 19세기 말엽 중국에서 들여와 개량한 품종이다. 한편 김치 양념에 고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부터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김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수출되기 시작했고, 2013년 12월 유네스코는 김장 문화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제 가정에서 손수 김치를 담는 대신 합성수지 봉지에 담겨 진공 포장된 김치를 슈퍼마켓에서 사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배달받는 세상으로 변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김장철이 되면 마당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입을 딱 벌린 채 고모가 주시는 금방 담근 배추김치를 받아먹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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