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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WINTER

생활

IN LOVE WITH KOREA 경계인의 삶

사카베 히토미는 십대 초반에 한국에 왔고 이제 자신의 고국 일본을 떠나 타지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아 온 셈이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 동안 예술가이자 교수인 그녀는 다양한 경계를 가로질렀고 그때마다 최선의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

계명대학교 Artech College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사카베 히토미 씨는 어린이책 삽화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주로 방학이나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연구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로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서로를 수식해왔다. 예술가인 사카베 히토미 역시 이에 동의한다. 그녀가 보기에 두 나라는 세계의 이웃 나라들이 서로 다른 것보다 더 다르며 이는 무엇보다 두 나라의 국민성에서 두드러진다.

사카베가 일본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이러한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이 한국보다 현대미술의 역사가 더 길고 예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더 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한국에 비교하면 일본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예측이 가능한 사회입니다. 거의 변하지 않죠. 한국은 아주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구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일본이 하나의 완료된 사회로 독특함을 보여준다면 한국은 일본보다 세계를 향해 좀 더 열려 있고 외국인과도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일본이 너무 폐쇄적이고 갑갑하게 느껴져요.” 그녀는 일본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일을 하지 않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제 친구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일본 여성들은 한국 여성과 비교하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덜 한 것 같아요.”

뿌리를 내리다
깊은 반감과 함께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복잡한 감정을 고려할 때 한국에 살고 있는 국외거주자 일본인이라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보다 한국에 더 오래 살고 있는 사카베는 편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한국에 더 익숙해져서 고국인 일본을 방문할 때 오히려 문화충격을 받을 정도다.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베는 일본의 중부 지방에 위치한 나고야 근처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자랐다. 1996년 중학교 1학년 때 부모와 함께 한국에 왔다. 선화예술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현대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카베는 대학 시절 만난 IT 종사자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2010년생, 2015년생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첫 아이가 태어난 후 그녀는 어린이책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몇 권의 그림책을 출간했고 여러 나라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컴퓨터로 그린 깔끔한 직선보다 손으로 그린 부드러운 선을 더 좋아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울퉁불퉁하고 보드라운 형태와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리는 다채로운 풍경을 담고 있다.

자신을 ‘경계인’이나 ‘주변인’이라 부르는 사카베는 지금 시대에는 다양한 기술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확장하려 노력해요. 불확실한 미래가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강요하는 거죠.”

“제가 화가로서, 혹은 디자이너, 삽화가 중 하나의 직업에 전적으로 몰두한다면 좀 더 쉬웠을지도 몰라요.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공부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제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영역을 탐색하게 됩니다.”

사카베는 자신의 1순위 주제와 관심을 ‘기록보관’, 즉 현재를 보존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사람들과 일상, 예를 들어 옷의 패턴 같은 것이 그녀가 선호하는 주제들이다. 대구 계명대학교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의 조교수인 그녀는 대구를 ‘한국의 나고야’라고 부른다. 두 도시가 각국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산업적 중요성에서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학생들을 돕기 위해 나의 강점을 어떻게 사용할지 늘 고민하지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방학 때나 수업이 끝나고 난 후에는 자신의 그림과 삽화에 전념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화가는 앙리 마티스다. 이 프랑스 작가의 발랄하고 기분을 즐겁게 만드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냉정한 현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일본의 전쟁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악화된 상태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끓어오르는 분노가 잠재되어 늘 불편한 두 국가의 관계가 최근에 난국을 맞이한 것이다. 사카베가 고등학교 시절 한국사를 배울 때에 교사와 학생들 모두 일본인을 ‘쪽발이’라고 불렀다.

한국과 일본은 불행한 과거 때문에 여느 이웃 국가처럼 되기가 어렵다고 사카베는 생각한다. “저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오래 산 일본인들은 일종의 ‘원죄’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어요.”

그녀는 20년 이상을 살아온 나라에서 가끔 이방인 느낌을 갖게 된다고 인정한다.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일본인이 한국 사람은 거칠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한국인은 일본인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는 한국인과 일본인 둘 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두 나라의 세대 간 관계를 예로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를 매우 중요시해요.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가게 주인이 손님이 어리다는 이유로 막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반면에 일본에서는 대학 교수도 학생들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해요.”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카베는 자신의 아이들이 한국인의 피를 갖게 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아이들보다 더욱 도전적이고 단단히 현실에 뿌리를 내리며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방식에 익숙해진 그녀는 일본을 방문하면 가끔 당황할 때가 있다. “일본 사회는 나름의 규범을 고수하고 사람들은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이 좀 더 개방적이고 국제적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입니다.
개인은 이웃이 싫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잖아요.”

2019년 여름 출간된 『외갓집은 정말 좋아!』는 히토미 씨의 아이들이 일본 외갓집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아이들의 추억과 히토미 씨의 따뜻한 그림이 어우러졌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현재 두 국가가 겪고 있는 외교적 갈등에 대해 질문하자 사카베는 이 문제는 정치로만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인 지인들은 한일전 축구 경기가 벌어지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느 나라를 응원할 거냐고 묻지만 사카베는 국제 관계는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입니다. 개인은 이웃이 싫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잖아요.”

사카베 가족이 일본을 방문할 때면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부모님 집 근처의 학교에 다니도록 조처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좁은 생각이 편견을 갖게 만들기에 아이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카베는 미래에 대해 거대한 포부가 있지 않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라고 말한다. “저는 다양한 경계를 가로질러 왔고 미래에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요. 반면에 경계인의 위치는 이점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 약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걸 보잖아요. 저 자신을 그런 다크호스로 생각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며, 크고 작은 공동체와 사회를 이루려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우리.”라고 자신의 그림 에세이 "그렇게 삶은 차곡차곡"의 커버 뒷면에 사카베는 적고 있다.

최성진 한국 바이오케미컬 리뷰 편집장
허동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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