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2020 SPRING

CULTURE & ART

ART REVIEW 한국 뮤지컬의 실험과 매력을 선사한 '빅 피쉬'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 <빅 피쉬>가 브로드웨이 초연 후 6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올랐다. CJ ENM 공연사업본부가 제작한 한국판 <빅 피쉬>는 한국 프로덕션만의 실험과 매력이 더해져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관객들의 마음에 따뜻한 감성의 긴 여운을 남겼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뮤지컬 <빅 피쉬>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무대와는 다른 한국 프로덕션만의 재미를 선사했다. 로네뜨(LORGNETTE) 제공

뮤지컬은 영화나 연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장권이 비싸다. 다소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공연 관람 결정에 앞서 입소문이나 미디어의 평가, 평론가의 리뷰, 지인들의 추천을 고려하는 게 일반적이다. 왕년의 대중음악을 활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나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Movie’와 ‘Musical’의 합성어)의 인기가 높은 이유도 일정 정도 완성도나 재미가 보증되기 때문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물랑 루즈>, <킹콩>, <킨키 부츠> 등은 흥행 뮤지컬들의 원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들은 세계 공연가의 중심지인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 엔드 극장가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관객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영화로 알고 있던 익숙한 콘텐츠가 새로운 형식으로 탈바꿈하면서 색다른 재미가 구미를 당기기 때문이다.

무비컬은 영화 속 이야기를 평면의 스크린이 아닌 무대라는 입체 공간에서 다시 즐기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저작권을 가진 영화사 입장에서도 콘텐츠의 생명력을 되살려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박호산 Park Ho-san 朴浩山 분)이 아내 산드라(김지우 Kim Ji-woo 金智宇 분), 아들 윌(이창용 분)과 함께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 뮤지컬은 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늘어놓는 아버지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허풍으로 여기고 불신하던 아들 윌이 아버지를 차츰 이해해 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뮤지컬이 된 영화들
2019년 말 한국에서 초연된 뮤지컬 <빅 피쉬>도 원작이 영화인 전형적인 ‘무비컬’이다. 영화 또한 팀 버튼 감독이 다니엘 월리스가 1998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작품화한 것이다. 팀 버튼의 영화들은 유독 무대와 영상을 오가며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아마도 그것은 독특한 색감과 기발한 이미지, 기괴한 소재를 다루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1990년 작 <가위손>이 매튜 본에 의해 뮤지컬로 탈바꿈된 적이 있고, 2005년 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마크 셔먼이 뮤지컬로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2019년 여름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리에 막을 올린 뮤지컬 <비틀주스> 역시 팀 버튼의 1988년 개봉작이다.

‘팀 버튼스럽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가 만든 영화들에서는 다른 작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특이함과 특별함이 존재한다. <빅 피쉬>도 그렇다. 과거와 현재, 상상을 오가는 스토리도 그렇거니와 감독의 개인사도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팀 버튼은 아버지를 여의었다. 작품에 담긴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페이소스나 아련한 그리움, 그리고 끝내 아버지의 허풍마저 인정하게 되는 코끝 시큰한 감성은 팀 버튼 감독의 개인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후문이다.

<빅 피쉬>가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은 영화가 제작된 지 10년 만인 2013년이다. 디즈니의 <알라딘>에 참여했던 작가 존 어거스트가 극본을 썼고, 뮤지컬 <아담스 패밀리>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던 앤드류 리파의 음악,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수잔 스트로만의 연출과 안무가 더해졌다.

뮤지컬 <빅 피쉬>는 시카고 오리엔탈 극장에서 트라이 아웃 공연을 거친 뒤 브로드웨이 닐 사이몬 극장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많은 ‘무비컬’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단순히 영상의 무대화에 만족하거나 머물지 않고, 영화의 원작이었던 동명 소설의 내용까지 아우르는 실험과 변화를 시도했다. 무대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빅 피쉬>는 이후 2017년 호주 시드니와 영국 런던에서도 막을 올려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빅 피쉬>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소설과 영화에서 구현된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비주얼적 재미도 남다르다. 요즘 한국의 몇몇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화된 완성도와 예술성의 조화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에드워드(박호산 분)와 산드라(김지우 분)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판 <빅 피쉬>는 화려한 볼거리와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에드워드 역할로 출연한 세 명의 배우 남경주, 박호산, 손준호가 모두 50여 년 세월을 넘나드는 원숙한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 프로덕션만의 재미
2019년 12월 4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이 이어진 <빅 피쉬>는 영미권의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엔드 버전의 장점을 결합해 한국 프로덕션만의 재미를 배가시킨 것이다. 특히 처음 시도된 인형의 등장은 독특하고 특별한 볼거리였다. 한편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에드워드 블룸 역을 젊은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장년 배우 앨버트 피니 두 명이 나눠 연기했던 데 반해 뮤지컬에서는 한 배우가 5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빅 피쉬>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소설과 영화에서 구현된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비주얼적 재미도 남다르다. 요즘 한국의 몇몇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화된 완성도와 예술성의 조화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판타지적 여정을 거쳐 주제가 격인 ‘Be the Hero’가 연주되는 순간 이 작품의 매력은 완성된다. 극장을 나설 때까지 한참이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따뜻함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재확인된 배우들의 역량은 한국 뮤지컬 최고의 매력이자 자랑이다. 수십 년 세월을 뛰어넘는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 역은 30년 넘게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정상을 지켜온 배우 남경주(Nam Kyung-joo 南京柱)와 작품마다 큰 폭의 변신에 성공하고 있는 박호산(Park Ho-san 朴浩山), 그리고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친숙해진 손준호(Son Jun-ho 孫俊浩)가 트리플 캐스트로 무대를 꾸몄다. 이 세 명의 배우는 각자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을 발산해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 외에도 관록 있는 배우들이나 차세대 유망주로 손꼽히는 배우들이 출연해 훌륭한 조합을 보여주는 한편 번역과 번안, 편곡과 음악, 무대 디자인과 영상 디자인 등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스태프들이 참여했다. 연출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캇 슈왈츠가 맡았다.

피날레의 압도적 무대 효과
‘무비컬’을 단순히 흥행 영화를 활용한 재연이라고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원작 영화의 유명세에 기댄 것은 틀림없지만, 사실 무대에서 다시 재구성된 이야기는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2차원의 영상이 입체인 무대로 치환된다는 점이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기어오르고, 아바타가 3D나 4D로 구현된다 하더라도, 무대의 실물을 눈으로 직접 보는 현장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로 원작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빅 피쉬>가 영화와 차별화된 감동을 선사하며 뮤지컬만의 압권을 보여 주는 장면은 역시 피날레의 무대 풍경이다.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은 다른 공연장에 비해 무대의 백스테이지 공간이 깊은 장점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매력을 십분 활용해 정말 ‘큰 물고기’가 되어 망망대해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감동적으로 구현해 냈다. 이 작품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일 당시 국내 기업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CJ ENM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 모색은 물론 <보디가드>, <물랑 루즈>, <킨키 부츠>, <빅 피쉬>를 비롯해 머지않아 막을 올릴 예정인 브로드웨이 신작 <어거스트 러쉬>나 웨스트 엔드의 새 뮤지컬 <백 투 더 퓨쳐> 등의 제작에 공동 참여해 한국 뮤지컬의 외연을 확장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원종원(Won Jong-won 元鍾源) 뮤지컬 평론가,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