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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PRING

문학 산책

사진 에세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돌잔치

외손녀의 돌잔치 사진이 휴대폰으로 전송되어 왔다. 작년 6월 초 싱그러운 초여름 날, 어느 호텔 식당의 별실. 사진에는 행복감이 넘쳤다. 간신히 달래서 씌워준 앙증맞은 조바위 모자가 답답했던지 훌렁 벗어던진 아기. 두 개의 작은 상에 차린 떡과 과일, 색색의 물건들. 그리고 푸짐하게 쌓인 실타래 위에 모란을 수놓은 주머니와 빨간 장식 띠.

아기가 돌잡이로 골프공을 건드리자 제 어미가 “뭐 이런 걸?” 하며 치웠다. 다시 쟁반을 내밀자 아기는 싱글벙글거리며 큼직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노래 부르며 신나는 인생을 살려나?” 둘러선 가족들이 웃으며 덕담을 했다.
 

© Yang Jun-seok

돌잔치란 유아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출생의례다. ‘돌’은 열두 달을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인데, 의식주와 의료 서비스 등 생존 조건이 미흡하던 옛날에는 돌을 못 넘기는 아기도 많았다. 그래서 1년을 용케 넘겼으니 부디 오래 살아남아 행복하라고 온 집안이 모여 잔칫상을 차리던 오랜 풍습이 지금까지 남았다.

상에 늘어놓은 물건들 중 무엇을 집는지 보고 아기의 장래를 점치며 행복을 비는 놀이가 이 축제의 절정인 ‘돌잡이’다. 돌잡이 상에는 흔히 무병장수의 의미로 실 꾸러미와 국수, 백설기와 수수팥떡, 그리고 부자가 되라고 돈이 놓였다. 남아의 앞에는 종이와 붓, 책과 먹, 활과 화살, 마패 등 학문과 무예, 그리고 출세와 관련된 물품들을 놓기 마련이었다. 여아의 앞에는 바늘과 가위와 인두, 실패와 옷감처럼 살림살이와 관련된 물품들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남녀 구별이 없어졌다. 골프공, 마이크, 청진기, 판사봉, 심지어 컴퓨터용 마우스까지 등장했다. 의사의 청진기도, 법관의 판사봉도 아닌 마이크를 집어든 우리 손녀의 미래를 상상해 보던 나는 문득 30여 전, 이 아기의 엄마인 나의 딸은 무얼 집었는지 기억해 본다. 제 앞의 모든 물건들을 다 뛰어넘어 저 뒤쪽에 쌓인 떡을 집어 한입 가득 베어 물던 그 아이, 그래서 풍족히 먹을 복을 누리며 여러 아이들 엄마가 된 것일까?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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