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null > 상세화면

2020 SUMMER

문학 산책

사진 에세이 콩나물시루에 물 흐르는 소리

넓은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몇 개 되지도 않는데 아이들이 서로들 멀리 떨어져 앉는다. COVID-19의 창궐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된 요즘, 부분적 개학을 맞게 된 교실의 모습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이와는 정반대여서 좁은 공간에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수업하는 ‘콩나물 교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과도하게 밀집된 학습 공간을 비유하는 이 표현이 우리에게는 익숙했다. 그 콩나물시루 같은 밀집된 공간의 체온으로 우리는 서로 마음을 다독였다.

© Ahn Hong-beom

콩나물은 오래전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다량 생산되는 대두를 발아시켜 식재료로 사용하는 한국인 특유의 채소다. 물에 불린 대두를 밑에 구멍 뚫린 질그릇에 담아 방안 한구석에 두고 일주일가량 하루에도 여러 번 물을 주면 노란 콩나물 머리 아래로 길게 자란 흰 뿌리들이 가난하던 시절 과밀 학급 교실처럼 질그릇 시루를 빼곡하게 채운다. 대두가 어두운 곳에서 발아를 거치는 동안 향이 좋아지고, 단백질 함유량은 약간 줄어드는 대신 섬유질이 증가하고 아미노산 화합물이 풍부해진다. 특히 콩에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비타민 C가 생성되는데, 콩나물100g에 들어 있는 비타민 C의 함량은 같은 양의 사과보다 세 배나 높다. 콩나물 잔뿌리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은 알코올 해독에 효과가 있어 숙취 해소를 위한 해장국 재료로 많이 쓰인다.

이 나라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콩나물은 데친 후 양념에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하며, 함께 밥을 지어 콩나물밥을 만들어 먹는다. 거의 대부분의 식품을 자급자족하던 시대의 농촌에서 자란 나에게 어둑한 방 한구석에서 콩나물시루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내 어린 시절을 실어가는 시간의 발소리였다. 할머니가 하는 대로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콩나물시루에 덮인 베보자기를 걷어내고 시루 밑에 받아놓은 물을 쪽박에 담아 콩나물에 끼얹어 주곤 했다. 콩나물을 키워 본 사람들은 안다. 그 물 주기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시루에 물을 붓기가 무섭게 바로 빠져 버린다. 물이 이렇게 빨리 빠져서야 어떻게 콩나물이 자라겠는가! 그럼에도 콩나물은 쑥쑥 잘도 자랐다.

“수행은 습관이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말과 행동이 몸에 배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치 깨달음의 등불을 켜기 위해 빛을 모으는 과정과 같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잠깐 스쳐가는 물에 젖기만 하는 콩나물도 오래 반복되면 자라듯이,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 습관이 되면 결국 운명이 바뀐다." 천은사 주지 동은(東隱) 스님의 말씀이다.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