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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AUTUMN

생활

라이프스타일 즉석밥에서 유명 셰프의 요리까지

초기에는 1인 가구와 맞벌이 주부들이 주로 찾았던 가정간편식의 소비자층이 크게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집에서 고급 요리를 손쉽게 먹기 원하는 미식가들과 COVID-19의 확산으로 외식을 꺼리게 된 사람들까지 가세하며 즉석식품 산업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가정간편식 시장의 문을 연 것은 1996년 출시된 즉석밥이었다. 초기에는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즉석밥이 꾸준히 팔리고 해외 수출량도 늘고 있다. ⓒ CJ제일제당

어느 날 퇴근길에 보니 현관 앞에 전단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무심코 바로 쓰레기통에 넣었을 텐데 “집밥을 배달해 준다”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단지에는 다양한 밑반찬으로 구성된 한 달 동안의 메뉴가 조그만 사진들과 함께 소개되었고, 그중 몇 개를 골라서 신청하면 집 앞에 바로 가져다준다고 했다.

‘한번 주문해 볼까?’

마음이 흔들렸다. 아직 아기가 없는 맞벌이 부부가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 날은 주말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2~3번, 그마저도 둘 중 한 사람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아예 밖에서 먹고 들어오거나 배달 음식에 의존하곤 했었다. 요즘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외식을 꺼리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데, 매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가정간편식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둘이 먹는 양도 많지 않으니, 식재료를 잔뜩 구입했다가 냉장고에서 썩히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가사 노동 시간을 줄여 주니 나처럼 일하는 여성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대안이다.

다양한 종류의 가정간편식이 진열된 매대 앞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찌개와 국, 탕은 빠질 수 없는 음식들이지만, 재료 손질이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려 주부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최근에는 간단하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들이 출시되어 주부들의 가사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고 있다. ⓒ 뉴스뱅크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 바로 섭취가 가능한 RTH 제품들. ⓒ 맘스터치

요즘 간편식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레스토랑 메뉴이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미식을 즐기던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외출이 제한되면서 맛집의 인기 메뉴를 집에서 간편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즉석밥의 등장
가정간편식을 한 번도 구입해 보지 않은 가정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가정간편식은 즉석식품의 일종으로 가공 포장된 음식을 단순한 조리 과정만 거치면 바로 먹을 수 있어 편리하다. 그 종류는 꽤 다양한데, 대체로 조리법을 기준으로 네 가지로 나뉜다. 조리 없이 바로 섭취하는 RTE(ready to eat), 가열 후 섭취하는 RTH(ready to heat), 간단히 조리한 후 섭취하는 RTC(ready to cook), 가공된 식재료로 간단히 요리 후 섭취하는 RTP(ready to prepare) 등이다. 최근에는 RTC, RTP 타입의 밀키트 제품이 인기인데 뭔가 조리했다는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닐슨코리아 왓츠넥스트그룹이 2018년 발표한 ‘한국인의 식생활 조사’에 의하면 1인 가구는 일주일에 3회, 2인 이상 가구는 2회 가정간편식을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간편식 시장 규모는 2014년 1조 210억 원에서 지난해 1조 9,500억 원으로 성장했고, 2024년에는 2조 9,15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장을 처음 개척한 상품은 즉석밥이었다. 1996년 즉석밥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밥을 누가 사서 먹겠느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밥은 집에서 지어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단단했다. 유명 모델이 광고에 등장해서 편리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즉석밥은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지금처럼 즉석밥이 식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공식품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줄어들면서 요즘은 마트에서 다양한 종류의 즉석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각종 국, 탕, 찌개, 반찬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어 가정간편식만으로 식탁을 푸짐하게 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손질된 식재료를 간단히 조리해서 먹는 RTP 제품은 요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특히 특급 셰프들이 참여해 만든 고급 밀키트 제품들은 미식가들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 CJ제일제당

2017년 10월, 서울 중구 CJ인재원에서 열린 가정간편식 행사에 진열된 CJ제일제당의 간편식 제품들. 초기에 1인 가구와 젊은 맞벌이 주부를 겨냥했던 간편식 시장은 조리된 음식을 사 먹는 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던 시니어 층까지 소비 주체가 크게 확장되는 추세다. ⓒ 연합뉴스

유명 맛집 음식
초기의 가정간편식은 한식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CJ제일제당의 간편식 브랜드는 10년 이상 특급 호텔 주방에서 일한 경력을 가진 13명의 셰프들이 메뉴를 연구하고 개발한다.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하는 감바스 요리를 비롯해 팟타이, 오야코동 같은 글로벌 메뉴까지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밀키트 시장에 비교적 먼저 뛰어든 한국야쿠르트 또한 셰프의 요리를 집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 브랜드는 몇 년 전부터 국내 스타 셰프들의 시그니처 메뉴로 구성된 제품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가정에서 요리하기 어려운 양고기 간편식을 출시해 마니아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요즘 간편식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레스토랑 메뉴이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미식을 즐기던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외출이 제한되면서 맛집의 인기 메뉴를 집에서 간편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유명 식당의 대표 음식인 만큼 맛이 보장되고, 위생적으로도 믿을 수 있어서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 식재료뿐만 아니라 가정간편식 배송에도 강점을 보이고 있는 마켓컬리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레스토랑 간편식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마켓컬리에는 갈비탕, 막창, 냉면, 쌀국수 등을 전문으로 하는 전국의 유명한 음식점들이 다수 입점해 있다.



밀레니얼의 라이프스타일
간편식 시장이 이처럼 확산되는 이유로 1인 및 맞벌이 가구의 급증과 함께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언급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보통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지칭하는데, 이들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면서 탄생한 ‘밀레니얼 가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효율성’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들은 직접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지만, 재료 손질과 장보기 등 시간이 걸리는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이중적 욕구가 가정간편식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재료가 다 손질되어 있는 밀키트는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요리의 즐거움을 적절히 누릴 수 있게 한다.

한편 집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가정간편식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는 요인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집이 일하는 공간, 학습의 공간, 취미 생활의 공간 등 모든 생활의 플랫폼이 되고 있다. 집 안에 홈시어터를 설치해 영화관 못지않은 영상과 사운드를 누리기도 하고, 홈트레이닝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만들기도 한다. 집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정간편식은 외식 기분을 내기 위한 중요한 대안이다. 스키야키, 연어 참치장, 양장피처럼 재료 준비가 번거로운 메뉴도 동봉된 레시피 카드에 적힌 순서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적절한 분량으로 손질된 재료들로 간단하게 조리해 즐길 수 있다.

초기의 가정간편식은 간편함과 가격 경쟁력이 강조되었지만, 요즘에는 소비의 주체가 다인 가구로 확장되고 있고 더 나아가 시니어 층으로 확대되는 추세여서 가격대가 다소 높은 고급 메뉴도 잘 팔리고 있다. 앞으로는 유아를 위한 이유식이나 환자를 위한 유동식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간편식이 간단한 한 끼를 넘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지혜(Choi Ji-hye 崔智惠)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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