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는 내 고향 영주의 아주 오래된 절이다. ‘부석’에 대한 창건 설화가 있는 이곳은 7세기에 지어졌다. 반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자식들, 특히 장손인 나의 행복을 부처님께 빌기 위해 이 절에 다녔다. 사월 초파일엔 나도 따라갔다. 절은 멀었다. 자동차는 그림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시절이었기에 그냥 걸어갔다. 십 리를 가면 부석 장터, 다시 인적 없는 골짜기 길 십 리.
정작 고된 길은 이제부터였다. ‘태백산 부석사(太白山 浮石寺)’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과 당간지주를 시작으로 양옆은 은행나무 가로수와 사과밭뿐인 오르막길이 수백 미터. 계단들 위 저 하늘 아래 천왕문, 다시 약간 방향을 틀어 종각루와 범종루, 또 돌계단들, 그리고 명필 이승만의 훤칠한 ‘부석사’ 현판이 걸린 안양루(安養樓)…. 여기까지가 무려 번뇌의 108계단이다. 누각 밑 계단을 오르면 마침내 코앞에 마주 서는 소슬한 신라 시대 석등. 그 뒤로 추녀가 날아갈 듯 팔 벌린 무량수전. 할머니의 신자인 나는 늘 옆문으로 들어가 아미타여래께 삼배를 드리며 부처님 앉아 계신 무릎 밑 실꾸리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깊고 깊다는 전설 속 늪을 상상했다.
무량수전의 왼편 뒤에 거대한 바위 ‘부석’이 있다. 나는 이 절의 유래를 선묘의 애틋한 사랑에서 찾는 13세기 역사서 『삼국유사』보다 할머니가 들려준 전설 이야기를 더 그리워한다.
“신라의 임금님이 백제, 고구려와 국경이 닿아 있던 이 지역에 큰 절을 지어 불력으로 나라를 보위하고자 함에 국사 의상이 몇 날 며칠 태백준령을 헤매던 어느 날 큰 바위 하나를 검지로 퉁겨 하늘로 올려 보내니, 그 바위가 검은 구름이 되어 일곱 날을 떠다니며 큰비를 내리게 하더니 마침내 땅에 내려와 이곳에 절을 지으라 점지하였는데, 땅에 닿게 내려앉지는 않았기에 지금도 바위 밑에 실을 넣고 당겨 보면 실이 끊어지지 않으리라.”
나는 늘 선묘각 뒤편 삼층탑 옆에서 바라보이는 무량수전의 날아갈 듯 들린 추녀, 석등, 그리고 안양루 저 너머 둔주곡처럼 너울져 소멸하는 소백산 능선들, 그 위로 내리는 저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저녁 빛을 사랑한다.
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호젓하고 소박한 맞배지붕 집 조사당(祖師堂)이 나온다.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신 이 건물 오른쪽 철제 울타리 속에 나무가 한 그루 자라는데 의상대사가 꽂아 놓은 지팡이에 싹이 터서 자랐다는 전설의 골담초다. 나는 그 장식 없이 간결한 조사당 기단에 걸터앉아, 인적 없는 밤이면 구름처럼 사뿐히 하늘 위로 떠올라 잠자는 어린아이들을 미소 지으며 굽어본다는 부석사 ‘뜬 바위’를 상상하며 할머니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