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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무슬림의 회식 부까뿌아사 버르사마

칼럼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회식 부까뿌아사 버르사마
글_ 배동선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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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이 그랬듯 1990년 후반 한 대기업 주재원으로 자카르타에 부임한 후에도 회식 자리가 적지 않았다. 그중 한 봉제공장 회식에서 미지근한 맥주에 얼음을 타 먹는 게 보통이라는 것과 자칫 직원들 음식 주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돈은 돈대로 들면서 남아 버리는 음식이 많아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한편 장관들 저택 즐비한 중부 자카르타 멘뗑 지역의 고풍스러운 상류층 레스토랑이나 번화한 남부 자카르타의 현대식 식당들에서는 우리네와 딱히 다를 바 없는 회식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슬람력 9월, 2023년도 한국 기준으로 하자면 3월 22일부터 4월 21일에 해당하는 라마단 금식월에 행해지는 부까뿌아사(Buka Puasa) 행사는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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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까뿌아사(Buka Puasa)’란 무슬림들이 하루 종일 금식한 후 일몰 기도시간을 알리는 마그립(Maghrib)의 아잔(adzan)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 때, 비로소 금식을 거두고 그날 첫 식사를 하는 행사다. 그래서 회식이라 해도 성격상 회사 행사보다는 종교 행사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가족들과 부까뿌아사를 같이하려는 직장인들이 꽉 막힌 퇴근길에 갇힌 채 마그립 아잔을 듣는 경우가 많아 아예 시간을 맞춰 직장 단위, 부서 단위로 식당을 예약해 두는 일이 많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에는 도시 곳곳에서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음식을 시켜 놓은 채 하염없이 마그립 아잔을 기다리는 진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가족, 친지, 직장 동료 등 여럿과 함께 금식을 푸는 것을 특별히 ‘부까뿌아사 버르사마(Buka Puasa Bersama)’라고 부른다. 물론 무슬림들의 행사인 만큼 이교도들이나 외국인들이 굳이 이 규칙을 지킬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한 달간 계속되는 라마단 금식월은 외국인들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서로를 존중하고 우리들 사이의 다름을 새삼 긍정하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금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스럽게 행동하곤 한다. 부까뿌아사는 일각에서 테러의 원흉이란 선입관을 동반하는 이슬람이 사실은 넓게 양팔 벌려 이웃을 포용하는 평화로운 종교임을 실감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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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면 우리가 추석이나 성탄절을 기다리듯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라마단 금식월과 그 직후 시작되는 길고 긴 이둘피트리 축제를 왜 그토록 열망하며 기다리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무슬림들이 모두 함께하는 금식은 공동체 의식을 더욱 강화하고, 부까뿌아사 버르사마는 그들에게 있어 매일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무슬림 동료들과 함께 부까뿌아사를 하는 것은 친목과 능률을 높이려는 일반 기업 회식의 취지를 넘어 서로의 종교와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존중까지 담는다. 그래서 이젠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매년 돌아오는 금식월의 회식, 부까뿌아사 버르사마를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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