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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문화 들여다보기

나의 연구 주제는 한국 대학생들의 대학생활 적응과정으로서, 어떤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대학 학생’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서울대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는데, 높은 입학경쟁률을 보이는 프랑스의 명문학교인 그랑제꼴(Grand Ecole)과 유사한 대학이다. 서울대의 교환학생이자 연구원의 입장에서, 나는 내 자신이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화의 ‘문화적’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는 ‘폭탄주’와 게임
한국 대학생들은 다른 나라 대학생들도 많이 그렇듯이 음주를 즐긴다. ‘녹두거리’라고 불리는 서울대 주변의 번화가에는 식당, 주점, 노래방, PC방, 서점, 미용실 등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등이 밀집하여 유흥지대를 이루고 있다.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은 초저녁부터 이 거리에 모여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 어울린다. 어떤 학생들은 하룻밤 동안 노래방과 당구장을 거쳐 두세 군데 술집을 다니기도 한다. 맥주가 가득 넘치는 술잔을 끊임없이 부딪혀가며 학생들은 서로 어울리고 더 나아가 친목을 도모하고 결속을 다진다. 이러한 술자리에는 기억력과 순발력 등이 필요한 각종 게임이 빠지지 않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폭탄주’가 돌고 또 다른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술자리는 계속된다.

개인주의, 경쟁 그리고 동아리
그렇다고 해서 서울대 안에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는 보이는 것만큼 통합적인 곳은 아니다. 학생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우수해야 한다는 경쟁심리에 얽매여 있다. 학교생활을 위한 인간관계와 실질적인 친분관계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회적 행동의 대표적인 예가 ‘동아리’이다. 동아리는 관심분야가 같은 학생들끼리 만드는 단체인데 매 학기마다 새로운 회원을 맞는다. 그러나 동아리를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회원들이 이미 확고한 중심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신입회원이 그 세력의 일부가 되기는 힘들다. 동아리 자체도 규모가 작고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그룹들로 운영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스스로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동아리 활동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

대학에서의 인간관계
한국 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해서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아리에 가입해서 그 회원으로 이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개인 생활이나 개성을 희생해야 한다. 또, 일단 어떤 동아리에 속해 있으면 다른 동아리와는 교류하기 어렵다.

여학생과 남학생 간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이것은 과거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남녀를 분리시켜 교육함으로써 이성 친구와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기에 동성 친구들과의 교제만 이루어지다가 대학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성과 접촉하게 됨으로써 남녀간의 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상황은 차츰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지배적이고 남학생들의 병역의무 역시 이런 상황을 강화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신입생의 생활은 MT, 술자리, 게임, 노래방, 동아리 활동 등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입시 지옥’을 뚫은 다음에도 여전히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는 것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학생들 대부분은 과외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있다. 어쨌든 현대 한국 대학생들은 학문을 닦고, 음주를 즐기며, 벗들과 어울리던 옛날 선비들을 닮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