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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간 역사마을’에 담긴 필리핀 문화의 포용성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동방 탐험에 나선 마젤란 선단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 중부 지역의 한 섬에 도착한 때는 1521년이었다. 이후 스페인 왕실은 수차례 탐험대를 파견하였다. 마젤란 이후 해외 식민지 건설을 위해 스페인에서 마닐라 북부지역으로 파견된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는 빌라 페리난디나(Villa Ferandina)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가 오늘날 비간 역사마을의 원형이다. 스페인 정복 이전 비간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메스티조 강 하구라는 입지 조건으로 인해 중국인 무역상이 드나들며 필리핀 원주민들과 교역하는 무역항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이후 비간이 무역도시로 발전하여 겔리온 무역에 물품을 제공하는 주요 항구도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둑판 모양의 도시계획과 건축물들은 당시 스페인이 해외 식민지에 건설한 도시들과 차이가 있다. 특히 비간의 건축물은 스페인적인 요소와 중국적인 요소, 그리고 필리핀의 전통이 혼합된 형태를 띤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말까지 건축된 것들이다. 건물의 구조는 돌이나 벽돌을 쌓아 1층을 만들고, 그 위에 목재로 2층을 올린 형태이다. 1층은 주로 상점이나 사무실 공간으로 사용되고, 2층은 가정집으로 이용되었다. 건축자재들로는 주로 인근 지역에서 채취한 돌이나 나무, 그리고 점토와 조개껍질 등이 사용되었다.

비간을 끼고 흐르는 강의 이름이 ‘메스티조(Mestizo)’라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곳에서는 원주민과 중국인, 스페인 사람들 간의 인종적 혼합이 많이 이루어졌다. 비간 역사마을의 중심부에 살세도 광장과 불고스 광장이 ‘ㄴ’자 모양으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 것은 필리핀 문화의 포용성을 극적으로 나타낸다. 살세도 광장은 앞서 밝혔듯 스페인 정복자 살세도에서, 불고스 광장은 원주민에 대한 불평등 대우에 저항한 비간 출신 혼혈인 신부 호세 불고스(Jose Burgos)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한국인에게 알려진 최초의 필리핀 문화 기록인 정약전의 『표해시말』은 1801년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당시 여송국(呂宋國)으로 알려진 필리핀에 도착하여 수개월간 머문 문순득(文順得)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문순득이 머물렀던 장소는 ‘일로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은 오늘날 일로코스 수르(Ilocos Sur)로서 바로 비간(Vigan) 지역을 말한다. 기록에는 그곳에 복건성 출신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롯해 스페인 신부의 특이한 의상과 원주민들의 생활모습, 그리고 건축물들의 구조 등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필리핀은 교역을 위해 온 중국인이나 정복자로 온 스페인 사람, 그리고 표류해서 들어온 조선인도 품은 열린 광장과도 같은 곳이다.

 

글/ 김동엽 교수(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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