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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바탕으로 한 21세기일본 디자인의 창의성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린 ‘和(화): 일본 현대 디자인과 조화의 정신’ 전시회의 개막식에서 가와카미 노리코 씨(21_21 디자인 사이트 부관장)는 일본 현대 디자인에 혼을 불어넣는 핵심 개념을 ‘화(和)’라고 규정한 배경에 대해 “자연적인 소재와 인공적인 것, 일본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유희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등 언뜻 대립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화(和)의 정신이라 설명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의 공동주최로 3월 1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일본인들의 생활용품 161점이 소개된다.



조화의 정신이 깃든 독특한 일본의 제품디자인
조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각 지방의 전통공예품과 현대적인 산업디자인 개념을 결합시켜 새로운 가치와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21세기의 일본디자인의 창의성이라고 가와카미 노리코 씨는 말한다.
도쿄의 디자이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해줄 지방의 장인을 찾아 나서고 지역의 특산품 공방이 첨단기술을 가진 대도시의 회사와 손을 잡고 새로운 제품을 빚어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니 ‘화(和)’라는 단어가 낯이 익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본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활양식을 설명할 때 ‘화’라는 접두어를 많이 사용해 왔던 것 같다. 90년대 초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일본음식을 왜 일식(日食)대신 와쇼쿠(和食)로 부르고 일본 쇠고기는 와규
(和牛)로 지칭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일본의 옛 이름도 야마토(大和)이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화(和)는 서기 604년 쇼토쿠 태자가 선포한 일본 최초의 헌법에 등장한 이후 일본인의 미덕이자 특징으로 중시되어 왔다고 한다.



실용적 아름다움의 재발견
미니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전시장을 둘러보면 기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제품 디자인에 일본이 내세우는‘조화의 정신’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전시품들은 전통적 미의식에 현대적 기술을 접목시킨 화(和)의 정신을 보여준다. 주방용품, 욕실용품, 가전제품, 완구, 문구, 가구, 조명기구 등 기능에 따라 전시품을 12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미니멀한’, ‘사려 깊은’, ‘귀여운’, ‘결이 고운’, ‘감촉이 있는’,‘공예적인’ 등 6개의 키워드로 일본 디자인의 특성을 분석했다.
서로 다른 요소를 하나로 융합하는 화(和) 스타일의 밑바탕에는 1920~30년대 전통적으로 제작된 일상 공예품에서 실용적 아름다움을 재발견하자는 ‘민예(民藝)운동’을 주창한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의 철학이 깔려있다.‘민중의 공예’의 줄임말인 ‘민예’는 견고하고 아름다운 일상생활용품을 가리키는 말로, 감상을 위해 제작된 미술품과 구분하기 위해 무네요시가 1920년에 창시한 단어다. 한국의 미의식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의 사상은 장남이자 일본 산업디자인의 선구자로 꼽히는 야나기 소리(1915~ )에게 계승됐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의 대표작 <나비 의자>는 현대 일본 디자인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화’스타일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도시의 디자이너와 지방에 있는 공방의 최초의 협업 사례이기도 하다. 주방용품 코너의 알록달록한 식기들의 향연 속에 유독 소박한 제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깃코만 식탁용 간장병. 단순한 디자인으로 50년을 한결같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1961년 처음 출시되어 그전까지 1.8리터짜리 간장병을 사서 작은 용기에 덜어먹어야 했던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이 간장병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식탁에 빠뜨릴 수 없는 필수품 간장에 바치는 헌사였다.



전통과 산지에 주목하는 네오 제패네스트의 성과
일본 디자이너들이 전통과 산지(産地)에 주목하는 새로운 민예의 시대를 열게 된 데는 일본 정부가 2005년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 가진 우수한 품질에 일본의 전통문화를 접목시킨 ‘네오 제패네스크(Neo Japanesque•신 일본양식)’를 새로운 국가 브랜드로 내걸고 지역 특산품의 해외 수출을 통한 지역활성화 및 중소기업 지원을 목표로 한 ‘일본 브랜드 육성사업’을 출범시킨 것이 한 몫을 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국제교류재단 김병국 이사장은 개막식 인사에서 “대립하는 존재들을 융화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통합, 고양시키는 화(和)의 정신이 일본인의 미덕이자 특징이라면 한국에는 너와 남이 아닌 ‘우리’안에서 다름과 부족함을 포용하고 함께 인내해 가는 ‘우리’의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만일 ‘한국 현대 디자인과 우리의 정신’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기획한다면 어떤 제품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휴대폰, MP3플레이어, 가전제품, 자동차, 가구와 같은 산업제품은 줄줄이 떠오르는데 오래된 일상 생활용품은 열 가지를 넘기지 못하겠다. 필자가 과문해서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전통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우리의 겸손때문인가? 고추장•된장단지, 도자기 수저받침, 지게, 때밀이 수건.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라.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일본 디자인의 현주소에 대한 무료강연도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