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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고원에 남긴 힘찬 두드림의 여운

솔롱고스. 몽골어로 한국을 가리키는 이 말은 원래 ‘무지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이 한국을 무지개와 연관시킨 까닭은 한국인이 색동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이라는 설, 한국을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나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는데, 모두 몽골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공항에서부터 몇몇 몽골인들이 필자가 몽골인인 줄 알고 말을 걸어 왔을 때 ‘솔롱고스’라는 말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지만, 주고받는 따뜻한 눈길 속에서 수천 년 전에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친근한 사람들이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거리에 있었다니….

한국과 몽골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돌궐과의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에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올해가 한국과 몽골이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교 이전에 서울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를 통해 시작된 한국과 몽골의 교류는 1990년 수교 이후 연세친선병원 설립과 한국인 의사들의 활동, 한국인이 설립한 울란바타르 대학 인가, 대한항공 직항 취항, 몽골인들의 한국 유학 및 취업 붐, 한국통신의 이동통신 사업 합작, 김대중 대통령 방문과 같은 비약적인 발전의 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몽골의 세번째 교역 파트너이며 몽골 인구의 20분의 1이 한국 생활을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몽골인들 중에는 한국에 다녀간 사람이 많다.이러한 교류의 확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채로운 행사가 올해에 한국과 몽골 양국에서 벌어졌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한국에서 몽골 공룡 뼈 전시회, 몽골에서 한글 서예전시회, 한국영화제(「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수교 10주년 특별 공연, 양국에서 한·몽 관계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또한 김치 세미나, 한국 노래 및 무용 경연대회, YMCA 합창단 몽골 공연, 한·몽 청소년 교류사업 등이 여러 기관과 단체들에 의해 올해 개최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들이다.재단이 기획한 ‘한국의 소리와 몸짓’ 공연은 한국과 몽골이 수교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3월 26일)을 기념하기 위한 뜻깊은 무대였다. 공연은 25일과 26일 두 번에 걸쳐 몽골에서 가장 큰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문화궁전에서 열렸는데, 한국의 공연예술을 몽골에 소개하는 것은 작년 서라벌예술단의 창극 「황진이」 공연 이후 두번째라고 한다.

이번 공연의 초점은 주로 사물놀이와 창작 타악으로서 주몽골 한국대사관, 주한 몽골대사관, 몽골 국립대학교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인 장장식 교수 등 여러 기관과 인사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결정되었다. 몽골인들이 기마민족으로서 경쾌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과 작년의 「황진이」 공연이 목소리와 스토리 전개로써 한국인의 정서를 전달했던 점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인의 신명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재단이 파견한 공연단은 풍물굿패 ‘몰개’1)(대표: 이영광) 단원 4명, 창작 타악 연주자 최소리 씨2), 대금 연주자 최명호 씨, 한국 무용가 김진미 씨, 조명감독 이창석 씨, 무대감독 오지수 씨, 공연단의 대외적인 대표 및 행정을 담당한 필자 등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30대의 음악인들로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연주 기량 면에서 한국 음악과 무용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차세대 주자들로서 인정받고 있다. 공연 내용은 타악에 초점을 맞추되,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정적인 음악이나 무용을 타악 연주 사이에 넣어 구성하였다. 인간의 고뇌를 묘사한 창작곡 「번민」, 한국의 대표적인 타악 앙상블인 「사물놀이」, 창작악기인 소리금으로 연주한 「비단길」, 동서양의 리듬을 조화롭게 재구성한 「개기일식」, 대금 소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청성곡」, 한국적 춤사위를 바탕으로 인간 영혼의 태어남을 표현한 「하늘소리」, 소리와 몸짓의 절묘한 조화와 현란한 묘기를 보여준 「판굿」 등 어느 한 레퍼토리도 몽골 관객들을 사로잡지 않은 것은 없었다.

두 차례의 공연 모두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문화궁전의 조명감독은 문화궁전이 생긴 이후 가장 훌륭한 공연이라는 평가를 했을 정도였다. 몰개 단원들과 더불어 이번 공연에서 가장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주자는 최소리 씨였는데, 특유의 스테이지 매너로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개기일식」에서는 사물과의 협연을 통해 한국의 리듬과 외국의 리듬이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비단길」 연주에 사용된 소리금은 창작악기로서 우연히도 몽골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어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은 한국이 전통을 창작활동의 밑거름으로 삼는 동시에 외국의 문화 요소를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소개할 때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면서 한국문화의 지역적, 역사적 특수성, 정통성만을 강조하거나 서구 예술을 서구인 못지 않은 수준으로 재생산해 내는 것을 문화적 우수성의 잣대로 삼기 쉬운 풍토에서 이번 공연의 출연자들은 한국의 음악이 단순히 무엇이냐가 아니라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창작 과정에서 진통을 거쳐 실제 무대에서 그 결과를 보여주었기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들의 창작물이 라이거(라이온+타이거)처럼 생식 능력이 없는 불구가 아니라 예술로서 계속 자생력을 가지고 다른 작품의 탄생을 위한 자극제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창작자들의 깊이 있는 고민과 지속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번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준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양국 수교 10주년 기념 행사에 어울리는 한국과 몽골 연주자들과의 공동 무대를 준비하지 못했던 점이다. 같은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다면 양국의 음악인들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진정한 의미의 우호와 친선을 다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재단이 아니더라도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이런 기획을 한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누구보다도 고생한 공연단 여러분들과 현지 스태프, 대사관 직원, 한인회 여러분, 통역 등을 맡아주신 분들, 또한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이번 행사를 위해 애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몽골인들 사이에서 이번 공연이 화제가 되고 한국의 예술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면 필자에게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