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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흥미진진하게 파고든 도전적인 연구 활동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일은 늘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과제다. 이번 체한연구펠로십을 통해 다시 한국을 찾아 연구를 진행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번 연구의 주제가 옳고 그름의 양분법이 아닌 포괄적 이해를 위한 가설로 정립되기를 기원한다.

1997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어펠로십에 참가해 6개월간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에서 연수를 하면서 나의 한국 연구는 시작되었다. 한국어 연수 프로그램 참가는 옥스퍼드 대학의 인류학 박사과정, 특히 한국에서 필드워크 작업 준비를위한 것이었다. 10년 뒤인 2008년 여름, 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체한연구펠로십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었다.이번 방문은 전 세계적 인신매매 퇴치 운동의 지역화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였다. 유엔은 ‘인신매매’를 강압에 의한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인신매매를 여전히 ‘매춘’과 동의어로 이해하고 있다. 내 연구는 어떤 종류의 문화적 논리가 이런 집요함을 낳고 있으며, 법은 실제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지난 10년간 내가 연구했던 두 가지 문제를 간단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 급속도로 세계화되어 가는 시대에 한국의 민족주의적 상상 속에서 ‘타자’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추적하고자 한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 성(젠더[gender]와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문제, 심지어 폭력, 범죄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런 연구는 삶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개인적 집착이라기보다는, ‘진정한’ 한국의 전통과 가치를 구축하는 데 젠더와 민족에 관한 생각이 어떻게 교차하는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간의 변화 그리고 한국민에 대한 안티테제
지난 10년에 걸쳐 일어난 한국 사회의 극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1998년 여름의 한국 사회와 2008년 여름의 한국 사회 사이에는 유사점이 존재한다. 1998년 여름, 연구를 시작할 당시는 민주적 이상과 인권 존중을 내세운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며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시기였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아 경제 위기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IMF 위기’로 알려진 이 경제 위기는 ‘아시아의 기적’을 이끈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갑작스럽게 중단시켰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 정부는 경제적•정치적 우선순위를 새롭게 세우고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의 가치를 드높였지만 지난 여름, ‘다문화 사회’ 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한편으로 심각한 전 지구적 경제 위기를 맞이했고 ‘광우병’ 논란에 휩싸였다. 두 경우 모두 한국과 세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놓고 격렬한 내부 토론이 벌어졌다.
1998년에서 2000년까지 2년에 걸쳐 현지 조사 연구를 하면서 나는 한국의 미군 기지 주변에 있는 이른바 기지촌이 한국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예를 들어 당시 스무 살이던 한 서울대 친구는 외국인인 내게 그곳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창피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어느 원로 학자는 ‘한국 문화에 대해 진짜 알고 싶다면’, 제사와 무속을 연구하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은 기지촌이 이상적인 한국민에 대한 안티테제를 어떻게 상징하는지 알게 해줬다.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기지촌을 ‘한국다운게 아니며(un-Korean)’ 위험한 곳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은 기지촌을 한국의 국민 됨(Korean nationhood)과 전염(contagion)의 구조 연구에서 매우 유익한 곳으로 만들었다.

젠더 관계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쟁
여성의 몸은 종종 민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전후 기지촌에서 미군을 접대하던 한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계속된 민족 분단과 외국에 의한 점령이라는 민족적 수치를 구체화하는 것이었다(ref. Katharine Moon 1997, Sheila Miyoshi-Jager 2005). 비슷한 맥락에서 21세기에 한국 매춘 여성의 몸은 한국 사회에서 젠더 관계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쟁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과 그 시행에 관한 논의를 불러왔다.
이 새로운 법률은 성을 사고파는 것을 범죄로 규정해 가중한 형벌을 가하도록 했다. 또 매춘 여성이 희생자일수도 있으며 따라서 국가적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매춘 여성이 안고 살아온 ‘타락한 여자’라는 수치를 덜어주고 이들이 다시 한국 사회의 적절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기대되는 법률이었다. 법은 인간의 해석을 통해 실행되며, 그 해석은 정치적 의제는 물론 젠더, 섹슈얼리티, 도덕성에 관한 일련의 복잡한 생각 안에서 일어난다. 반매춘법의 주요 집행자는 여성 운동가들과 NGO 활동가들, 법집행 당국, 정부 관리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해석은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의 필드워크는 구체적으로 ‘인신매매’라는 전 지구적 언어를 사용해 공공정책 입안에서 나타나는 균열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 집단 사이를 자세히 고찰하는 것을 포함한다.
여기에서는 매우 단순화한 그림만 그릴 수 있다. 법 제정을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여성운동가들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매춘을 성매매와 동일시하고 모든 매춘 여성을 남성 범죄의 피해자로 본다. 열렬한 활동가들은 한국이 남녀평등을 존중하는 근대 민족 국가가 되려면 매춘을 근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 집행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빚, 폭력 혹은 다른 형태의 강제에 의한)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여성들을 계속해서 기소하고 있다. 그들은 절박한 경제 사정, 예를 들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춘을 한 두 아이의 엄마의 사정에 대해 동정은 하더라도 법의 통치 아래에서는 그에게 벌금을 부과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보호법의 최고 기구인 여성부는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는 여성단체와 더 엄격한 지출 통제를 요구하는 감사원 같은 정부 부처 사이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 한편 일부 여성들은 정부의 복지 지원 혜택을 받고 매춘업을 떠나 다른 형태의 직업을 찾은 반면, 또 다른 이들은 경찰 단속이 그들의 생계 수단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성 노동자의 권리’라는 전지구적 담론에 힘입어 피해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인식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이 아닌 이해를 위한 가설
인류학자로서 나의 주요 목표는‘성매매’피해자인지 범죄자인지 또는 ‘성 노동자’인지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옳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내 연구의 목표는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이를 상품화하는 데에 대한불안,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전 지구적 담론을 이용한 투쟁과 서로 다른 가설들에 대한 반영 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이렇듯 매우 민감하고 논쟁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원해준 한국국제교류재단에 감사를 드린다. 매춘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정치학과 씨름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지만,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파고드는 일은 체한연구를 항상 흥미진진하고 만족스러우며 도전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