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김선영(태국 쭐랄롱꼰대학교 객원교수)
방콕의 뜨거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왕립쭐랄롱꼰대학교는 1917년 국왕 라마 5세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함께 뛰어난 인재들로 유명한 쭐랄롱꼰대학은 태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입학을 꿈꾸는 명문 중 하나입니다. 쭐랄롱꼰대학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르기 마련인 본교 캠퍼스는 사원 양식의 건물을 중심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캠퍼스를 빠져나가면 한국의 홍대와 같은 태국 젊은이들의 활기찬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쭐랄롱꼰대학의 학생들은 어떻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제가 4년 전 파견됐을 당시 가졌던 첫 질문이었고, 4년이 지난 지금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듣기로는 1988년 처음 한국어를 교양과목으로 채택해 2008년에 부전공으로, 2018년에 한국어학과로 승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두 차례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는 120여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공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어 전공 지원자 수를 보면 인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로 성장했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4년 전만 해도 대학에 들어와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전공한 학생들이 많아져 이제는 중급 수준의 신입생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한국어 외에 한국학, 한국어교육학 그리고 통·번역과 같은 전문적인 분야로 교육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꽤 자신감 넘치는 신입생들의 눈빛과 수업에 대한 열의 그리고 더운 날씨에도 말끔하게 다려 입은 흰색 교복 셔츠를 볼 때마다 ‘이보다 더 좋은 학생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학생들에게 ‘여러분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예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학생들은 까르르 웃으며 재미, 행복, 즐거움과 같은 단어들을 말합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한국 패션을 따라 하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자랐을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천진난만한 학생들이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사뭇 진지합니다. 한국의 전쟁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슬픈 역사에 눈물을 글썽이다가 태국과 비슷한 사회 문제가 나오면 깊은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끔 한국인과 수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본교 한국어학과는 학과 운영 외에도 한국국제교류재단(KF), 태국한국교육원 등과 함께 태국의 한국어 교육 전반에 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렇게 행사 준비를 하다가 40여 명의 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끝내고 나올 때면 가끔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름도 불러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방콕의 교통 체증과 더위 그리고 우기의 비를 이겨내고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의 열정과 한국을 향한 사랑이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응원하는 마음을 전해봅니다.
학교 전경
학생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