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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차 한일포럼을 다녀와서

12차 한일포럼’이 지난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열렸다. 이 자리는 한일 양국의 정계·재계·학계·언론계 등 각 분야의 여론 주도층이 모인 솔직한 의견교환의 장이었는데, 필자가 참석한 세 번의 한일포럼 중에서도 양국 모두 가장 솔직한 의견을 개진한 자리였다. 특히 일본측이 한국측에 대해 공세적이라고 할 만큼 한국사회 및 외교적 현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사 문제를 염두에 두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지 않으려고 질문을 자제하던 예전의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어서, 한 참석자는 이를‘공수역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한편으로 한국사회가 일본이 염려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양국 간에 기탄 없이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의구심을 털어낼 만큼 신뢰가 쌓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진지하고 솔직했던 대화의 장
9월 13일 오후, 일본측 첫 발제자로 나선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참석은 포럼의 위상을 높여주었는데, 역사문제에 대해 일본측이 자제와 관용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한국측으로 보면 아주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이어 한국의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한 일본측의 불안감에 대해 이낙연 의원은 “일본이 55년 체제를 청산했듯이 한국도 냉전체제 하에서 대미 의존과 성장 우선주의에 젖어 있던 한국식 전후체제를 청산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일본측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친일 관련 과거사 청산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내 정치적 움직임이며 과도기적 진통이라는 한국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매도하는 듯한 과거사 진상규명에 일본측은 당혹함과 서운함을 감추지 않으면서, 한국 내 반일무드가 일본의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다음날인 9월 14일 오전에 있었던 외교·안보 분야 토론에서 한국측 발표자는 한·미·일 3국이 공조하면서 동시에 동북아에서의 다자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미·일 협력이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일본측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주장하면서 한국내의 중국에 대한 낙관론과 대북 유화론에 대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느낀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한국측에서는 한국이 중국으로 편향된 것은 결코 아니며, 북한과의 협력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한편 한일 양측은 한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과대포장 되었다는 점에 대해 일정한 이해를 표명하면서도 고구려사 문제의 발발, 아시안게임을 즈음한 중국의 민족주의적 대응으로 점차 냉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일본측은 이 자리에서 북핵문제보다도 한국측의 핵물질 관리 실패문제를 핵실험이라고 하면서 한국 측을 죄어오면서, 한국측의 투명성 있는 설명 책임문제도 거론하였다. 이에 한국측은 이 문제가 IAEA에서의 이탈이 아닌 협력강화 과정에서 나온 것이며,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음을 누차 강조해야 했다. 특히 일본측은 한국의 핵물질 추출이 미군철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하게 드러냈는데, 이에 대해 한국의 핵물질 추출이 미군철수 논의 훨씬 이전에 이루어진 일임을 이해시켰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일본측이 아주 적극적이었다. 동북아에서의 지역통합 추진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FTA 체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측에서는 이에 대해 공감 하면서도, 재계에서 현실적으로 대일 무역적자 및 기술 경쟁력의 부족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는 점을 솔직하게 피력하였다. 양국간 상호 경쟁적인 품목이 많기 때문에 품목에 따라 FTA의 여파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측은 이에 대해 체결의 시기와 내용은 협상의 여지가 있지만 빨리 하는 게 좋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시기를 놓칠 경우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많다고 지적하였다. 이제는 FTA가 구두 상으로나 정치적인 공약이 아닌, 실질적인 협상 이슈가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일교류에 관한 마지막 세션에서 한일 양국은 이제는 지역적 차원에서의 협력을 통해 단순한 교류를 넘어선 통합적 접근법이 필요하며, 특히 젊은 세대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유학생을 늘리고 고교생들의 교류도 활성화해야 하며, 신세대들의 감각을 정확히 전해야 한다는 점도 논의되었다. 또한 한일 간에 문화교류에 한정되지 않는 전략대화의 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포럼 마지막 날인 9월 15일 오후에는 시모노세키 출신인 하야시 참의원 의원의 직접 안내로 시모노세키의 명소를 둘러보았는데, 여기서 일본 국회의원들의 자기 지역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양국 참석자의 ‘세대교체’ 주목돼
이번 한일포럼 구성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측이 정치인들을 많이 등장시킨 점이다. 김종필 전 의원 등 한일의원연맹의 중추세력이 퇴진한 상태에서 한일포럼을 대화 채널 구축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역력히 보인 것이다. 한국측에서는 역으로 진보세력의 확장을 배경으로 젊은 세대와 혁신적 주장을 가진 인사들을 포함시켰는데, 한일포럼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한 진보적 인사는 포럼이 아주 솔직한 의견교환의 장이자 스스럼없는 인사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에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일포럼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운영위원들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의제와 참가자를 선정하고 일본측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대화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아울러 참가자 일부를 매회 교체하고 젊은 세대들을 참가자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 같은 자율성·개방성·역동성은 한일포럼이 가지는 아주 큰 장점들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앞으로 더 성공적으로 한일포럼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분과별 정기회합을 통해 국내에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일본과 협의해 나갈 전략적 의제들을 개발해 가는 노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년에 한 차례의 회합에서 모든 문제들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적 압박을 느끼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예로서 한일 간 안보전략대화를 만들어서 포럼의 일부로 연계시키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한 한일포럼에서 논의된 토론 내용이나 제언들이 외교안보 분야의 최고 정책 결정자들에게 반영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제도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일포럼은 10여 년이 넘도록 상호간 신뢰를 쌓아온 솔직한 의견교환의 장인만큼 공식적 채널에서는 제기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수식 없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중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고위정책 결정자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내용이 아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