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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 눈부신 성장의 열쇠

광고 포스터를 대신하는 대형 전광판이 교차로마다 설치되어 있다. 새로운 자극에 놀라울 만큼 빠르게 반응하며, MIT Media Lab에 접속하여 최신 연구결과를 바로바로 접할 수 있다. 활력과 풍요가 느껴지는 거리, 예술과 클래식 음악, 영화에 대한 열정이 숨 쉬는 곳. 서양에서 온 한 방문객은 서울을 보고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40년 만에 농업과 저가 섬유 산업을 기반으로 한 생존 경제에서 국민총생산(8000억 달러)이 러시아보다 높은, 특히 평면 모니터와 조선,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를 석권하는 지식 경제로 탈바꿈했다. 생활수준은 50년 만에 일인당 국민소득 150달러에서 16,000달러로 100배나 증가하였다. 한국경제는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지난 10년간 경제 성장률 5%, 실업률 4%, 물가상승률 2%, 200억 달러의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의 32% 미만의 부채비율, 균형 예산, 적절한 과세수준이라는 경제적 균형을 달성했다. 이는 그 어느 나라의 재정 장관이라도 부러워할 만한 성과이다.
한국은 소위 ‘경제 위기’의 시기에도 이와 같은 바람직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쾌거는 알랭 페이르피트가 명저 『신뢰의 사회 La Société Confiance』에서 밝혔듯이, 한국의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열정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자기완성, 타인에 대한 배려,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성공 간의 조화로운 결합, 정의, 지혜 등과 같은 유교적 가치들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들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은 명문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과외를 받는다. 또한 끊임없는 경쟁의식 속에서 지식을 추구하며 일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랑스의 명문 그랑제꼴 출신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덕목인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 이러한 지식에 대한 욕구는 후기 산업경제의 발전뿐만 아니라 미래형 자동차, 지능형 로봇, 디지털 텔레비전, 가정·가사 생활의 자동화, 우주항공, 생명공학, 차세대 전지 등과 같은 첨단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은 선진국 국민총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의 발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프랑스에서는 서비스라는 단어가 ‘하인’을 연상시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 유교에서는 개개인이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큰 덕목으로 여긴다. 정치·경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내면 명성을 얻지만, 실패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이는 두 명의 대통령과 현대, 삼성, 대우와 같은 재벌 그룹 총수들이 투옥된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징역 10년에 230억 달러라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엄청난 액수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

물론 다른 모든 제도처럼 유교도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성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인데, 이에 대한 불만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혼이 급증하면서 12년 전에는 15%였던 결혼대비 이혼율이 현재는 55%에 이르고 평균 결혼 연령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독립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1970년에 4.5%였던 출산율이 이제는 인구 대체 수준을 밑도는 1.2%로 뚝 떨어졌다. 1970년에는 전체 인구 중 20세 이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53%였으나 현재는 17%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인구 노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예로부터 개개인의 책임감과 노력, 맡은 일의 완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 왔으며,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건물이나 지하철 혹은 트럭에 낙서가 되어 있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과격한, 그러나 개방적인 민족주의
한국은 훌륭한 문화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세기 동안 외세의 영향을 받아 왔다.
⊙ 그 첫 번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한국이 본보기로 삼은 나라였으며, 공자와 학식의 나라였다. 중국을 통해서 불교가 한국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중국은 이렇게 한국에 많은 영향을 준 국가이며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두 번째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이 외부와 단절된 채 ‘은둔의 나라’로 칩거하는 동안,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선포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1911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하면서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4백만명의 한국인들을 강제 징용하여 일본의 탄광과 공장으로 보내는 등 가혹한 정책을 펼쳤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한국은 사망자가 백만 명에 달했던 한국전쟁(1950~1953년)의 유혈 참극으로 결국 남쪽은 미국의 세력권 안에, 북쪽은 러시아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듯 외세의 지배와 굴욕, 파괴의 아픔을 겪었기에 한국 민족은 동질성이 강하고(외국인 비율 0.3%), 민족주의 또한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런데 민족주의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은 예부터 외부에서 유입된 종교, 제도, 기술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즉, 외부의 것을 수용하는 데 익숙해 있어서 문제 발생시 다른 나라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고 그 중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을 취사, 선택한다. 이러한 방식은 몽테스키외가 개탄했던, “언제나 쓸데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안”하려는 프랑스인들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벤치마킹’과 ‘혁신’이야말로 한국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역사를 보상할 뜨거운 열정
한국을 특징짓는 여러 개념 중 하나는 ‘열정’이다. 그런 활기찬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바로 과거 역사에 대한 설욕, 자아확립의 필요성, 성공에 대한 보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에는 부유세라는 것이 없고, 법인세는 그리 높지 않으며(중소기업의 경우는 14%), 소득세율도 제한되어 있다. 경쟁 심리는 운동 경기가 벌어지는 곳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꼭 이기고자 하는 의지는 자기 자신과 나라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준다.

예술에 대한 뚜렷한 감각
또 다른 놀라운 점은 한국에서 유럽의 클래식 음악문화가 대단히 발전했다는 것이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 음악이라고는 성가밖에 몰랐던 나라에서 이제는 교향악단과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 오페라 가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뛰어난 예술성을 보이는 분야는 비단 음악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는 박물관학의 첨단을 구현한 놀라운 박물관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성 그룹 일가에서 지어 새로 문을 연 리움삼성미술관이다.
현대미술 또한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예술에는 오랜 세월 누드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고전 조각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 역시 뜨겁다. 이러한 조건들은 한국이 장차 패션과 인테리어, 웰빙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이 중국 이외의 아시아 국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축을 이루던 시대에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적더라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30억 생산자와 소비자가 세계 경쟁에 뛰어드는 21세기는 상황이 다르다.
2006년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여러 행사들은 여전히 비밀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나라 한국과, 한국의 놀라운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권인혁 재단 이사장과 오찬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