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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제는 중앙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 국가 전략이 필요한 시기

KF Features > [특별기고] 이제는 중앙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 국가 전략이 필요한 시기 단상(斷想)
이제는 중앙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 국가 전략이 필요한 시기
-외교 수립 30주년에 즈음하여-

글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는 강대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또다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고, 미·중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EU 대 러시아·중국·북한 대립 구도로 재편되어 가는 가운데 국제정세는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재가입과 탄소중립정책으로 ‘탄소국경세’ 도입은 현실화되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의 기업들은 생산라인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부터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COVID-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각국의 경제구조 또한 구조변동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이 이처럼 안팎으로 구조변동을 강요하고 있는 시기, 중앙아시아의 의미와 중요성은 재조명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2014년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미군 부대가 완전히 철수한 이후 지난 10년간 중앙아시아는 미국의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5개국과 미국으로 구성된 C5+1 포럼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경제 및 안보 측면에서 크게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위협을 전면에 내세우며 중앙아시아에 복귀를 희망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다분히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속내가 숨겨져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의 등장이 반가울 수 있다.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그간 과도하게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증폭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거 협력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인프라가 군사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도로, 철도, 항만, 댐 건설 등 인프라 투자가 절박하지만 마땅한 자본과 기술이 없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로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문제를 파악한 미국이 아마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이러한 절박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인프라 투자 경제협력 프로젝트로 환심을 사지 않을까 예상된다. 특히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출범 이후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WTO 가입을 희망하고 있고, 미국과도 관계도 매우 우호적으로 진전되고 있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각국이 독립한 이후 새로운 맹주로 등장한 나라가 있다. 바로 터키이다. 터키는 중앙아시아 진출을 확장해오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의 뒤를 잇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강력한 투자 및 경제 협력 국가로 부상하였다. 특히 2010년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협의체”인 “투르크평의회(Turkic Council)”가 결성된 이후 터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모두 “투르크 국가”들이다. 여기에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가 포함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2억에서 2억 5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투르크 벨트 국가들은 정치, 경제, 통상, 물류, 문화, 교육, 교통, 교육, 관광 등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연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가장 늦게 2018년도에 정회원으로 합류하였고, 중립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은 아직 준회원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향후 10년 후 투르크 국가들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대한민국에도 신북방 경제협력 대상국이며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이다. 그동안은 러시아나 중국과 비교했을 때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도 사실지만, 미·러 관계는 갈등과 대립으로, 미·중 관계는 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가운데 우리는 중앙아시아의 잠재력과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외교 수립 30주년을 앞두고, 지난 30년을 점검하고 미래 경제협력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탄소 중립과 팬데믹이 가져온 산업의 디지털 전환 그리고 국내 혹은 지역 밸류 체인(Domestic or Regional Value Chain) 전환이라는 경제 및 산업구조의 변동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탄소 중립”이 국가와 기업의 생존에 결정적인 기준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에너지와 자동차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본격적으로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는데, 중앙아시아는 태양열이나 풍력 등 자연환경 면에서 신재생 에너지 생산에 매우 우수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GM-우즈나 카자흐스탄의 현대자동차 등 조립공장을 전기차 생산라인으로 개조해야 하는 양국이 직면한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중앙아시아국가들은 국내 혹은 지역 밸류 체인(Domestic Value Chain or Regional Value Chain)으로 전환하려는 기존 정책에 탄력을 받아 물품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자국 내 제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의 자체 생산을 선언한 것이 그 예이다.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경제와 산업의 혁명적인 구조변동 속에 중앙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구체적이고 치밀하며 체계적인 중앙아시아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특성을 올바로 파악하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의 접근이 총동원된 별도의 국가 주도형 중앙아시아 진출 및 협력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중앙아시아는 국가 주도형 경제구조이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기업에만 맡겨 두었을 때 아무리 출발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사업이 원만하게 진척되기는 어렵다.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많고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그리고 시스템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PPP 사업도 정부가 재정보증을 해주지 않아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간자본이 진출하지 못하고, 중국에 비해 경제협력이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아시아의 시그니처 프로젝트였던 “수르길”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연속적으로 수주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여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국가 주도형 사업으로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기업의 문제점과 애로사항을 해결해줄 수 있는 특별기구가 중앙아시아 5개국 및 한국에 동시에 설치되어야만 한다. 이 기구는 각국 총리 라인까지 즉각적인 보고체계가 갖춰져야만 기능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가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경제협력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연구축적이 수반되어야 한다. 인문학과 지역학이 총체적으로 연구되어야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중앙아시아 연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 및 인재양성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중앙아시아 진출에 필요한 모든 분야, 물류, 교통, 건설, 법률, AI, 농업, 블록체인,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 산업 인력과 연구 인력을 동시에 양성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절벽으로 대학의 존폐위기에 처한 대학에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가 주도하여 민·관·학 협력방식의 인재양성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국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충분한 인지도가 확보되어 있지 못한 것도 중앙아시아 국가 경제협력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를 통한 공공외교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문화콘텐츠들이 미국 및 서구 중심으로 소비되다 보니 그 이외 국가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외교 수립 30주년을 계기로 중앙아시아 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홍보할 수 있는 문화원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봄 직하다. 이때 “중앙아시아”라는 지역적 범주로 제한하기보다는 “투르크 문화원”, “페르시아 문화원”, “몽골 문화원”과 같이 언어·문화권 별로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투르크 문화원을 설립할 경우, 우선 투르크평의회 협력기구인 ‘투르크소이(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Turkic Culture)’나 ‘투르크문화유산재단(Turkic Culture and Heritage Foundation)’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가 투르크 국가인 데다가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 범위가 넓다. 물론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각각 개별 민족 국가로서 역사·문화적 특수성 면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점은 운영의 묘미를 발휘하면서 차이와 공통점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페르시아 문화원도 국내 이란이나 타지키스탄 등 페르시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몽골문화는 비교적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직화된 역사·문화 공간은 여전히 필요하다.


올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내년에는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외교 수립 30주년을 기념하게 된다. 사람의 인생에서도 ‘이립(而立)’이라는 서른 살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논어>에는 스스로 주관을 확고히 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을 길을 간다는 뜻으로 나와 있다. 비로소 자신을 올바로 파악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인생계획을 세우는 시기이다. 이제 우리도 중앙아시아와 협력 파트너로서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반추하고 나아갈 바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구체적인 미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중앙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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