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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우편함]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학교에서

[KF 우편함] 행운의 한국어 선생님

이희진(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학교 한국어 객원교수)



나는 행운의 한국어 선생님이다. 한국문화는 카자흐스탄에서 아주 인기가 많아서 내가 따로 문화 수업을 집중적으로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한국문화를 너무 사랑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시기에 한국어 교수가 되어 나 또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는 느낌이다. 특히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으로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기에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다.

카자흐어는 한국어와 여러 가지로 비슷한 표현이 많고, 문법 체계도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어려운 문법을 설명해도 학생들은 카자흐어에 있는 표현이나 문법을 통해서 무척 쉽게 이해한다. 나는 카자흐어를 전혀 알지 못해서 두 언어가 어떻게 비슷한지 모르지만, 학생들 말로는 감정, 행위, 생활 모습과 관련된 표현들이나 문장 구조, 문법 등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카자흐스탄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한 것이다. 나는 처음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대학에서 일하게 됐을 때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줌(Zoom)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내가 줌으로 수업을 했고, 무들(Moodle)이라는 학습 플랫폼으로 학생들과 소통했다. 처음 사용하는 도구였기에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또한 처음에는 사용 방법을 잘 몰라서 수업 시간 중에도 실수가 잦았다. “I can’t see you, 선생님“, “선생님, you are muted…“ 녹화한 동영상 속 당황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밤에 얼마나 여러 번 이불킥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실수와 창피함으로 시작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면서 대면 수업에서 했던 방식들로 진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공부해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했다. 처음 시도하는 방법들이 잘 될까 두렵기도 했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가 직면한 코로나19 상황은 누구에게나 어려울 것이고, 학생들도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하는 필요성을 잘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다른 방식으로 언어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학생들은 많은 흥미와 관심을 보였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평가 방식이었다.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은 좋았지만, 자칫 평가에서 공정하지 못한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다양한 평가 과제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고, 나도 기본을 지키며 평가하니 어렵지 않았다. 다만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세심하게 평가하느라 기존의 방법보다 거의 두세 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내가 야심 차게 시도한 다양한 수업 방식을 소개하고 싶다. 우선 문화 활동 참가(Cultural Participation)라는 항목을 만들어 진행했다. 코로나19 이전이었다면 자유롭게 전시관, 박물관, 콘서트 등 적극적으로 문화 활동에 참여했겠지만, 온라인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상황 속에서 그러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국 영화, 드라마 또는 책을 보고 감상문 쓰기, 한국 노래를 직접 부른 비디오 영상 제출, 본교 한국학센터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세미나 및 워크숍 참가 후 에세이 제출, 한국 사람과 인터뷰하기 등의 다양한 문화 활동 참가를 평가 항목에 넣었다. 한국문화를 통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자신이 표현하고 싶던 많은 것들을 노래와 글로 표현한 것을 보고 듣고 읽으면서 혼자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하면서 학생들의 과제를 감상했다.

대화 완성하기(Dialogue Building)는 팀 과제다. 한 반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눠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각 그룹은 다시 세 팀으로 나뉜다. 내가 상황을 제시하면, 각 그룹의 첫 번째 팀이 그 상황에 맞는 대화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의 이야기에 따라 대화 내용을 이어간다. 두 번째 그룹이 지문을 완성하는 동안 첫 번째 그룹은 온라인으로 비디오를 찍는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 이후로는 세 번째 그룹이 지문을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비디오를 찍어서 제출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팀을 만들어 하나의 짧은 드라마를 3회에 걸친 연재 방식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것 같지만, 학생들이 훌륭히 재미있게 완성한 비디오는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다. 학습 중인 단원에 나오는 단어들만 쓰게 했고, 나중에 Notes(배운 내용)을 통해 어떤 단어와 표현, 문법 등을 썼는지 제출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배운 것을 활용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대화 완성하기 과제가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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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제출한 ‘대화 완성하기‘ 과제 영상

기말 교수 프레젠테이션(Final Teaching Presentation)도 팀 활동이다. 한 팀이 교재의 한 단원을 맡아서 반 친구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반 친구들이 제출해야 할 것은 슬라이드 등의 발표 자료, 수업 비디오 그리고 단원 문제다. 직접 가르치면서 확실히 스스로 더 배우게 된다는 점을 활용해 이 과제를 시행했다. 각 팀이 낸 단원 문제 10개 중 두 문제는 꼭 기말고사에 출제했다. 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더 획기적인 방법으로 수업을 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또한 핵심적이고 좋은 문제를 만들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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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제출한 ‘기말 교수 프레젠테이션’ 과제 영상

중급 과정 학생들에게는 비밀 친구에게 편지 쓰기 형식으로 과제를 냈다. 아울러 학기 말에 비밀 친구에 대한 발표를 통해 말하기 평가도 병행했다. 실제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비밀 친구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는데,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에 의존해 비밀 친구를 찾다 보니 오히려 더 재미있게 진행됐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은 현재 배우고 있는 교과 단원에 맞게 쓰도록 되어 있어 그 또한 언어를 재미있게 학습하는 좋는 교수법이었다고 자부한다.

다음 학기부터는 모든 강의를 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을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게 돼 굉장히 설렌다. 사실 온라인으로 너무 재미있게 수업을 해서 오히려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동안 온라인 수업을 하며 처음 시도했던 여러 방식을 오프라인에서도 적용해 볼 예정이다. 당연히 못 할 것이 없다. 훨씬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생동감 넘치는 학생들의 과제물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행운의 선생님인 것은 정말 똑똑하고 적극적이고 멋진 나자르바예프대학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난 2010년에 설립돼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학생들은 가르치게 된 것이 나에게는 정말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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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의 나자르바예프대학교 전경

카자흐스탄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나라는 아니다. 나 역시 카자흐스탄에 오기 전까지 이렇게 땅이 넓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몰랐다. 주위 친구들이나 가족들 중에는 여전히 우즈베키스탄과 같이 ‘스탄‘으로 끝나는 이름의 나라들과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카자흐스탄과 같이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 교수들을 파견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다. 한국어 교과서에서 이런 문구를 자주 발견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다,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정말 재미있고 멋진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