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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름답고 한국인은 따듯하였네

필자가 좋아하는 명작 영화 중에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어느 한 꼬마가 동네에 처음 나타난 영화관에서 필름을 작동시키는 할아버지를 도우며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것이었다. 이 꼬마는 도시로 가서 성인이 된 후 다시 고향을 찾게 되는데, 영화는 어린 시절의 많은 추억과 세월에 따라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회상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에게 ‘고향’이라는 곳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필자에게 거의 20년만에 모국을 방문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린다.

무엇이 ‘한국적’인가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과연 무엇이 한국적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한국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없으나 지금의 내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한국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마련한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이 여행에서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불국사와 같이 우리나라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명소를 보고 한국의 전통과 얼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와 삼성동의 코엑스를 방문했는데, 웅장한 규모의 첨단 시설들과 우뚝 솟은 고급호텔들은 세계의 어느 곳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오늘의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흔히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찾는 명소는 전통 기와집과 같이 고풍이 물씬한, 다분히 한국의 고전적인 곳인 경향이 많다. 그러나 반대로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오히려 편리하고 현대적인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시네마 천국’에서도 주인공이 찾아 온 고향의 모습이 시대의 변화로 인하여 변모해 버렸듯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경이로움만이 아닌,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혜화동·명륜동에 곱게 선을 긋듯 이어져 있던 한옥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춘 채 그 자리에는 고층집들이 마치 “내가 최고야”라고 외치듯이 솟아 있고, 상점들은 흡사 성냥개비처럼 촘촘히 들어서서 답답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기간 동안 잠시 들른 충남 공주의 도예촌이라는 마을의 정경은 마냥 푸근하기만 했다. 둥실둥실 부드러운 산등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가 어찌 그리도 정답게 느껴졌는지 ...

필자는 사실 국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경주여행 중 저녁 무렵 전통차를 마실 때 바로 옆에서 들려온 ‘우리의 소리’는 새삼 귀를 번쩍 뜨이게 하며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게 아닌가. 또한 전공이 종교와 연관되어 있는 만큼 한국의 교회들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한국 전통음악으로 찬양을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아쟁·대금·장고 등의 국악기들이 흥겨운 우리의 전통가락을 연주해 낼 때의 감동은 진정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조상의 지혜와 전통의 아름다움을 잘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뜻깊은 일인가를 체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무엇이 한국을 한국답게 하는가?’라고 자문해 보면 경복궁·단양팔경·한옥·한복·김치 등의 전통과 함께 가로수처럼 즐비한 주상복합 아파트들, 지하철·휴대폰에 몰두한 10대들, 백화점 등등 현대적인 발전상이 동시에 떠오른다. 21세기 세계화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과 가치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계승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음을 그때 다시 깨닫게 되곤 한다.

이에 월드컵 4강신화를 통해서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알렸듯이 경제·과학·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세계에 그 훌륭함을 알리는 일들이 더욱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한결 같을 것이다.

훈훈한 정 속의 공동체 의식 높아지기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위상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우리네 사람들의 ‘순수함’과 ‘정’이 아닐까 싶다. 버스에 나이 많은 어른들이 타도 모른 체하는 젊은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나, 지하도 계단에서 무거운 바구니를 옮기는 행상 할머니를 도우려고 바쁜 길을 멈추고 손을 내미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것을 필자는 보았다. 사실 고국에 오랫만에 와서 지하철을 탔을 때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어색하기만 했다. 미국에서는 서로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하거나 미소를 보내는 데 익숙했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바닥을 내려다보거나 위에 걸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몇 달을 지내면서 다시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겉으로 미소를 보내지는 않을지언정 마음으로는 관심을 갖고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의 저력과, 서양에서 찾기 힘든 웃어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 그리고 훈훈한 정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이렇듯 깊은 정을 담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우리 한국인들이 열린 마음을 베푼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분명 존경을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 다시 고국을 방문할 때에도 우리나라의 또 다른 발전상을 보게 되겠지만 훈훈한 정과 따뜻한 마음만은 변함없이 느낄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