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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최초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한 정다혜 말총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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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한 정다혜 말총공예가

ⓒ솔루나아트그룹


1.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말총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는 정다혜입니다. 저의 작업은 조선시대 말총공예 기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말총의 아름다움과 강인함 등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2. 말총공예는 한국이 가진 가장 독창적이면서 독자적인 공예로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말총공예란 무엇이고,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말총공예의 매력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말총은 말의 갈기나 털을 이르는 말입니다. 말총으로 쓰임이 있는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말총공예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상투를 간추리는 머리띠인 망건, 그 위에 쓰는 탕건 그리고 외출 시 쓰는 갓 등을 말총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말총공예의 가장 큰 특징은 ‘입체가 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빛을 낸다’는 점입니다. 말총은 그저 말의 털일 뿐인데 그것을 바늘로 촘촘하게 엮다 보면 단단하고 독립적인 입체가 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말총으로 입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길이가 짧은 말총을 잇고 또 이어야 하고, 바늘로 촘촘하게 엮어내야 합니다. 입체가 되기 위해 촘촘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성실한 하루가 모여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입체가 됩니다. 그것은 또한 제가 작업에 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시작하던 당시 다시 시작한 공부와 작업을 병행하며 불안했지만, 사소한 털도 저렇게 입체가 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또 말총은 빛을 투과시켜 스스로 빛을 냅니다. 입체가 되고 빛이 나는 말총은 저에게 굉장한 감동이었고, 그 후로 말총에 제가 원하는 삶, 즉 ‘스스로 입체가 되고 빛이 나는’ 삶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3. 2022년 6월 공예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가 있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에 한국 작가 최초로 우승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작업을 한다는 것이 생계와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들거나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는 작업을 했습니다. 다행히 로에베 공예상 위너(winner)가 되면서 저뿐 아니라 가족들의 걱정을 덜 수 있게 돼 정말 기뻤습니다. 수상 당시에는 얼떨떨하면서도 기뻤습니다. 저 혼자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마음 편히 작업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총공예는 조선시대 내내 향유되던 아름다운 공예지만 이제는 생소한 분야라 사람들이 다시 좋아해줄지 늘 고민했거든요. 한데 작품이 전시되자 많은 분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말총공예에 관심을 보였어요. 개인적인 수상을 넘어 우리 말총공예의 수상이라고 느끼게 돼 더 감사했습니다.


4. 이번에 대상을 받은 ‘성실의 시간’(2021)은 어떤 작품인가요?

‘성실의 시간’은 유물을 기반으로 한 창작품입니다. 말총의 강인한 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을 담기 위해 고대 토기 형태를 빌어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무늬가 있는 띠 부분에는 조선시대 중기 유물이라고 전해지는 사방관(망건 위에 쓰는 네모반듯한 관)의 일부 무늬를 차용해 패턴화했습니다. 조선시대 중기의 유물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해외 공예상인 만큼 우리 말총공예의 역사성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담고 싶어 실제 유물의 무늬를 빌어 표현했습니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보통 두 달가량 소요되는데요. 이는 제 작품에 담긴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제목이 성실의 시간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총은 입체가 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흩뿌려 놓는다고 해서 입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바늘로 촘촘하게 엮어줘야 합니다. 성실하게 보낸 시간만이 말총을 입체로 만들 수 있죠. 이는 수행과 같은 작업을 하면서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단단하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삶을 위해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5. 작가님의 작품은 전통적인 말총공예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저의 말총공예는 조선시대 말총공예 기법을 기반으로 하지만, 형태나 쓰임의 면에서 과거 조선시대와는 다릅니다. 조선시대에는 말총의 가볍고 단단한 특성, 입체가 되는 점을 이용해 실용적인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총 짜임의 아름다움과 입체성에 중점을 두면서 제가 이루고 싶은 삶의 방향성, 태도 등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6. 말총은 흔하지 않은 소재인데,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제주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아 말총 생산이 잠정 중단된 상황입니다. 제 경우는 주변에 목장을 하는 어르신께서 말총을 잘라다 주시곤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현재는 미국, 중국, 몽골 등에서 수입한 말총을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7. 전시나 작품 활동 등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처음 말총공예를 할 때는 상품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말총의 쓰임을 오늘날로 가져온다면 어떤 것이 좋을지 고민하면서 모빌, 목걸이 등으로 상품화했었죠. 상품을 만드는 일도 즐거웠지만 작가로서의 역량과 제가 말총에서 받았던 영감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말총의 강인함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힘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선사시대의 유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단순한 기형 안에서 그 당시 손의 힘의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말총도 빗살무늬 토기처럼 단순한 기형을 빌어 만들면 제가 느꼈던 말총의 힘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토기 모양 오브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토기 형태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더욱 다양한 형태와 크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오는 5월 8일부터 14일까지 런던에서 개인전도 가질 예정입니다.


8. 말총공예를 세계에 알린 작가로서 포부가 있다면요?

처음에는 말총공예가 그저 재미있었습니다. 섬유 소재이면서도 엮으면 입체가 되는 점이 저를 매료시켰어요. 그런데 요즘은 처음과는 달리 사명감이 듭니다. 말총공예는 사장된 분야이고, 다시 조선시대처럼 성행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총공예를 공부하면서 당시 우리가 가졌던 미감을 엿보고 문화를 알 수 있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사방관을 들여다봤더니 그 시대의 미감과 문화 그리고 사방관을 썼던 이의 성향까지도 알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공예 분야가 사라진다는 것은 문화의 한줄기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우리의 정신이 깃든 길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직 30대인 제가 말총공예를 하고 있으니 그래도 몇십 년은 사라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말총공예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사명감과 함께 제가 느낀 말총공예의 매력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작 ‘성실의 시간’(2022) ⓒ솔루나아트그룹


‘말총 오브제 08’(2022) ⓒ솔루나아트그룹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작 ‘말총-빗살무늬’(2021) ⓒ솔루나아트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