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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콘텐츠] 왜 슈퍼 IP를 발굴해야 할까?: K-팝 선순환을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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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슈퍼 IP를 발굴해야 할까?: K-팝 선순환을 위한 과제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K-팝의 본류라 할 수 있는 SM엔터테인먼트(SM)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결국 카카오의 승리로 끝났다. ‘포스트 BTS’를 도모하며 SM 인수를 적극 타진하던 ‘BTS의 아버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이 과정에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는 하이브가 SM 인수 포기를 선언한 직후인 3월 중순 열린 관훈포럼에서 "우물의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며 ‘국가대표 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슈퍼 지식재산권(IP)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BTS와 블랙핑크를 대표적 슈퍼 IP로 손꼽았다.

여기서 말하는 슈퍼 IP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무한 확장 가능한 코어 콘텐츠라 할 수 있다. 단편적 IP는 확장성이 없다. 본래 가치를 소비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슈퍼 IP는 다르다. 중심 IP를 바탕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할리우드 마블 스튜디오가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를 내세운 독립 솔로 영화 외에 이를 한데 뭉친 ‘어벤져스’ 시리즈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각종 캐릭터와 전시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는 것이 슈퍼 IP의 좋은 예다.

BTS는 K-팝 그룹으로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이를 바탕으로 앨범을 판매하고 공연을 여는 데 그쳤다면 슈퍼 IP라 할 수 없다. 하지만 하이브는 그들을 캐릭터화해 게임을 만들거나 공연 실황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 등 파생 콘텐츠를 발굴했다. 또한 그들의 공연이 열리는 국가와 도시에 복합 체험 공간 ‘BTS 팝업: 하우스 오브 BTS’를 열고 BTS의 히트곡에서 착안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지난해 4월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연에서는 BTS를 테마로 한 숙박 시설이 등장했고, 평소 그들이 즐겨 먹는 한식을 파는 팝업 스토어도 운영했다. 이 외에도 BTS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드라마, 그래픽 리릭스(노랫말(lyrics)을 일러스트(graphic)로 표현한 책) 제작을 고민하고 있다. K-팝 팬을 위한 한국어 교육 콘텐츠 ‘런 코리안 위드 BTS(Learn Korean with BTS)’를 내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보이그룹 엔하이픈을 들 수 있다. 이 그룹은 최근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시장 진출 계획을 밝혔다. 각 멤버는 더핑크퐁컴퍼니가 공동 제작하는 ‘베이비샤크 빅 무비’에 K-팝 밴드 캐릭터로 참여한다. 상대적으로 K-팝에 대한 관심이 적은 영화 팬에게도 엔하이픈을 소개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이는 엄청난 글로벌 인지도를 자랑하는 그룹들을 ‘지속 가능성 콘텐츠’로 탈바꿈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시도다. 또한 그동안 여러 유명 K-팝 그룹이 계약 만료 후 재계약 불발과 동시에 그 가치를 잃는 행태가 반복됐는데, ‘인물 중심’이 아닌 ‘IP 중심’으로 시장 구조를 바꿔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차우진 평론가는 BTS와 또 다른 월드스타인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교하며 "스위프트는 아티스트이지만, BTS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하나의 사업모델이다. IP로서 BTS가 갖는 가치가 더 크다"면서 "결국 BTS의 부재는 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IP의 부재’와 같다. 단순히 BTS를 잇는 아티스트를 키우는 것을 넘어, 부가가치가 높은 IP를 발굴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퍼 IP를 활용한 콘텐츠 시장의 확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K-팝 그룹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동시에 다른 K-팝 그룹을 향한 관심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방시혁 의장을 비롯해 카카오와 손잡고 ‘SM 3.0’을 출범시킨 SM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플랫폼의 확장으로 귀결된다. 일종의 ‘팬들의 놀이터’를 마련해주려는 시도다. BTS 외에 뉴진스, 르세라핌 등 하이브 소속 가수와 블랙핑크, 위너 등 YG 소속 가수가 모두 참여한 플랫폼 ‘위버스’는 여러 유력 IP를 한데 모은 또 다른 슈퍼 IP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팬들은 기존에 좇던 아티스트 외에 또 다른 아티스트를 접하면서 K-팝 시장의 헤비 유저(heavy user)로 자리매김한다.

결국 각각의 K-팝 그룹이 단편적 IP라면, 거대 팬덤을 가진 그룹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활동도를 높이고, 이들을 한데 엮은 밸류 체인(value chain)을 구축해 보다 강력한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것이 슈퍼 IP 중심으로 K-팝 시장을 바꿔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글로벌 K-팝 아티스트는 있되, 걸출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아직 없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할 산업적 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삼성이 있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현대가 있듯 K팝에서도 현 상황을 돌파해 나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등장과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방 의장의 주장과 맞닿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