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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한 세계적 재조명, 백헌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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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 문화에 대한 세계적 재조명, 백헌석 PD

 


1.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93년 MBC 프로덕션에서 PD를 시작해 현재 ㈜이엘TV 대표로서, 각종 문화 다큐멘터리와 교양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요리보고 세계보고’를 제작하면서 짧은 형태의 음식 다큐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찾아라 맛있는 TV’, ‘냉면’, ‘맛의 방주’, ‘커피에 미치다’ 등 음식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20여 년간 제작하면서 음식에 담긴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음식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여전히 많습니다


2. 음식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음식 다큐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몽골에서의 경험이 큰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음식이야말로 세계인의 언어’라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당시 출장으로 몽골을 찾았는데, 한국처럼 손님이 오면 최대한 정성스럽고 풍성하게 음식을 차려 내더군요. 할머니께서 몽골의 여러 전통 음식을 준비하셨는데, 특히 양고기를 재료로 한 밥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아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남은 음식을 억지로 먹은 후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다 먹어줘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 할머니의 미소가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음식과 문화 그리고 사람 간의 정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고, 음식에 대한 애정과 이를 다큐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3. 한국의 음식 문화 콘텐츠에 주목해 '삼겹살 랩소디'를 시작으로 '냉면 랩소디', '한우 랩소디' 등 '랩소디' 시리즈로 전 세계에 한식의 매력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요?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접하며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재미와 품질이 기대 이상으로 높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면서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 플랫폼에 한국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콘텐츠는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를 소재로 전 세계 시청자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첫 번째 소재가 삼겹살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죠. 언제부터인가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인식과 함께 여러 비판적인 기사로 삼겹살 문화가 저평가받기 시작했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었죠. 게다가 삼겹살구이는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뜨거운 불판에 직접 구워 먹는다는 것에 놀라고, 그 맛을 보고 또 한 번 놀랍니다. 분명 멋진 아이템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4. ‘랩소디’ 시리즈는 한식을 해외에 전파하고 한국 식문화를 세계적으로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를 꼽자면 ‘냉면 랩소디’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 중 하나인 냉면 맛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역사적 정서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 그릇의 냉면이 탄생하기까지 명가 장인들의 요리 솜씨를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담아낸 영상미가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냉면의 역사적 유래와 사회적 현상을 모던한 영상 스토리텔링으로 재해석해 ‘음식 소재 다큐멘터리의 백미’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2009년부터 냉면을 테마로 여러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2013년 MBC스페셜 ‘냉면’ 다큐를 만들었고, 이후 예능, 드라마, 영화까지 냉면을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계획 중입니다. 그만큼 ‘냉면 랩소디’는 확장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입니다.


5. 랩소디 시리즈가 기존 음식 다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글로벌 콘텐츠를 제작할 때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영상의 품질입니다. 그래서 4K 카메라 촬영과 조명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와 함께 세계인에게 한국의 음식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재미와 흥미를 전달하기 위해 고증과 재연 아이템 선정 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또 새로운 한식 다큐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원칙 아래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촬영을 진행하느라, 한 시간 분량의 작품 2편을 제작하는 데 8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6. 한국 음식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식에는 한국인의 치열한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모든 식재료를 찾아내 그 안에 내재된 가치와 의미를 찾고, 한 단계 더 나아가 다른 차원의 맛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한식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먹지 않는 김, 미역, 다시마와 같은 바다의 해조류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고, 또 산과 들에 널려 있는 풀로 나물이나 쌈 등의 건강식을 만듭니다. 맛을 재창조하는 발효 음식도 무척 많습니다. 소를 부위별로 130여 종류로 나눠 각각의 요리법을 만든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가장 섬세한 입맛을 보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한식 이야기는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7. 앞으로 계획 중인 랩소디 시리즈나 또 다른 푸드 콘텐츠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2020년부터 한식 랩소디 시리즈가 지상파,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15개 언어로 번역돼 160개국 이상 서비스됐습니다. 이를 통해 한식에 담겨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정보를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고 자부합니다. 심지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랩소디 영상에 나온 맛집을 찾아가 캡처해온 화면과 동일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치킨 랩소디, 떡볶이 랩소디, 짜장면 랩소디, 국수 랩소디, 바다 랩소디 등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로 랩소디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또 다른 한식 프로젝트로 K-푸드쇼 ‘맛의 나라’ 시리즈가 있습니다. 지난해 시즌1 ‘국물의 나라’를 넷플릭스에 론칭했고, 올해 시즌2 ‘김치의 나라’와 시즌3 ‘밥상의 나라’를 넷플릭스와 KBS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8. 전 세계에 K-푸드의 매력을 전파하는 연출가로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한식 다큐’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 음식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으니까요. 랩소디 시리즈는 기획 단계부터 철저히 세계 시장을 겨냥했습니다. 맛깔스러운 색감과 소리로 굽고, 찌고, 삶는 모든 요리 과정을 담았고, 높은 영상 품질로 한국의 음식 문화를 더욱 극적으로 살렸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한식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키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다음 단계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과 목표에 도달했다고 봐도 좋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