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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한국학의 현황과 향후 과제

제7차 KF 포럼에서 로버트 버스웰(Robert E. Buswell) 북미 아시아학회 회장은 한국학이 직면한 과제들과 수많은 다른 학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연했다. 강연의 주요내용을 살펴본다.

동부 및 서부 해안에 소재한 몇몇 미국 대학에서 아시아학은 점점 주류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의 경우 20여 년 전 교수 12명, 강사 5명, 한국학자 0명에서 지금은 교수 26명, 강사 20명, 한국학자 6명의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 관련 강좌는 55개의 학부 과정과 22개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고 불교학, 역사학, 언어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28명의 학생들이 박사 과정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전체 약 70명의 교수들이 한국 관련 연구에 적극적인 흥미를 갖고 200여 개의 한국 관련 강좌를 개설했다. 연간 수천 명의 학생들이 이러한 수업을 듣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미국 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학 전공 학자가 지난 20년간 급격히 증가하였다고 해도, 여전히 중국학자와 일본학자의 숫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 학회 멤버가 약 2배로 늘어났음에도 한국학이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필적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미국 대학들의 한국학 현황도 이와 유사하다. 최근 한국학의 급격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2명 내지 3명 이상의 한국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은 여전히 적다. 연구 중심으로 성장한 대학에서조차 한국은 충분히 대표성을 띠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학이 직면한 과제들
한국학이 줄기차게 직면해온 과제는 ‘새로운 학생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와 ‘이미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학 전공학자들은 나의 경우처럼 중국학이나 일본학에서 한국학 전공으로 전환하거나 한국에군 정보요원이나 평화 봉사단원, 해외 선교사로 파견된 인원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충원되었다. 소수의 모르몬교 선교사들을 제외하면 이제 이와 같은 잠재적 한국학자의 원천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한국학 전공자가 아시아계 학자들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현세대의 대다수 사회과학, 인문학 대학원생들은 한국계 1.5세나 2세 또는 한국 이민자들이다. 우리는 그간의 ‘소수인종 배려정책(Affirmative Action)’이 미국 학계 내에서 아시아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창조적 재고찰을 통해, 미국 내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한국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학은 아시아학 내에서 보다 폭넓게 나타나고 있는 ‘근대 시기에 대한 연구 집중(rush toward the modern)’ 경향에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근대(premodern period)에 대한 연구를 소외시킴으로써 한국학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대학의 박사 학위 취득 연한의 축소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내가 1980년대 대학원에 다닐 때는 아시아학 연구에 필요한 몇몇 언어를 습득하고 중요한 학문적 기여를 하는 데 10년 또는 그 이상 박사과정이 필요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통 3~4년 내에 석・박사 코스를 마치고 1~2년 후에 논문 작성을 마치고 있다. 이러게 짧은 기간 내에 전근대를 연구하는 학생들을 기초부터 철저히 훈련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학 전공자들에 대한 세심한 육성이 없다면 전근대 전공은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고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학 발전, 그 해법
미국의 한국학도 중국학과 일본학의 거물들에 대응하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강구해야 한다. 대부분의 동아시아학과는 중국학으로 시작했고, 이러한 몇몇 중국 프로그램은 이미 100년에 걸친 역사가 있다. 미국 대학에서 일본학은 1960년대에 일본의 경제 성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1990년대까지 중국학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세계 무대에서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 학계에서 중국학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아시아학 내에서 많은 자원이 중국학에 투입되고 있다.
한국학은 이렇게 월등한 규모의 관련 학문들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
첫째, 우리는 동아시아학 동료 학자들에게 좁은 국가 연구 방식을 타파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보다 넓은 지역적 접근을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적 접근을 취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불교를 지역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추정되는 많은 혁신들이 실제로는 한국에서 유래했거나 개인적으로 활동한 한국인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학에 대한 보다 폭넓은 지역적 접근은 결국 중국과 일본의 국가적 전통에 대한 단일 관점을 뒤엎고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중심적 위치를 부각시킬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학이 중국학이나 일본학과 대등한 학문으로 취급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둘째, 전근대 한국에 대한 연구는 역으로 중국학과 일본학을 심화시켜 미국 대학들이 전근대 분야를 폭넓게 다루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한국은 사실상 동아시아의 페니키아 같은 역할을 했다. 한국의 항해술과 잘 발달된 해상로는 한반도의 항구를 무역 중심지로 만들었고, 중국의 동부 해안에는 치외법권과 행정자치권을 가진 한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중국으로 향하는 일본인, 동남아시아인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지역 내 문화적 지식을 전파하는 통로의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전근대 시기에 통합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전근대 자료에 대한 연구는 이웃한 중국과 일본의 연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최근 한국학이 향유해온 지적 고양(intellectual excitement)을 유지・발전시키는 것은 현세대 한국학 학자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보다 폭넓은 지식층과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새롭고 혁신적인 학문적 성과를 출판하여야 하며, 한국학이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새로운 세대의 학자를 육성해야 한다. 또한 지난 20년간 이룬 발전보다 향후 20년간 더 많은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훌륭한 학문적 본보기를 제시하여야 한다. 여기에 한국국제교류재단과의 협력이 지속된다면 이러한 성공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