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한국영화와 미디어 연구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뉴욕대학교 영화학과 개최로 ‘한국영화-미디어와 초국가성’을 주제로 지난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한국 등 5개국에서 총 40여 명의 학자와 평론가, 산업 종사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그리고 한국영화 팬 등이 참여하여 새롭고 발전적인 토론을 이루어냈다.



문화센터의 다양한 발자취를 느낀 전시회
뉴욕대학교는 지난 수십 년간 정치학, 법학, 경제학, 경영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녀왔다. 하지만 뉴욕대학교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아마도 예술 대학인 티시 스쿨(Tisch School of the Arts)이 아닐까 한다. 미디어 재벌 로렌스 티시의 후원으로 1969년 설립된 이 예술 단과대학은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콜세지, 코언 형제 등 영상 분야를 선도하는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며 오랫동안 정상의 위치를 유지해왔다. 또한 미국 내에서 영화학(Cinema Studies) 박사 과정을 두 번째로 개설한 뉴욕대학교 영화학과는 영화 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선도하며 전 세계 영화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 영화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왔던 이 학과는 1990년대 이후 급부상한 아시아 영화의 중요성과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그 결과 아시아 영화를 연구하는 교수나 학생의 수가 다른 영화학과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 가장 명징한 사례가 바로 이번에 열린‘한국영화-미디어와 초국가성’컨퍼런스다. 북미 대륙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한국영화 학술 행사인 이 컨퍼런스는 동 대학 최정봉 교수와 박사 과정을 수료한 필자가 공동으로 조직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뉴욕대학교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영화학과의 마이클슨 극장(Michelson Theatre)에서 나흘간 치러졌다
이번 컨퍼런스는 한국영화의 초국가적인 수용과 순환의 흐름을 재정의하고 재역사화하여 한국영화-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학문적 목표의 첫 단추를 무사히 꿰었다고 자부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뜨거운 열기로 행사장을 메운 열정적인 참여자와 관객들
1990년대 이후 세계 영화계에 등장한 한국영화의 지정학적인 중요성과 글로벌 영화지도의 변화를 예리하게 분석한 예일대학교 영화과 더들리 앤드류 교수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총 4일간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영화학, 한국학, 문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학제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석학들이 참석하여 한국영화의 문화적 번역과 전용, 작가주의의 초국가적인 해석, 재일 한국인과 북한영화의 재해석, 한국영화-미디어의 정치・경제학적인 접근 그리고 식민지 시기 한국영화사의 재해석 등 굵직하고 도전적인 주제로 기존에 발표되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 결과물들을 선보이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한국영화와 관련된 최근의 연구들을 듣기 위해 아침부터 객석을 가득 메우고 계단에까지 앉아 있었던 열성적인 관객들은 뉴욕대학교 영화학과의 교수들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심지어 멀리 시카고와 플로리다에서 직접 비행기를 타고 온 대학원생들까지 있어 한국영화 연구에 대한 이들의 목마름을 느낄 수 있었다.
부대 행사 역시 큰 관심을 끌었다. 미국 내에서 한국영화와 미디어를 수입・배급하는 산업 관계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평론가 그리고 한국영화와 문화를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및 웹진을 통해서 수용・소개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석한 두 번의 집중 토론에서는 뉴욕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 프로그래머 고란 토팔로빅(Goran Topalovic), 내년 초 북미 정식 개봉 예정인 <시>를 비롯해 많은 한국영화의 북미 배급을 담당했던 키노 인터내셔널 대표 도널드 크림, 한국드라마의 인터넷 배급 플랫폼인 드라마 피버(dramafever.com)를 운영하는 승 백, 그리고 한국 및 아시아 (영화) 마니아이자 관련 웹진 씨네어섬(http://cineawesome.com/)의 공동운영자 루퍼스 드 램 (Rufus De Rham) 등이 한국영화의 해외 수용과 유통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펼쳤다. 특히 실제로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계층이 흑인,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중동 출신의 젊은 세대로 적극 확대되고 있다는 이들의 설득력 있는 주장과 그 결과들은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기존 한류 연구의 지평을 더 확장해야 할 것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또한 행사 기간 중에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으로 아직 북미 대륙에 정식으로 배급이 되지 않은 <옥희의 영화>를 비롯해서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 그리고 고 이만희 감독의 1968년작 <휴일> 등이 상영되어 뉴욕의 영화 팬들은 물론 많은 교민들이 찾아왔다.



한국영화 연구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한걸음
한국영화와 미디어를 국가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기존의 방법론을 극복하고 초국가적인 수용과 순환 가능성을 타진하여 한국영화-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이번 컨퍼런스는 그간 한국영화와 미디어가 국내외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에 비해 한국 대중문화의 초국가적 전파와 수용에 대한 주목이 영미권 학계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에서 출발했다. 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중국 영화와 비교할 때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재 미국 내에는 중국 영화 관련 서적만 수십여 종에 이르고, 중국 영화 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대학이 거의 전무하다. 2005년에 뉴욕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중국 영화 10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중국 영화 100주년 100편 상영회 등 뉴욕에서 개최된 학술 행사는 오늘날 중국 영화 연구가 맞이한 전성기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반해 한국영화의 연구는 북미 최초 한국영화 관련 영어 연구서 <한국영화에서의 재남성화(Remasculinization of Korean Cinema)>(김경현)가 출판된 2004년 이래로 한국영화의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은 연구 결과물들을 보여주지 못해왔다. 물론 대형 영화제, 문화 행사나 이벤트를 통해 단기적인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한국영화와 미디어가 장기적으로 미국의 문화 예술계를 넘어서 미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이 중요하며 이들을 교육할 학자, 교재 그리고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쌓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컨퍼런스를 뜨겁게 달군 토론들은 계속 제한 시간을 넘어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악몽과도 같았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일회적인 행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컨퍼런스 조직위원회는 이 모임의 결과물들을 주제별로 나누어서 한국학 저널(Journal of Korean Studies)의 스페셜 이슈로 싣고 미국 내 중요 출판사에서 앤솔로지 형태로 출판하는 것을 진행하고 있다. 모쪼록 이 행사와 그 학술적 결과물들이 앞으로 서구 영화학계에서 한국영화와 미디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불씨를 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 컨퍼런스를 준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후원해 온 한국국제교류재단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