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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한국의 색을 재정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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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보, 묘법 No. 031219, 캔버스에 한지, 혼합매체, 182×228cm, 2003

▲ 박서보, 묘법 No. 031219, 캔버스에 한지, 혼합매체, 182×228cm, 2003

단색화, 한국의 색을 재정의하다

색은 수백 년 동안 한국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여러 색깔의 나물이 어우러진 비빔밥, 오색찬란한 전통 한복 등이 그 예입니다. 한편 한국 미술계에서는 ‘단색화’라는 장르를 통해 ‘한국의 색’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탄생한 단색화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지난 40년간 단색화를 통해 ‘한국의 색’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기를 추상적으로 풀어내다

단색화는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을 뜻하지만 실은 다층적인 색이 뒤섞인 단색을 사용하며, 색상의 선택에서 화가의 통합적인 접근 방식과 정신이 드러납니다. 전후 1970년대, 한국 화가들은 내적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단색화를 그렸고, 제한된 수의 색을 사용해 명상적인 화폭을 구현해냈습니다.
  예를 들어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은 ‘묘법(Écriture)’ 시리즈에서 캔버스에 몇 가지 색들을 칠한 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반복해서 선을 긋거나 색칠을 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질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화법에서 ‘색’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단색화 1세대 작가 중 한 명인 김기린 화백 역시 반복적인 덧칠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과 밖(Inside, Outside)’ 시리즈는 얼핏 보면 빨강, 노랑, 초록, 하양 등의 한 가지 색상으로 보이지만, 각각의 면들은 반복적인 덧칠을 통해 완성한 여러 개의 사각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추어진 선들과 드러난 선들이 공존하며 여성과 남성을 상징하는 음양 원리를 담은 추상적인 형태를 구현합니다.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다

한국이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어 나가던 시기에 탄생한 단색화는 추상적인 형태로 덧칠된 색과 질감을 통해 시대정신과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달래며 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들어 단색화는 변화하는 현대 한국을 담아냅니다. 일례로 ‘접합(Conjunction)’ 시리즈에서 마대를 캔버스 삼아 저채도의 연한 회색과 갈색을 사용하던 하종현 화백은 2010년부터 기존의 자연스러운 색상 대신 무지개를 이루는 원색들을 사용한 ‘이후 접합(Post Conjunction)’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작품들이 전후 시기 한국의 트라우마와 한계를 담아냈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현대의 희망찬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단색화는 한국의 색과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기도 합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의 블럼앤포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한국의 단색화 작품들이 국제적 명성을 얻은 것을 계기로, 단색화 화가들은 세계 미술계에서 점차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색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한국의 시대정신을 담아온 단색화는 그 표현방식은 진화할지라도, 한국의 역사와 미래를 논하는 본질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글 다이아나 박


▲ 김기린, 안과 밖, 캔버스에 유채, 195×130cm, 1980

▲ 김기린, 안과 밖, 캔버스에 유채, 195×130cm,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