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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소중한 아세안의 달걀 요리들

테이스티 아세안

기발하고 소중한 아세안의 달걀 요리들

글 _ 박민우(<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 저자)

태국에서 달걀프라이 만드는 장면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구경거리다. 흥건한 기름에 아예 튀긴다. 달걀프라이가 아니라 달걀튀김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프라이는 느끼할 법도 한데 의외로 고소하다. 뜨끈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달걀을 싫어하는 나라가 있을까? 모든 나라의 단백질 공급원이자 밑반찬이고, 간식인 달걀이 아세안 국가에선 좀 더 기발해지고, 맛있어 진다. 인류와 가장 친한 식재료 달걀이 어디까지 변신할 수 있을까? 아세안 국가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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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보는 필리핀의 국민 찜 요리다. 돼지고기를 넣으면 돼지 아도보, 닭고기를 넣으면 닭고기 아도보다. 당연히 달걀 아도보도 있다. 간장과 사과 식초를 1대 1 비율로 끓인 후, 삶은 달걀을 넣고 다음 날 먹으면 된다. 예상대로 짭짤하고, 시큼하다. 하지만 달걀 속으로 부드럽게 침투한 간장과 식초는 조직을 부드럽게 하며 극대화된 감칠맛으로 밥을 부른다. 최고의 밥도둑이란 얘기다. 어떻게 식초를 넣어서 끓일 생각을 했지? 한 번 맛을 보면 식초 없이 졸인 음식들이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태국의 란쩨파이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오믈렛을 파는 식당이다. 놀라지 마시라. 오믈렛이 우리나라 돈으로 5만 원이 넘는다. 에어컨도 없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기본 세 시간을 기다리며 이 비싸디비싼 오믈렛을 먹는다. 게살이 통째로 들어간 오믈렛이니 어떻게 맛없을 수 있을까? 싱싱한 게의 속살만 발라내서는 달걀옷을 입혀 부친다. 같은 자리에서 40년 넘게 게살 오믈렛에 매달렸더니 결국 세상이 무릎을 꿇었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오믈렛으로, 어디에도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기나긴 기다림,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미슐랭에서 원스타를 받은 식당이기도 하다.

베트남에선 꼭 마셔 봐야 할 커피가 있다. 달걀 커피, 카페쯩이다. 달걀 커피라니? 커피에 달걀이 들어간다고? 그것도 익힌 달걀이 아니라, 생달걀의 노른자가 들어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놀라도, 한국 사람은 놀라면 안 된다. 쌍화차에 달걀을 띄워 먹는 전통을 가진 나라 아니던가? 쌍화차가 커피로 바뀌었을 뿐이다. 쓰디쓴 베트남 커피에 연유, 달걀 노른자를 휘휘 섞어서 부어 주면 끝. 비리지 않을까? 낯설고 두툼한 달걀 거품이 망설여지겠지만, 눈이 번쩍 떠지고 주변이 환해지는 맛이다. 티라미수 케이크의 액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티라미수 케이크에도 커피와 달걀노른자가 들어간다. 세상 가장 부드러운 케이크가 티라미수 케이크 아닌가? 베트남 달걀 커피는 그보다 더 부드러운 ʻ마시는 티라미수 케이크’라 할 수 있다. 평생 잊지 못할 부드러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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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과 토스트, 카야잼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국민 아침 식사다. 카야잼은 달걀, 코코넛 밀크, 판단 잎이 들어간다. 신비로운 연둣빛의 잼을 빵에 펴 바르고, 출렁출렁 수란엔 간장을 흩뿌린다. 달콤한 빵을 수란에 톡톡 찍어서, 달달한 커피 혹은 차를 한 모금씩 곁들인다. 식민지 시절 영국 함선 주방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에 의해 창조된 요리다. 가장 흔한 음식이 가장 그리운 법. 나에게 카야잼을 듬뿍 바른 토스트와 수란이 그런 요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