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계절은 언뜻 보면 온통 여름으로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현지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우기와 건기의 온도 차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진다. 필리핀의 우기인 6~11월 사이, 현지인들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국물 요리를 찾는다. 필리핀의 갈비탕이라고 소개되는 ‘불랄로(Bulalo)’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전통 보양식이다.
필리핀의 루손 지역의 남부 바탕가스(Batangas)에서 기원한 음식이라는 불랄로는 산지라서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타가이타이(Tagaytay)에서 특히 유명한 음식이다. 하지만 필리핀 어느 지역에서든 현지식 레스토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된 보양식이다. 소고기 양지머리와 정강이뼈를 푹 끓이고 야채를 듬뿍 넣어 만드는 조리 과정은 한국의 갈비탕 만드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신선한 뼈를 끓는 물에 한 번 데쳐내어 찌꺼기를 제거하고, 양지는 물에 담가 핏물을 빼내어 준비한다. 물을 넉넉하게 부은 다음 뼈의 육수가 충분히 우러나도록 끓인 뒤 양지머리를 넣고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두 시간 정도를 더 끓인다. 이때 양파와 후추, 액젓을 넣어주는데, 단맛과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다. 떠오르는 기름을 제거한 다음 마지막으로 감자와 양배추, 옥수수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완성이다. 배추, 당근, 청경채나 녹두 등의 야채를 추가로 넣어 먹기도 한다. 기본 간을 할 때는 간장이나 소금을 사용한다.
먼저 뜨끈한 국물을 한입 먹어보면 오래 끓인 만큼 뼈에서 제대로 우러나온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부들부들한 뼈의 연골과 골수는 불랄로에서 특히 인기 있는 부위다. 살뜰하게 뼈 사이사이를 발라 먹으면 입안에 고소한 맛이 가득 퍼진다. 불랄로는 간장에 매콤한 고추와 새콤한 깔라만시를 넣어 만든 소스와 함께 내는데, 부드러운 고기를 소스에 살짝 찍어 먹으면 입안을 꽉 채우는 풍미가 또 일품이다. 불랄로는 뼈에서 우러난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고, 함께 끓인 야채의 섬유질이 풍부해서 균형 잡힌 보양식으로 손색없는 메뉴이다. 국물에 흰쌀밥을 말아 먹으면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한국에 갈비탕이 있다면 필리핀에는 불랄로가 있다는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