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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 술 문화 비교

러시아에서 왔다고? 그럼, 술 잘 먹겠구만!”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작년 가을부터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는 어디든지 가면 낯선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사실 그것은 모든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선입관과 같이 고정 관념에 불과하지만 러시아의 음주율이 세계 1위 수준이라는 것도 치명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러시아에 이어 2위이지 않은가? 원래 술 문화는 주로 남자들에게 속한 문화다. 두 나라의 음주율을 보면 한국 남자들과 러시아 남자들의 공통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 ‘문화’와 술 ‘버릇’의 구분

그럼, 한국과 러시아에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편인가? 그런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면 먼저 ‘문화’와 ‘버릇’을 구분을 해야 될 것 같다. 문화란 어떤 사회에 내재된 것이며 버릇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술’을 마시면서 지켜야 할 예절을 술 문화라고 하면, 과음하고 일탈적인 행동을 부리는 것은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버릇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이 다 나누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 버릇의 원인이 그냥 빨리 취하고 싶은 욕구라면 술 문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단체로 즐겨 마시는 술 문화의 원인은 바로 집단주의적인 의식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러시아에도 개인주의가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술은 새로운 구성원이 그 단체에 빨리 적응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또한 서로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동성, 이성을 막론하고 술을 마시면서 취중진담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술 문화의 또 다른 원인들을 찾아 보도록 하자. 러시아정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죄를 지은 적이 없다면 참회도 할 수 없고 참회하지 않으면 부활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죄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참회를 통해 부활을 도모하려는 마음자세이다. 세상을 이렇게 보는 눈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도 나타난다. 즉, 단점과 헛점이 있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들은 바로는, 한국 사람들도 단점이 하나도 없고 100% 완벽한 인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술에 의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술 문화의 바탕이 아닌가 싶다. 바꾸어 말해, 한국과 러시아 술 문화의 바탕이 똑 같다. 그러나, 술 문화 자체는 비슷한 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음주 장소 선택상의 차이

이제는 우리 양국의 술 문화 특징을 살펴보자. “자, 오늘 술 한잔 하러 가자! 어디 갈까?” 가장 눈에 띈 차이점은 술을 마시는 장소이다. 러시아에는 한국과 같이 술집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지만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기숙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야외(소풍이나 국내여행)로 나가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도시인들 중에는 별장이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친구들과 별장에 가서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장소들 때문에 러시아에는 보통 한 장소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달리 술자리를 잘 바꾸지 않는다. 그 대신에 한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까지 마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야외의 경우에는 보통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 가지만, 집에는 이름이나 얼굴만 아는 사람도 가끔 초대된다. 그럴 때 주인을 아주 잘 모르는 손님은 이런저런 구실로 일찍 그 집에서 떠난다. 사이가 가깝지 않은 사람이 집에 오래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지만 술을 더 이상 못 마시는 사람은 그냥 자면 된다. 한국 술 문화를 약간 체험해 본 적이 있는 나는 장소 바꾸기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다른 구성원들 사이에 거리가 있거나 술에 쉽게 취할 수 있는 사람이 1차 후에 어떤 핑계를 대고 집에 가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주도(酒道)의 차이

“휴, 마침내 다 왔다. 이젠 병을 따서 술을 따라줘야 할 거 아니야?” 러시아에는 술을 따라줄 때 병을 두 손으로 잡는 풍습이 없으나 러시아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과 같이 술병 라벨을 손바닥으로 대고 손바닥이 꼭 아래 있어야 한다는 예절을 지킨다. 러시아에서도 따라주는 순서가 있다. 여자들 그리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에게 먼저 따라주고 자기 잔에 맨 마지막으로 따른다. 포도주를 따라줄 때는 먼저 자기 잔에 조금 따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따라준 다음에 다시 자기 잔을 가득 부으면 된다. 상대방은 잔을 들 수도 있고 안들 수도 있다. 러시아 사람들도 술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할 때 한 잔씩 잔을 돌리면서 나누어 마시지만 한국식 잔 돌리기는 하지 않는다.

“술잔 다 받았어? 그럼, 뭘 기다려? 빨리 마셔야지!”, “건배 없이 술 먹는 게 어디 있어?” 러시아 사람들은 그냥 술을 마시는 것보다 건배를 하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러시아에서는 그냥 ‘건배!’ 라고 말하기도 하나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그리고 생일 파티이면 생일을 맞은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의 부모를 위해 마시자는 건배가 있고, 남자들끼리만 술을 마실 경우 건배 내용이 좀 지저분할 수도 있지만 여자들에 관한 내용일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신 주인의 부인을 위한 건배도 꼭 나온다. 상황에 따라서 건배의 내용도 다르다. 또한 운명하신 사람에 대한 추억을 위해 술을 마실 경우 술잔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마시는 풍습이 있다.

“벌써 한 병 다 마셨네. 그럼, 빈 병 빨리 치우고 또 한 병을 따자.” 한국에는 빈 병을 술상에 그대로 남겨 두지만 러시아에는 꼭 치운다. 러시아에서 대접하는 사람이 빈 병을 치우지 않으면 그 빈 병이 마지막 병이니까 더 이상 술이 안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에 늑장을 부리는 주인은 매너가 나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공장 굴뚝같이 술상에 줄지어 놓여 있는 빈 병들이 ‘우리가 이만큼 많이 마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러시아 사람들도 마신 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자랑스러운 것의 징표는 보통 술상 옆 벽에 세로로 줄서 있다.

‘완’샷과 ‘원’샷

“야, 오늘 분위기 참 좋다. 자, 또 한 잔 하자!”, “응, 먹고 죽자!”, “죽어도 먹자! 완샷!!!” 술을 ‘완샷’으로 마신다는 것은 분명히 두 나라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마시는 술은 보드카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내가 러시아에서 맥주를 이렇게 마시는 것은 못 봤다. 보드카는 보통 따라주는 대로 마셔야 되는데, 만약에 가득 넘친 잔을 못 마신다면 따라주는 사람에게 반잔만 따라 달라고 하면 된다. 그것도 남자들만 잘 지키는 예절이다. 여자들은 ‘완(완전히 마시는)샷’ 대신에 ‘원(원하는 대로 마시는)샷’을 해도 된다.

“야, 야! 너 술 먹으러 왔냐? 밥 먹으러 왔냐? 왜 안주만 먹으냐니까?”, “술 더 이상 못 먹겠어”, “뭐야? 그럼,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빨리 마셔!” 러시아에도 한국과 같이 술을 억지로 마시도록 시키는 사람들이 있으며, ‘안주파’같은 사람들이 비꼼을 당할 수 있다. 술 마실 때도 발걸음에 맞추라는 것은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에서 모두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새로운 병 따지 말자고 해도 벌써 딴 병을 끝까지 비워야 되잖아.”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술을 남긴다고 들었지만 러시아에는 젊은 사람들이라도 ‘피 같은’ 술이니까 딴 병을 꼭 끝까지 마셔야 된다고 생각한다.

‘문화’에서 ‘버릇’으로

“아~아, 머리가 터질 정도로 아프고 속이 뒤집힐 정도로 구역질 난다. 도대체 난 어제 뭘 먹었나? 뭘 했나? 아니, 어디 가서 누구랑 술 먹었다는 것이나 기억했으면 좋겠다.” 숙취는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 다음 날 기억도 나지 못할 만큼 마신 결과이다. 숙취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고통 해소 방법으로 해장술을 마시지 않는가? 그것은 이제 문화가 아닌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러시아 술 문화를 비교해 보니까 비슷한 점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구촌은 세계화 시대이므로 한국 사회라든지, 러시아 사회라든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래서 다른 문화와 같이 술 문화도 변해지고 있다. 소주와 같이 보드카도 나이 든 사람이나 지방 사람들의 술인 반면, 젊은 사람들과 도시인들은 주로 맥주와 양주를 선택하듯이 위에 쓴 풍습들도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쉽게 말해, 두 나라의 술 문화는 사라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화가 없어지지만, 버릇은 엄연히 남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