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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슈벨 뮤직 알프에 울려퍼진 사물놀이의 신명

2009년 7월 27일 프랑스의 작은 휴양 도시 쿠르슈벨(Courchevel)의 작은 공연장에서 김덕수
가 이끄는 한울림 예술단의 사물놀이 공연이 열렸다. 청중 대부분은 미래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
어갈 30여 개국의 젊은 학생들. 생전처음 접해본 사물놀이와 한국 전통 예술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들은 기립 박수로 열광했다.



클래식과 사물놀이, 두 장르의 오랜 조우
1983년 2월 22일 서울시립교향악단 290회 정기연주회 마지막 무대. 사물놀이 협주곡 <마당>(강준일 작곡)의 초연이 끝났을 때, 세종문화회관대강당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넘쳐나는 감동과 흥분으로 다섯 차례나 커튼 콜을 연발해 서울시립교향악단 창작 연주 기록에 전무후무한 이변을 낳았다.
전통 예술인 풍물 굿을 기반으로 탄생한 사물놀이는 이 공연의 성공으로 한국 음악계의 중심부로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서구 음악 교육을 받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예술적 가치와 음악적 완결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던 전통음악, 그중에서도 타악기로만 이루어진 사물놀이를 솔리스트로 초청하여 무대 중앙에 세운 이 공연은 뜻밖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에야 국악인들이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의 공연 리뷰는 전통음악에 대한 클래식 음악계의 터부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전통 타악기와 서양 음악의 앙상블로 놀라움을 안겨준 이 공연을 통해 사물놀이는 음악적 확장을 기대했고, 전통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리고 1995년 유엔 창설 50주년을 맞이하여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연주된 <마당>은 총회장을 가득 메운 청중으로부터 15분에 이르는 기립 박수와 커튼 콜을 받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민속음악(ethnic music) 혹은 월드 뮤직이라는, 음악계 변방에 머물고있는 사물놀이가 지속적으로 클래식 음악과의 공동 작업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창작곡들을 발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전통 예술의 이미지로서 사물놀이가 아니라 음악적 구조에서나 예술적 완결성에서 당당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21세기 세계 음악계의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월드 뮤직의 급격한 부상(浮上)이며, 그 안에는 비트(beat)로 통하는 다양한 민속 리듬에 대한 재조명이 담겨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전통 장단은 보고(寶庫)와도 같다. 서양의 음악이 메트로놈에 의해 측정되는 맥박이라면 우리의 장단은 감고 맺고 풀어내는 호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호흡은 악기 편성과 공연 양식에 따라 대단히 가변적이고 그 결과 수없는 폴리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만나더라도 융합될 수 있는 우리 장단이 가진 포용성이며 열린 구조다.

사물놀이의 새로운 비상(飛上)
2009년 7월 27일 프랑스의 작은 휴양 도시 쿠르슈벨의 작은 공연장에서 김덕수가 이끄는 한울림 예술단의 공연이 열렸다. 450석의 극장에 몰려든 600여 명의 청중 대부분은 미래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갈 30여 개국의 젊은 학생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기립 박수로 열광한 그들은 생전 처음 접해본 사물놀이와 한국 전통 예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토로했다. 이번 공연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쿠르슈벨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뮤직 알프(Music Alp)의 초청 공연으로 마련되었고 예술감독인 강동석(바이올린 연주자) 선생의 주선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후원으로 성사되었다.
뮤직 알프는 7월과 8월 사이 한 달 동안 40여 명의 저명한 클래식 음악교수진과 7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마스터 클래스형 축제다. 미국콜로라도 주의 아스펜(Aspen) 음악제보다 규모는 작지만 유럽 지역에서는 최고 수준의 클래식 음악 캠프로 발돋움했다. 이곳에서 사물놀이 공연은 단순히 한국 전통 예술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전통 예술의 현지화’라는 전략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의 신명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세계인이 공유하게 하는 목표는 외국에서의 공연 몇 번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지의 예술가들 그리고 미래의 예술가들이 우리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작업에 적극적이고 실효적으로 전통 예술이 차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노력의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 연극 연출가 아리안느 므누슈킨(Ariane Mnouchkine)이 이끄는 프랑스의 태양극단 단원들을 대상으로한 6개월에 걸친 워크숍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그들은 2001년도 작품 <제방의 북소리>에 사물놀이를 훌륭하게 활용했다. 또한 얼마 전에 타계한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Pina Bausch)도 사물놀이와 전통 춤 동작을 그들의 작품에 활용해 주목을 받았다.

사물놀이의 두드림과 아리랑 가락이 세계에 울려 퍼질 그날을 꿈꾸며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퍼졌던 ‘한류 현상’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의가 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중문화를 포함한 모든 문화 교류는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다른 민족 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작금의 한류 현상이 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드라마건 영화건 음악이건 간에 우리만이 가진 문화의 정체성과 전통에 근거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여름 쿠르슈벨에서 울려 퍼진 사물의 신명과 아리랑 가락이 언젠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세계의 젊은 클래식 연주가들의 손끝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