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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사적, 행과 불행의 교차

2박 3일간 크고 작은 목적지 아홉 군데를 답사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부터 강진 다산초당까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이렇게 다양한 명승지를 한꺼번에 방문한 것은 좋은 기억을 남기는 동시에 중국의 사적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다시피 아쉽게도 한국의 수많은 사적이 파괴되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많지 않다. 역사상 누차 일본의 침략을 당해서 손상된 것도 많고,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익산 미륵사지 같은 경우처럼 벼락 같은 자연 재해로 인해 없어진 것도 있다. 이는 한국 사적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적 파괴의 아픔을 남긴 불행한 역사
역사 문물이 불행을 당하여 고스란히 보존되기가 어렵기는 문물 대국인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문물이 파괴된 원인이 다소 다르다. 한국처럼 불가피한 자연 재앙이나 외국의 침입, 국내의 전쟁으로 사적이 피해를 당한 경우도 물론 적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그보다 몇 배로 치명적이고도 강한 파괴 요인이 있었다. 바로 혁명이다. 특히 지난 세기 1960~1970년대에 중국은 미래와 현대를 향해 가는 길의 방애물인 구문화의 제거를 명목으로 문화혁명이라는 정치 운동을 벌였다. 20년 동안 중국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 폭풍같이 불어 닥친 혁명은 귀중한 역사 문물과 유적을 휩쓸어버렸다. 조상이 우리에게 남겨준, 정치와는 상관이 없는 사적이 이렇게 정치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로 자국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은 적의 손으로 파괴된 것보다 천 배 만 배로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불행이다.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역사상 그런 혁명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것은 한국 사적의 행운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적이 잘 보존되지 않는다는 원망을 자주 하는데, 한국의 사적 유지가 그렇게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답사를 해보니 한국의 사적 보완 수준은 중국 사람인 내가 부러워할 정도로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순천 낙안읍성이고 또 하나는 강진 다산 초당이다.



사적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열의
전자는 아시아 문화권의 ‘성’이라는 개념 중에 가장 작은 규모의 성이고, 후자는 조선시대 유배자 한 명이 살았던 작은 건축물이다.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만큼 중국에도 비슷한 곳이 있겠지만 중국 사람은 그것을 보호할 만한 문화재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시하지 않고 여행지로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읍성과 초당이라는 개념을 알면서도 중국에서는 한 번도 실물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문화를 잘 계승하는 한국에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역사는 책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는 한국이 유형문화재를 잘 보호하는 것은 한국가의 문화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가치가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 한국과 아시아 문화의 행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의 사적 보존 열의는 대단하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다른 나라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표절한다고 비판하는 의식만 팽배하다. 중국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깊게 반성하여 나라의 사적 보존에 좀 더 힘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