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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추는 거울, <슈피겔der Spiegel>의 100가지 얼굴

주한 독일문화원과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하는 «시선을 끄는 예술, 시사 주간지 슈피겔»전의 개막식이 지난 3월 5일 서울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전시실에서 열렸다. 지난 50여 년간 독일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로서 자리한 슈피겔의 표지를 장식하거나 혹은 아쉽게 출판이 보류된 60여 작가의 일러스트 100여 점이 전시되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용기와 신뢰로 쌓은 언론의 힘, <슈피겔>
구동독의 도청 행각을 소재로 다룬 영화 <타인의 삶>을 보면, 등장인물 드라이먼이 자신이 도청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체제 비판을 위해 서독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예술가에 대한 탄압과 인권유린에 대한 글을 익명으로 투고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처럼 독일뿐 아니라 유럽 사회 전반에 대해 말할 때, 슈피겔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172개 국가에 매주 120만 부를 배포해 600만 명 이상의 탄탄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슈피겔은, 194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창간한 이래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공격적이고 과감한 기사를 게재하여 수많은 정치 스캔들을 밝혀냈다. 지금과 같은 슈피겔의 위상을 만들어낸 데에는 ‘기사 검증 전문가’ 제도가 큰 기여를 했다. 90여 명의 석・박사 출신 전문가들이 270여 명의 취재 기자들이 쓴 기사를 꼼꼼히 검증하는 이 제도는 슈피겔이 받고 있는 신뢰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하고 정확한 기사와 더불어 언론의 자유를 위해 거침없고 용감한 행보를 보여준 슈피겔은 많은 독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매체임을 각인시켰다.

한 장의 표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이러한 슈피겔이기에 매 호의 ‘얼굴’인 표지의 선택 역시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천 마디의 말보다 단 한 장의 그림이 더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슈피겔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색 테두리 안에 그려진 수많은 이야기들 역시 가판대에서 많은 사람의 손길을 잡아끄는 슈피겔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슈피겔의 편집장 마르틴 되리가 밝히는 표지 선정 과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표지 테마를 위해 대개 최소 5개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그 대부분을 제작까지 하는데 지금까지 총 3,288개의 표지가 출간되었다고 하니, 매주 편집자들이 표지 선정을 두고 시간과 아이디어에 쫓기며 치렀을 전쟁과 같은 마감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슈피겔의 표지는 단순한 인물 사진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한 시도들을 하며,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징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예술가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초기 참여 작가 중 한명인 헤르만 데크비츠는 1967년 마오쩌둥이 목에 용 모양의 올가미를 두른 그림으로 슈피겔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숨에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시켰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슈피겔의 표지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할까? 표지 편집부가 선정한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표지 그림을 청탁하면, 팀 오브라이언, 라팔 올빈스키, 크리스 페인, 알퐁스 키퍼 같은 예술가들은 커버스토리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시각화하여 마감 시간에 맞추어 편집부에 작품을 보낸다. 놀랍게도 이들은 편집장의 표현처럼 ‘마치 옛 대가들이 그러하듯’ 유채와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고 이것을 항공 수하물 혹은 택배로 함부르크 슈피겔 본사로 보낸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일러스트 중 특별한 몇 작품을 선별적으로 전시했다.

시대와 함께 변하는 <슈피겔>
100여 점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하나는 표지만으로도 독일을 포함한 세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지들이 점차 다양한 기법들로 다양한 주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의 표지들은 주로 아이젠하워나 아데나워, 스탈린 같은 정치적으로 이슈화되는 인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중심이었으나 점차 출산율 문제(알퐁스 키퍼, 2004년 2호, ‘최후의 독일인’), 분자생물학(로베르트 기우스티, 1998년 10호, ‘신의 섬광’), 청소년 학력 문제(미하넬 플레스, 2004년 출판 보류, ‘똑똑한 여학생들, 멍청한 남학생들’), 다이어트 열풍(로베르트 기우스티, 2005년 25호, ‘다이어트 중독’), 그리고 프로이트를 넘어서려는 정신분석학(라팔 올빈스키, 2005년 16호, ‘프로이트가 그래도 옳았던걸까’)까지 사회 현상 전반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부터는 점토(리즈 로맥스), 디지털 사진(미하넬 플레스),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키는 일러스트 등 표현 기법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느껴진다. 이들 중에는 뛰어난 표현력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작품들도 있다. 부시 대통령을 람보로 묘사한 표지(2002년 8호)나 김정일을 폭탄 추종자로 묘사한 표지(2005년 7호)는 감히 슈피겔이 아니면 표지로 내세울 수 없었을 것 같은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분단과 통일을 겪은 독일은 한국만큼이나 거친 역사의 파고를 넘어왔다. 그 속에서 강하게 성장한 언론 매체인 슈피겔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언론 문화와 그것을 반영하는 슈피겔의 표지 전시회가 한국과 독일이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뜻 깊은 문화 교류의 장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