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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의 행복한 만남

3월 4일부터 5월 6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정기문화강좌시리즈의 일환으로 영화음악 강좌가 펼쳐진다. 이번 강좌에서 강의를 맡은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는 세계 영화음악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쉽고 재미난 해설을 가미해 대중에게 영화음악에 대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친한 친구이자 팝 칼럼니스트인 김태훈 씨와 3년 전 대중문화 전문 팀블로그인 ‘3M흥업’(http://three-m.kr)을 만들 때 일이다. 나는 블로그 소개글에서 ‘음악(Music)’이라는 단어를 ‘영화(movie)’보다 먼저 쓰기를 원했는데 그 친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요즘엔 영화가 대중문화의 대세인데, 영화 전문가인 당신이 음악을 먼저 내세우려는 의도가 뭐요?”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껏해야 백 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진 영화를 감히 어찌 음악보다 먼저 내세울 수 있겠소!”

음악은 영화라는 졸부의 최고 채권자
사실이 그렇다. 음악은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있어왔던 예술 장르고, 영화는 정지된 사진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만들어진, 이제 겨우 115년의 역사를 지닌 새로운 예술 장르다. 어디 음악뿐이랴. 미술과 문학, 종교와 철학, 온갖 분야의 인류 문화적 유산들이영화의 조상이다. 그렇게 본다면, 영화는 그런 문화적 성취를 자양분 삼은 뒤에야 기껏 ‘움직이는 그림(moving picture)’이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게된, 좀 심하게 말하자면 예술계의 졸부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단연 최고 권위의 채권자였다. 그래서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를 상영한 바로 그 순간부터, 어쩌면 영화는 필연적으로 음악과 동고동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성 영화 시대에는 극장에서 연주되던 음악이 발성 영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운드 트랙 안으로 들어가 영화와 더욱 긴밀하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발성 영화 초창기이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된 1930년대에 음악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날까지도 뮤지컬은 가장 강력한 영화 장르 가운데 하나이고, 음악 영화도 독자적 장르로서 그 줄기를 튼튼하게 이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사실 영화를 말할 때 음악의 중요성은 지나치게 홀대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것은 초창기부터 영화제작자들이 청각을 시각에 종속된 것으로 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음악을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만 취급하거나, 영상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부수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음악이 전체 문화 영역에서 차지하는 거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영화음악의 존재 가치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돼 왔던 것도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영화음악은 듣는 것이 아닌 ‘보는 음악’
그러나 영화의 역사는 곧 영화음악의 중요성이 진화 발전해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에서부터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들을 통해 영화음악의 새 패러다임을 열었던 버나드 허먼을 비롯해 미클로스 로자,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 최근의 한스 짐머 등 시대마다 걸출한 재능을 갖춘 영화음악의 선구자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들은 영화음악이 영화의 가치를 더욱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장면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을 넘어 때론 음악이 영화 흥행을 견인한 경우도 비일비재해졌다. 이제 영화와 사운드 트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적 관계가 됐다.
한편으로는 대중음악의 발전도 영화음악의 중요한 자양분이 돼 왔다. 엘리아 카잔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재즈와 블루스를 도입한 이래, 록과 디스코, 전자음악과 최근의 힙합까지 대중음악 진영의 흐름은 곧바로 영화에 흡수돼 동시대인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호흡해왔다.
알다시피, 라디오에서 영화음악 프로그램들을 듣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만큼 영화음악 애호가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게 됐다는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할 때 그 온전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믿는 나로선, 그런 기회를 선사할 수 있는 공간이 늘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새 봄을 맞아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마련한 영화음악 강좌에 강사로 나서게 된 게 그래서 더욱 반갑고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