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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으로 전한 한국문화의 향기

인도 뭄바이의 손꼽히는 공연장인 타타극장(TaTa Theatre). 지난해 11월 21일, 첫 공연을 앞둔 연습장은 몹시 어수선했다. 현지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돕겠다고 나서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연습에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제1바이올린 연주자 김현미 교수는 그냥 넘어가자고 눈짓을 했다. 그래도 뭔가 도우려고 애쓰는 극장 직원들의 선의(善意)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공연시간이 임박할수록 4명의 현악연주자와 협연자인 피아니스트 김금봉 교수의 긴장은 팽팽해져 갔다. 실내악 연주장으로는 다소 큰 타타극장의 규모가 부담이 되었을 뿐 아니라, 뭄바이 공연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3개국을 순회하는 클래식공연의 첫 번째 공연으로 전체 공연의 성패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 현대예술 공연
이번 서남아 3개국 공연을 위해 재단이 파견한 사중주단 콰르텟21(Quartet 21)은 이미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단체인데다 순회에 앞서 수개월여 동안 연습을 한 터라 연주자체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지만 힌두,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서의 서양클래식 연주는 그만큼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곡인 슈만의 피아노 5중주곡(E플랫 장조, 작품 44번)의 연주가 끝나자 그동안 공연 준비를 지원해왔던 주인도대사관 뭄바이 분관의 정동일 총영사는 연주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성공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관객들이 일어나 앙코르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재단은 10여 년 이상 한국의 공연예술단을 해외 각지에 파견해 한국의 공연예술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사업을 추진해 왔었다. 그러나 소개 분야가 한국의 전통무용이나 음악에 집중되어 현대 예술장르에서도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그대로 전하기에는 다소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콰르텟21의 서남아시아 공연은 재단 해외공연 예술 지원사업의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콜카타에서의 공연장면동인도의 고도(古都)인 콜카타에서의 공연도 현지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콜카타가 인도 최고의 문화도시라는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연주곡에 몰입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공연장인 사바가르극장(GD Birla Sabhagar)은 콜카타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 콰르텟21의 공연이 있기 한달 전에는 유럽문화주간 행사로 독일, 핀란드, 벨기에의 클래식연주단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연주회에 대한 현지의 관심
인도 공연 후 연주단은 일단 귀국했다. 회교문화권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라마단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8일 공연단은 서남아 공연의 세 번째 공연도시인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출발 당일 새벽부터 폭설이 쏟아졌으나 다행히 비행기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폭설을 뒤로하고 북경을 거쳐 10여 시간 만에 도착한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은 초여름 날씨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파키스탄 공연 리허설장면(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저)이슬라마바드 공연의 리허설은 시내의 한국대사관저에서 하기로 했다. 극장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대사관에서 대사관저를 이용하라고 권했던 것인데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대사관저에는 연주연습에 적당한 쾌적하고 조용한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수개월동안 주파키스탄대사관과 공동으로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주회가 잘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랍문화권 국가에서의 서양클래식음악연주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공연장인 이슬라마바드클럽은 이미 공연 전부터 빈 좌석을 찾기 힘들었다. 관객도 관객이려니와 몰려든 신문과 방송사 관계자들 때문에 정시에 공연을 시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연히 연주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파키스탄 문화부의 한 관리는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 한국 음악인들의 기량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며 연주인들의 사인을 청하기도 했다. 또한, 파키스탄 일간지 「The Nation」은 공연 사진과 함께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 음악인들의 따뜻한 음악과 미소는 수교 20주년을 맞고 있는 한국과 파키스탄의 우호를 상징한다.” 공연 내내 공연장 여기저기를 비춰댄 방송카메라의 플래시와 소음은 지금도 아쉬운 점이지만 우리 음악인들에 대한 현지의 관심은 매우 고맙고 소중한 것이었다.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한국의 날
이슬라마바드에 이어 카라치에서 공연을 마친 우리 일행은 마지막 방문국인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적당한 클래식 연주장소를 찾기 어려워 한국대사관저의 리셉션 홀을 공연장으로 이용했다. 대사관저의 리셉션 홀은 정식 공연장이 아니어서 다소 불편한 점은 있었으나 연주자나 관객 모두 만족스런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현지에서 접하기 힘든 클래식음악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었고, 연주자들은 관객들의 진지함과 열성에 감사했다.

연주회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방글라데시의 문화계, 재계 주요인사와 함께 정부의 장·차관 20여 명이 참석함으로써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이번 연주회의 의미를 더욱 뜻 깊게 했다. 이러한 친밀한 분위기는 연주 내내 이어졌으며, 앙코르곡으로 경복궁 타령이 연주되자 참석자들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연주회 후 대사관저 정원에서는 관객들을 위한 한식뷔페만찬이 마련되었다. 참가자들은 연주자들과 어울려 정갈스럽게 차려진 한국 음식을 맛보면서 한국문화에 흠뻑 빠져드는 표정들이었다. 그날은 ‘한국의 날’이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예술의 힘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국 음악인의 연주를 즐기고 기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음악의 매력입니다.” 순회공연에 참여했던 첼리스트 박경옥 교수가 대답했다. 맞는 말이다. 낯선 이들끼리도 함께 울고 웃게 하는 것이 예술의 힘 아니던가. 나는 공연을 통해 우리 예술인이 외국관객들과 느끼는 감정의 교환, 공감이야말로 해외공연에서 얻어지는 가장 큰 자산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교감이야말로 생김새나 사는 방식 너머 서로 공통된 마음을 이해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서남아시아 순회공연을 한국과 방문국가 사이의 수교 기념행사로 추진했던 것도 양국민의 외교적, 정치적 만남이 마음의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대에서였다.

일정, 기후, 공연시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훌륭한 연주를 해 주신 김현미, 장혜라, 위찬주, 박경옥, 김금봉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 이번 순회를 통해 자신들의 ‘사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한 연주단원의 말씀도 소중한 선물로 간직하고 싶다. 어려운 현지 여건에서도 공연이 성사되도록 애써주신 주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대사님들과 대사관 직원들도 이번 공연의 숨은 공로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