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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의 일본 탐방

1월 23일 아침 9시, 입사 후 첫 출장에 대한 설렘을 안고 나리타행 비행기에 올랐다. 외교통상부 지방자치단체지원 심의관을 단장으로 호남권에서 선발된 17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2월 1일까지 9박10일간의 일정으로 마련된 한국대학생 방일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참이었다.
1972년 한·일 외무 장관의 합의 이래 매년 실시되어 온 한일대학생교류사업에서, 재단은 외교통상부와 함께 1992년부터 일본대학생의 방한연수단 초청을 주도해 왔다. 작년 가을 일본대학생들을 맞이한 바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출장에서 처음으로 맡는 "행정임원"이라는 역할에 자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일본측은 이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공항에서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일한문화교류기금과 국제교류서비스협회의 직원들, 모두 한국을 방문하거나 공부한 경험이 있는 분들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첫날 방문지는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다. 줄여서 "레키하쿠(歷博)"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일본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이 거슬러온 발자취를 생생히 재현해 놓고 있었다. 일본의 역사를 단숨에 훑어 내려갈 수 있는 곳으로, 다음 날의 "일본과 한국의 문화·사회 비교"에 대한 강의와 더불어 이번 방일연수의 훌륭한 입문코스가 되었다.
서울과 많이 닮은 초거대도시 도쿄는 과거·현재·미래의 상호 공존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번화가 신쥬쿠의 한 구석에는 촘촘히 붙은 게딱지만한 음식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가 하면, 바다를 매립해 건설한 넓은 임해부도심에는 무인 전철이 운행되고 있었다. 도쿄 일정 중 필자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도쿄소방본소 방재관(防災館) 방문이었다. 진도 6.0-7.0의 지진을 직접 체험하고, 소화기 사용, 인공호흡, 연기 속에서의 탈출 등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지진이 많은 땅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생활 자세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양국 학생간 첫 번째 교류는 이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일본학생들이 일한문화교류기금 측의 주선으로 우리 방문단과 함께 점심식탁에 앉으면서 시작되었다. "선생님, 저희는 일본어 하나도 못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요" 하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학생들. 그래도 단어 하나 하나를 찾고 영어에 손짓까지 써가며 열심히 서로 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역시 젊은 사람들은 유연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에도도쿄박물관과 아사쿠사의 센소사(淺草寺) 등을 돌아보고 난 후에는 무척 친해진 모습들이었다.
드디어 대도시 도쿄를 벗어나 칸사이(關西) 지방으로 가는 날, 쿄토까지 가는 신간센에 오르면서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도쿄가 도쿠카와막부(德川幕府)시대부터 정치 중심지로 커온 도시라면, 칸사이 지역은 천년고도 쿄토가 위치하는 곳으로 주민들의 역사·문화적 자긍심도 그만큼 높은 곳이다.
특히, 방일대표단 학생들이 민박 체험을 했던 오츠시(大津市)는 일본 최대의 담수호인 비와코(琵琶湖)를 중심으로 한 호반 도시로, 1,300년 전에는 고대 일본의 수도였고, 교통의 요지이자 엔랴쿠지(延曆寺)를 거점으로 한 불교 중심지로서 발전해온 곳이라 한다.
이 작은 도시의 시민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우선, 학생시절 미국 연수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만든 교류회 회원들이 우리 일행에게 "하네츠키"등 몇 가지 일본 전통놀이를 소개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뒤이은 민박 상견례 시간에는 호기심과 긴장 속에 만나 2박3일 동안의 짧은 시간을 나누고 헤어지는 학생들과 민박 가족들의 얼굴에는 정과 아쉬움이 담뿍 담겨 있었다.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이러한 교류가 활성화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도 함께 남았다.
쿄토외국어대학은 마지막 공식 일정에 해당하는 곳이자, 가장 의미있는 방문지였다. 총장님 이하 여러 교수님들의 환대 속에 시작된 이 방문은 학교 시설을 시찰하고 학생들과 교류회를 갖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이제는 많이 능숙(!)해진 듯, 한국측 대학생들은 수줍고 어색한 첫 대면의 와중에도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와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얼마되지 않아 분위기는 화기 애애해졌고, 일본측 학생들이 우리 노래 "사랑해 당신을"을 합창해 주면서 더욱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이틀간은 나라(奈良)와 쿄토(京都)의 유적지 시찰이 남겨져 있었다. 나라의 도다이사(東大寺)와 호류사(法隆寺), 그리고 쿄토의 킨카쿠사(金閣寺), 니조오죠(二條城), 기요미즈사(淸水寺) 등, 방문한 모든 곳이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지였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호류사였다. 백제 가람 양식을 본따서 지어졌다는, 사뭇 큰 규모로 지어진 이 사찰의 이곳 저곳에서 마치 고대 불국토의 중심에 서있는 듯한 위엄이 느껴졌다.
대표단의 체재 중에 불행히도 신쥬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한국인 유학생이 희생되는 참사가 있었다. 이에 대해 쿄토의 한 교수님은 용기있는 행동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는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하여, 일본인들이 받은 잔잔한 감동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연수를 받는 대학생들 또한 일본인과 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한일 양국민의 작은 인식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된 이 사업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보람이 아닐까. 마지막 날, 이런 저런 생각과 아쉬움을 뒤에 남기고 방일 연수단 일행은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