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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민족학박물관

비엔나민족학박물관의 역사는 1876년 설립된 비엔나자연사박물관의 인류·민족학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연사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조 시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집된 다양한 민족학적 소장품들을 한 곳에 모아 인류·민족학관을 열었고,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박물관의 본관은 물론 특별 전시실을 만들어 전시를 했으며, 1888∼89년에는 주요 소장품들이 재정비되기도 했다.

한국의 유물을 소장하게 된 것은 1880년대 초에서 1890년대 무렵이다. 주로 중국과 한국에서 근무했던 외교관들이 들여온 물품들로서, 자개장식이 된 말안장, 신라토기, 고려청자, 직물, 갑옷, 가구, 식기류나 당시 외국에도 잘 알려진 기산(箕山) 김준근의 회화연작 등 일상생활 용품에서 희귀품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


자연사박물관의 인류·민족학관에 소장하던 유물들은 1928년 오늘날의 건물로 옮겨와 민족학박물관이 되었다. 이 건물은 ‘호프부르크 (Hofburg)’ 성으로 20세기초 원래 황제의 공관으로 건립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공공용도로 기능이 바뀐 것이다.

한국 유물은 동아시아 소장품으로 분류되어 중국과 일본 유물과 함께 전시되었다. 하지만, 박물관의 초기 전시광경 사진을 보면, 당시의 디스플레이는 오늘날의 갤러리 디스플레이와는 사뭇 다른 커다란 홀에 유물을 나열한 수준이었다.

이후 박물관은 유물수집 정책을 수립하여 꾸준히 소장품을 확대해 나갔는데, 박물관 동아시아관에서는 1960년대 일본에 이어 1970년대에는 한국의 농기구 및 지방의 일상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였다. 1980년대에는 주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의 후원으로 한국 수공예 전시회를 몇 차례 개최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박물관은 박물관의 건물 및 전시실 내부, 수장고, 사무실 등을 포함한 전면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아직까지 새로 개관할 박물관의 구체적인 전시방법 및 계획은 마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 또는 국가적 분류에 따를지 아니면 보다 포괄적 문화권별로 구분하든 박물관의 유물 수집의 역사는 잘 보여주게 될 것이다.

1997년에는 국립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전액 예산지원을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이들 국립박물관들은 점차적으로 자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한, 오스트리아 문화부는 2000년 하나의 중심 박물관 아래 여러 박물관이 속하게 되는 통폐합 방안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민족학박물관은 2001년 1월 1일부터 오스트리아 극예술박물관과 함께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민족학박물관은 2001년 매우 중요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