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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의 움트는 가능성을 재발견하다

아시아 최초의 주빈국, 대한민국
‘한국 화랑의 해외 아트페어 참가 역사상 최고의 매출액’‘한국 현대미술작품 319점(24억 원 상당) 판매’
지난 2월 14일부터 6일간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ARCO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Fair)에 참가한 한국화랑들의 공식 실적이다. ‘젊은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국제적인 언어를 이해하고 독특한 개성과 함께 역동적인 에너지를 유감없이 뿜어냈다’는 현지 조직위 관계자나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면 유럽 미술시장의 흐름을 읽어낸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국제 감각과 경쟁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직위 추산 20여 만 명이 관람한 이번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에서는 개막식 이전부터 한국화랑들이 주목받고 있었다. 스페인의 신문, TV들은 연신 아시아 최초의 주빈국으로 선정된 한국 관련 특집을 내보내고 있었으며 한 TV 방송은 아르코 전시장의 한국부스를 소개한 데 이어 마드리드 시내의 한식집에서 불고기를 요리하고 시식하는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또한, 전시회 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의 스페인 공식 방문으로 시내 곳곳에 걸린 태극기나 한국이 아르코 주빈국임을 알리는 현수막들은 잠시 이곳이 한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한국문화에 들뜬 마드리드
주빈국 자격으로 IFEMA(Institucion Ferial de Madrid) 전시장의 중심공간에 부스를 배정받은 한국의 14개 화랑들이 출품작 대부분을 판매하고 있는 사이 마드리드 시내의 열기 또한 뜨거웠다. 한국 주빈국 행사는 이미 10일 낮 마드리드 남쪽의 마타데로(Matadero Madrid)에서 마련된 무속인 ‘김금화의 서해안 풍어제’로 시작되었다. 거대한 도살장이었다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중인 이곳에서 김금화의 굿판을 함께한 스페인 관객 500여 명은 때로는 신기한 듯, 또 때로는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굿판을 지켜보았다.
2월 13일 오후, 마드리드 최대 번화가 그란비아(Grand Via) 한복판에 위치한 전시장 텔레포니카(Telefónica) 앞으로 스페인의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전시개막식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백남준의 작품 가운데 한국 또는 동양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한국의 역사적 인물을 재현한 작품을 골라 기획한 백남준 전시회에는 아르코 행사기간 내내 하루에 1,000명 이상의 관객이 몰렸다.


▲ 한국부스주변. IFEMA 전시장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관람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이다.

전통예술과 현대감각의 하모니
‘김금화 풍어제’나 ‘백남준 전시회’는 한국의 아르코 주빈국 참가를 계기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스페인에 알리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아르코 부대 행사였다. 지난해 세계 5대 아트페어의 하나인 아르코에 한국의 주빈국 참여가 확정되자 우리나라의 외교통상부, 문화관광부,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이번 행사를 통해 스페인에 한국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범정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었다.
재단은 부대행사 중 공연행사를 전담해 지원키로 했으며 아르코 주빈국 공식 공연으로는 김금화의 서해안 풍어제, 안은미 댄스 컴퍼니의 현대무용, 어어부 프로젝트의 인디 뮤직 콘서트, 앙상블 팀프의 실내악 콘서트가 선정되었다.
공연은 아르코의 행사 타이틀 ‘Corea Ahora(Korea Now)’에 따라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대적인 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선정되었다. 스페인의 한 주요일간지가 아르코 특집을 통해 안은미, 김금화, 백남준을 소개하며 한국이 이번 행사에서 전통과 현대의 두 기둥을 가지고 왔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이러한 작품 선정의도가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공연은 13일 ‘불켜진 집’이라는 뜻인 카사 엔센디다(La Casa Encendida)에서 열렸고, 안은미 댄스 컴퍼니는 14일과 15일 밤 시르쿨로 예술원의 페르난도 데 로하스 극장(Circulo de Bellas Artes)에서 공연했다. 26일 밤에는 스페인과 인연이 깊은 윤이상의 고향 통영의 정취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의 콘서트홀을 물들였다. 통영국제음악제의 홍보대사인 앙상블 팀프의 공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공연 이외에도 마드리드 곳곳에서는 한국디자인전, 한국사진전, 문학포럼, 한국영화특별전 등이 개최되어 현지 시민들에게 한국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IFEMA 전시장

가치를 인정받는 한국문화의 내일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다양한 활동들은 스페인 국민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은 여전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에 대한 호기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아르코 한국측 커미셔너인 김정화 교수가 현지 방송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가 던진 첫 질문이 ‘한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라지 않던가.
스페인 3대 일간지의 하나로 꼽히는 엘 문도(El Mundo)의 사장이 한국대통령의 스페인 방문을 맞아 특별기고한 글에 여전히 한국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언급한 것이나, 주빈국 행사를 참관한 많은 스페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한국의 공연을 접하고서는 “처음 본 한국의 현대적인 감각에 놀랐다” 또는 “몰랐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르코 전시중 팔려나간 작품의 가격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좋은 평을 받기는 했지만 화랑이나 작가들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터라 작품의 가격대가 대부분 낮게 책정되었다. 참가 화랑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 작가들의 국제적인 지명도를 높일 수 있도록 화랑의 시장 개척과 발굴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일주일 남짓, 화려하고 흥분되었던 축제는 이제 막 시작된 한국 알리기를 어떻게 꽃피울지에 대한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문성기
skmoon@kf.or.kr
문화예술교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