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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후에는 구수한 숭늉을

2004년 봄, 배용준이 일본에 왔다. 일본 전국으로부터 주로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여성들이 이 한류 스타가 머무는 도쿄의 호텔로 몰려들었는데 그 수가 무려 1만 5천 여 명에 이르렀다. 이 현상에 놀란 신문, 주간지, 텔레비전 방송 등의 대대적인 보도로 인해, 일본 전국은 한류 붐으로 들끓었다. 그로부터 일 년 반 동안 많은 일본인이 한류 스타를 쫓아 한국과 중국을 찾았다. 일본어로는
그들을 ‘쫓아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옥카케(Okkake)’라고 부른다.



우리 규슈(九州)대학교 한국연구센터에서도 이 현상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뜻밖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고 보면 이 한류 붐은 일본인에게 정확한 한국문화의 이해를 촉진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연구 전문가에 의한 유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이 자연스레 한반도로 향했기 때문이다.
마침 같은 시기인 2004년 4월 규슈대학교는 90년 가까이 입고 있던 ‘국립대학’의 옷을 벗고, 새로운 ‘국립대학 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때 우리 한국연구센터에 주어진 역할은 교육과 연구, 국제교류와 지역사회 연대라는 4가지 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미 2003년 가을부터 한국연구센터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학술성과의 환원’이 검토되어 후쿠오카 현 산하의 후쿠오카 현 국제교류센터와 협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류 붐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격적으로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이 한류 붐의 출현은 한일 문화교류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Soft Power’론이다.
그런데 한국연구센터와 후쿠오카 현 국제교류센터는 협의를 거듭하는 가운데 공통의 고민에 부닥치게 되었다.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세간에서 한창 화제의 대상이 되어 있는 한류 붐을 주제로 하여 후쿠오카 현민 세미나를 개최하려 해도 단독으로는 그 예산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2자로 안 되면 3자의 힘을 합치면 성공한다’는 이시카와 쇼지(石川捷治) 한국연구센터장(당시)의 제언에 따라, 곧바로 후쿠오카 현 국제교류센터와 예산 문제를 협의했다. 후쿠오카 현이 운영하는 ACROS FUKUOKA(대회의장, 후쿠오카 시 중심가에 위치)의 회의 경비와 후쿠오카 현민에 대한 광고비는 후쿠오카 현이 부담하고, 세미나의 기획과 실행, 개최 준비 비용 등은 규슈대학교가 부담한다 해도, 고민거리는 한국의 일급 강사 초빙 비용이었다. 다행히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결단으로 이 비용이 조성되었다. 그 결과, 3자에 의한 갹출 방식, 일본어로 말하자면 ‘공동제공방식(AINORI)’이 탄생되었다. 국립대학이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협정을 맺고 한일문화교류를 촉진하는 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일본 전국에 크게 보도되고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인 2년째부터는 규슈국립박물관이 동참함으로써 4자에 의한 공동 작품(collaboration)이 되었다.



이전처럼 모든 비용을 한 곳의 기관에서 부담하는 ‘전액부담(Marugakae)방식’은 최근의 재정난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훌륭한 기획이라도 실행되기가 지극히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작은 규모의 행사라도 복수의 기관이 분담하여 예산을 확보한다. 지상명제는 경비 절감(Cost Down)이다. 게다가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한 기관이 각기 다른 시각과 발상으로 의견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 어떻게 한일 교류를 전개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 지방세를 투입하여 국제교류를 전개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따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직원과 대학인과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솔직히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대학인들은 금전 문제에 관한 한 무관심해야만 했다. 마치 조선왕조의 ‘선비’처럼.
게다가 시대도 많이 변했다. 이제 자기 만족에 그치는 이벤트 따위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로 어느덧 4회째를 맞는 후쿠오카 현민 세미나이건만, 후쿠오카 현은 한국연구센터에 대해 해마다 겁주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세미나 참가자에 대한 앙케트 조사 결과가 나쁘면, 그 다음 해의 세미나는 개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가 열의를 가지고 기획하고, 모든 힘을 기울여 참가자를 모집해야 하며, 세미나의 내용도 대충 적당히 넘어갈 수 없음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진검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붐은 붐이다.
한류 붐의 열광에도 언젠가 종말이 올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우수한 문화요소를 착실히 소개하면 반드시 한국문화에 관한 이해가 심화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한국연구센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획했다.

2004년도 ‘욘사마 붐을 생각한다’
강사 | 오구라 가즈오 국제교류기금이사장 외
2005년도 ‘한일 <조화의 마음> 다도의 세계’
강사 | 센겐시쓰 우라센케 대종장 외
2006년도 ‘한일 <꽃>의 향연’
강사 | 조재선 한국꽃꽂이협회 명예이사장 외
2007년도 ‘한일 ‘서도’를 말한다’
강사 | 이주형 한국 경기대학교 교수 외

한일 ‘조화의 강조 → 향연으로 공존 → 대화로 나누는 우정’의 순서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교가 서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물이다. 이 기획의 취지는 다도, 화도, 서도의 세계도 한일 시민교류가 진척되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구수한 숭늉의 맛을 알게 되면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이해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도 우리 규슈대학교 한국연구센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의 협력과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후쿠오카 현민은 물론이고 해협을 넘어 부산시민 여러분도 초빙할 수 있는 멋진 기획을 입안하여 후쿠오카와 부산 두 지역이 한일 문화이해 촉진을 위해 일조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자 한다. 그 기쁨은 시민 여러분에게 만족스러운 웃음이다. 앞으로도 시민과 더불어 행동하고, 시민에게 학술 환원을 계속함으로써 규슈대학교 한국연구센터를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