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20여 년 전 내딛었던 첫번째 발자국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접하게 된 것은 많은 미국인들의 어느 한 세대가 경험했던 것과 너무나도 비슷한 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그곳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곧이어 내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 친절하고 자존심 있는 사람들, 길고도 놀라운 역사를 가진 민족이었다. 내게 남은 기억은 수없이 많고, 또 생생하다. 푸르른 10월 하늘에 걸린 주황색 감, 외딴 산사의 고요함, 추운 겨울날 순두부 뚝배기 한 그릇에 담긴 만족스런 매콤함, 자갈밭 해안을 따라 세워진 거대한 조선소의 부산스러움 등, 이런 기억과 더 많은 추억이 어우러져 한국은 더 자세히 탐험해볼 만한 곳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만들어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나의 탐험을 수월하게 해주는데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했다. 재단의 펠로십과 연구지원금은 내가 대학원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그리고 동아시아 전반)를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 마찬가지로 중요한 점은 하버드대학교를 통한 재단의 대학원생 장학지원이 한국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연구에 전념하는 학생과 학자들의 활기찬 공동체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 한국학 프로그램의 규모와 영역을 확대시키려는 재단의 확고한 노력은 내 대학원 이후 경력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거친 두 번의 전임 교수직 ─ 텍사스-오스틴대학교 객원 강사직과 조지워싱턴대학교 역사 및 국제관계 조교수직, 그리고 이어 부교수직 ─ 모두 재단의 상당한 재정적 지원으로 설치된 자리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나는 한국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오랜 관심과 감사는 물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지속적이고도 변하지 않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강의가 개설되어 점점 커져 가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덕이다. 학자로서 내가 중점적으로 다룬 두 가지 주제는 ‘청나라(1644-1912)와 조선(1392-1910)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가 양국에 미친 영향’과 ‘현대 한국의 외교정책과 국제관계’이다. 한국학의 대변자이자 행정가(최근에 시거 아시아연구센터의 소장직에 취임)로서 나는 조지워싱턴대학교가 계속해서 한국연구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재단은 항상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이제는 나의 제자들이 자신의 학업과 연구를 위해 재단의 도움을 찾고 있다. 마찬가지로 동료 교수들도 한국 관련 주요 회의와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재단의 도움을 찾는다. 또한, 나의 대학원 시절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 나아가 전세계 학자와 학생들에 대한 재단의 지원은 한국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공동체 ─ 활기차고 규모도 커지고 있는 ─ 를 만들어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지닌 학생과 학자로서의 경력을 관통하고 있는 끈은 바로 내가 20년도 더 이전에 보내졌던 이 매혹적인 나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욕구였다.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 덕에 나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첫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