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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은 현실을 딛고, 두 눈은 미래를 향해

신선한 충격이었다.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에 갈등과 대립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양국의 여론을 대변하는 학자, 언론인, 정치가, 前職 외교관 등이 이렇게 격조 높은 대화의 향연을 베풀 수 있었다니! 이것은 한·일 양국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9년에 걸친 交遊와 대화의 기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2001년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9차 한·일포럼에 참가하였다. 매연에 잠긴 서울에서 분초를 아끼며 일에 허겁지겁하던 나에게 강원도 산골의 유려한 山水와 맑은 공기는 그 자체가 救援이었다. 3박 4일 동안 꽉 짜여진 계획표대로 빈틈 없이 진행된 강행군의 회의였지만, 나는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知的 饗宴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은 세련된 매너와 절제된 언행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진행 요원들은 부드럽고 치밀하게 행사를 이끌었다.

제9차 한·일포럼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났지만, 그 내용이 부실하거나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치·안보·경제·문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속출하였고, 특히 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한·일 양국의 참석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국민의 여론을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직설적으로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된 역사관을 질타했고, 일본의 참석자들은 한국의 견해에 공감하는 듯 하면서도 일본의 검정제도와 역사해석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평창 휘닉스파크호텔에서 개최된 제9차 한·일포럼.

나는 이번 한·일포럼의 태풍의 눈이었다. 한·일 사이에 가장 민감한 懸案인 ‘역사교과서 문제와 한·일 협력’이라는 주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역사’를 둘러싸고 일본인과 거듭해온 ‘대화’를 바탕으로 솔직한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인은 왜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집착하는가, 한국인은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 한국의 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등에 대해 공정하고 솔직한 의견을 말했다. 그리고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자와 역사교육자 등 민간인끼리 ‘역사의 대화’를 장기간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역사인식의 상호 이해를 넓혀가야 한다는 것을 제안했다.

나의 발표는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로부터 호의적으로 받아 들여진 듯하였다. 특히, 일본인들은 나의 발표가 공격적인 이야기 일변도일 것으로 짐작하고 무척 긴장하고 있었던 같았다. 일본인 참석자 중에는 나의 논문이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또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감동했다는 식으로 코멘트를 해주어 회의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는 데 적지 않게 도움을 주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한·일포럼을 기축으로 하여 나의 회견 기사를 별도로 작성하여 1면 전체를 할애하여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는 제9차 한·일포럼은 양국 국민에게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속담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름은 그럴 듯 하면서도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행사를 일컫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국제회의가 이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특히, 광범한 주제에 대해 상이한 전문가들이 다수 참석하는 국제회의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한·일포럼도 형식으로 본다면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일포럼에 참석해보니 선입견과는 달리 행사의 진행이 고도로 세련되고 짜임새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알차고 풍부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한·일 양국의 최고 전문가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 이 포럼이 단순한 사교회의가 아니라 한·일 양국 사이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지혜를 마련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포럼이 앞으로 더 발전한다면 한·일 사이의 현안은 좀더 깊이 있고 부드럽게 처리되어 갈 것으로 생각된다.

국제회의에는 보통 문화행사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번 한·일포럼에서는 도자기엑스포와 국악공연의 관람이 끼어 있어 흥취를 한껏 북돋았다. 도자기엑스포를 구경하기 위해 누렇게 익어 가는 이천의 들녘을 가로지르는 버스 속에서 참가자들끼리 나눈 담소와 평창의 신선한 밤공기를 마시며 短簫의 애절한 음률에 한껏 취했던 멋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한·일 양국은 거리가 가깝고 교류가 빈번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찰과 갈등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두 나라 중에 한 나라가 다른 곳으로 이사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는 이웃집과 달라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마찰과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해 가면 된다. 우리들은 이미 이것들을 해소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체득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일포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는 새삼스럽게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